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에는 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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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용머리에는 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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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앙보르
삼다도 제주는 삼무도라고도 불리지만
한라산 동굴 속에서 여지껏 사는 사람들은 안다
하나가 더 있어서 사무도라는 것을,
그러니까 거긴 4월이 없다
그 달에는 능선에서 내려가는 바람이 용두암을 맴돌았다
5월이 돼도 풀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미역에 달라붙은 머리칼은 마를 줄을 몰랐고
달이 올라오면 새들은 떼를 지어
용이 떨군 구슬을 물고서
동굴 안개를 돌아서 산으로 들어갔다
해가 떨어지자 파란불을 켠 짐승들이 몰려와 사람을 찢었고,
달이 물러가자 뭍에서 올라온 군인들이 허공에 총을 쏘며
매가리가 없는 주민들을 한곳에 모았다
쾅, 동굴이 폭발하고 콩 볶던 쇳소리들,
용의 발톱에서 옥구슬이 깨졌고
동굴과 산등성이는 열흘을 불탔다
엄마 젖을 빨다 잠 든 아가와,
감자를 입에 문 아방과 어멍이,
장죽에 불을 당기던 하르방과 할망이,
죽을 끓이던 오라방과 똘 그리고,
누구는 통시에서 볼일을 보다가 그대로 잠겼는데
초신 한짝이 오래오래 근처를 지켰다
지친 걸음으로 올라오던 좀녀는 가을이 돼도 떠오르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쪽저쪽으로 헤어져 묻혔다
하르방의 혈족과 이웃을 감자밭, 메밀밭, 억새들이 받아주었다
억새, 잣밤나무, 느티나무, 삼나무, 팽나무가
껍질을 잡아뜯을 적에 산괭이는 제 눈깔을 긁었고
새떼들이 한라산 절벽으로 날아가 머리를 부딪혔다
그날 용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천지를 울렸다
'귀 눈이 왁왁하다 !!'
용은 자기 두 눈을 찌르고 이빨을 부러뜨린 다음
아예 곡기를 끊어버렸다
행복했다, 승천할 곳이 바로 눈 앞이었으니
허기진 굴 속에서 비늘을 뽑아 수의 한 벌,
여의주
감기운 눈이 천장에 사시사철 매달렸다
그때부터 4월에는,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멸치도 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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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에 바칩니다.
* 똘 : 딸
* 초신 : 짚신
* 좀녀 : 해녀
* 왁왁하다 : 캄캄하다
댓글목록
예시인님의 댓글

햐,,한 편의 긴 세밀한 서사시입니다..
긴장감을 잃어버리기 쉬운데...이 시는 정말 드라막틱하면서...팽팽한 긴장감 갖고 읽혀 집니다.
참 대단한 필력을 느껴집니다..
근데,,고향이 제주세요?..감상 잘 하였습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은 아니고요, 지인들이 제주 놀러가자고 유혹할 적마다 이상스레
4.3에 발이 묶여서 아주 오래전 한번 외, 다녀오질 못했습니다.
처음에 제주 방언으로 적었다가 능력부족으로 그냥 평이하게 적었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
김태운.님의 댓글

시앙보르님, 제주방언에 능통하십니다
아래'아'를 '오'를 읽는 것이며
특히 왁왁하다를 알 정도라면...
제주인으로서 감사의 인사
큰절 올립니다
'솔짝헌디 꿩독새기 난다'
물론 아시겠죠?
근데 그 참혹한 4월을 기억하기는 싫지만
결코 망각해서는 안될 4월이지요
시앙보르님의 댓글

아휴, 제주 친구가 예전에 있었는데 정말 모릅니다. ^^;
완전 외국어 !!
방언으로 그냥 적은 거, 알았다면 자문을 받을 걸 그랬어요.
제주 방언은, 간결하고 둥글둥글 부드럽고 굉장히 속까지 편하더라고요.
(빠른 경상도 사투리 정신 없는 것에 비하면 ~ 처가가 부산이라 말쌈하면 집니다 !!! )
리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