35만 400여 시간의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35만 400여 시간의 인터뷰
1.
묵묵히 걸어가다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선인장에 다가서더니 거침없이 야금야금 먹어댄다
낙타가 커다란 눈을 껌뻑이더니
'살기 위해 얼마든지 선인장 가시마저 삼킬 수 있다
아무리 무거운 혹을 짊어지더라도
척추는 똑바로 펴고 살아야 하는 거다'
2.
폭염이 지속되는 흔한 날의 연속이었다
탈수현상이 계속되면서 다리의 힘이 풀려갔다
아지랑이에 시야가 막히는데도 낙타는 한 곳만 보고 있었다
환각에 취해야 제대로 사는 거라던 비난들을 뿌리치자
오아시스들이 돌아눕는 것을 보았다
낙타는 여전히 묵묵했다
대체 얼마나 자신의 발굽을 몇 번이고, 지독하게,
이 뜨거운 모래 속에 담금질해야 평원을 찾아갈 용기가 생기는 걸까
남은 일은 기도가 아닌
깊숙이 발목을 잡는 모래 속에서
한 발 한 발
저항하며 걷는 일
3.
모래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다 지형을 이용해 간신히 대피할 수 있었다
거친 모래들이 피부를 쓸고 나갈 때 낙타의 발목에 묶여진 북극성이 희
미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눈조차 부릅뜨고 온갖 기염을
토해내듯 눈물 없이 울음을 찢어지도록 토해냈던 모습이 희미하지만 아
직 남아있다
4.
사막에서는 어디로 가든 길이다 다만 목적지는 모두 틀리게 나온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자리는 걸어온 내 발자국도 찾을 수 없다
황사현상을 보고나니 아지랑이가 오히려 반가울 지경에 이르렀다
물러날 수도, 직진할 수도 없는 이 황사의 공기가 탁하기만 하다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있던 낙타가 다시 일어났다
5.
낙타는 말했다
마두금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 번이라도 초록 평원 위를 달려 보고 싶다면
발자국을 새긴 수만큼
침묵을 집어삼켜야 하는 거라고
너는 모른다
사막이란 낙원을 꿈꾸며 횡단하다 황혼녘에 타들어간
낙타들의 재가 모인 곳임을
*35만 400여 시간 - 낙타의 평균수명
댓글목록
최정신님의 댓글

낙타의 일생이 바스라져 모래 언덕이 되었군요
차진 진술로 풀어준 장시에서 고뇌의 땀을 읽습니다.
모바일로 읽었으나 낼 컴 켜고 다시 정독해야겠단 욕심...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써놓고 저도 몇 번이고 다시 읽네요.
다시 본다하시니 어디 틀린데 없나-----하고 ^^
좋은 꿈 꾸세요.
문정완님의 댓글

동하님 반갑습니다 무지 올만에 인사드립니다. 시마을 제일 신비인 ㅋ
잘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퇴고작인가 봅니다 쇠와 시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지고 날이 서지요
자주 오시고 복면가왕 언제 한번 벗어 주실련지 ㅎ
항상 건강하십시오 동하님^^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그러게요 수상작에 이름이 올라갈 때마다
'왜?'라는 생각에 왜 뽑혔는지 아무리 읽어봐도 납득이 안가서
송년행사 한 번을 안갔는데
어쩌다 보니 이름이 '베'씨에 이름이 '일남'이었다가
이번에는 '신'씨에 이름이 '비인'인가요^^
저도 납득할만한 좋은 시로..
상을 받는다면 아마 송년회에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14년에 비해서 퇴고 잘 했나 그것도 분간 못하는데^^;;
항상 건강하세요.
-시마을 창작방
아마 제일 막내 올림
시앙보르님의 댓글

낙타의 여운이 꽤 길어질 듯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가 낙타처럼 가라, 로 바뀝니다.
편한 밤 되십시오.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엇! 처음 뵙는 분
반갑습니다 시앙보르님
제가 원래 네셔널지오그래픽, 이런 걸 좋아해요.
고대에 낙타는 원래 서식지가 초원인데 천적들을 피해
알래스카로 이동했다가 사막으로 온 거라고 하더군요.
반대로 해보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가정하고
써봤어요. 여운이 길다 하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수크령님의 댓글

그냥 너무 좋네요.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현상학님의 댓글

발자국을 새긴 수만큼 침묵을 삼켜야 하는 것/ 캬~ 절창입니다.
동하님의 댓글의 댓글

절창이라는 소리 처음 들어봐요
이런 감격을ㅠ
자주 뵈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