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도 수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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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무들도 수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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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앙보르
늦은 밤, 식물의 혈액형을 들었습니다
혼곤해진 창문을 열고
내 마른 가지를 위해
당신은 하얀 팔목에 주사바늘을 꽂았습니다
툭 툭 떨어지는
당신의 사랑, 이별, 비애, 절규, 비탄은
진한 현기증으로 병을 채워갔습니다
정신을 잃은 나는 만류조차 하지 못했지요
A형인 내게는
O형인 청무나 동백 혹은 A형인 상록수가 필요했습니다
비릿한 흙과 날카로운 햇살을 견딘 그들,
그건 그저 완강하고픈 욕심이었지요
B형인 당신은 텅 비워내고
새벽 어스름을 따라 줄사철나무 숲에서 뿌리를 접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옵니다
당신의 피는 제게 들어와
저를 당신의 줄사철나무로 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도로 닫힌 창문에서
제 헝클어진 팔은 계속 미끄러집니다
따라가고 싶었으나 제 뿌리는 채 풀리지 않았고
미열, 당신의 품에서 느꼈던 열이
꿈과 생시의 한가운데로 만듭니다
잊지 않을께요 란 말, 안녕 내 사랑이여 란 말,
하지 않으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이 되었으니까요
댓글목록
현탁님의 댓글

슬프네요 미움도 그리움이 된다는 것
비형 여자 정신만 돌아오게하고 못 따라오게 다리는 풀어주지 않았나봐요
그냥 마비된 나무로 살아도 새는 오고 바람도 불고 눈도 오고 태양도
다시 뜬다는거 오면 가는 것이고 가면 오는것이 사는 이치가 아닐까요
아자아자 새순이 돋겠습니다
시앙보르님의 댓글

현탁 시인님의 귀한 시들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사변적인 걸 좋아해서 간만에 감상시를 끼적여봤습니다.
일부 식물들에게 혈액형이 있다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줄줄이 적었던 거 한번 날리고 다시 적으니
처음 감흥의 절반? 정도만 건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