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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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춘우
버스에서 내려 골목 책방에 만화책을 한 아름 빌려다가 가방에 넣고
1층 농협을 끼고 연 과일가게, 내 절친 아버님의 호객 행위를 흘겨보다가 우리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은은히 국물 냄새가 포장마차 가건물 넘어 퍼지고 그 길옆으로 신령스런 커다란 거목이 섰다
길은 짧고도 길어 그사이에 몇 개나 민가가 있고 무슨 철물 공방에서는 용접을 길 앞에서 하는지
빛의 잔상이 까맣게 집에 이르도록 남은 적도 있으니 조심하자
좀 더 들어가면 경로당, 주차장 딸린 간판 없는 이발소, 십자가도 없이 형편없이 작은 박스형 교회 및 민가 일동
그리고 동산으로 가는 비탈길이 운동장 크기 반만 한 논두렁을 사면에서 둘러싸고 있는데,
겨울 봄 여름 그렇게 밉더라도 가을 추수 녘에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코스모스 알록달록 길따라 피어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그 길 가기가 그렇게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산 입구는 어르신들 취미 삼아 가꾸시는 주먹만 한 밭들이 계단처럼 올라가고
적당한 높이에 정자가 있어 명절이나 방학 때면 한숨 붙이기도 하고 근처에서 놀기도 하고...
거기 심긴게 도토리나무인지 발에 밟히는 게 도토리, 도토리 천지, 일꾼들이 쌀포대를 가져다가 두 포대나 가득 채우고
나니 나타나는 웬 할아범, 놓고 가란다 자기 나무라고.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
이 모두를 앞에 두고 병풍처럼 서 있는 게 이런 변경 시골 마을에 어울리는가 아닌가 애매한 크기의 아파트 한 동;
더 들어가면 산 위에 또 마을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깊이 들어 오면 된다 마침내 도착한 내 고향, 우리 집.
우습게도 여기엔 없는 게 없다 1층엔 약국, 문방구, 외 상점이 2층 학원, 지하에는 슈퍼마켓까지 있는 올인원
경비실을 무심코 지나 엘레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고 한숨 땅 꺼져라 쉬고 있으면 안단테로 나를 싣고 10층으로
긴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시나브로 시선은 창 밖을 향하게 되니
멀리 보이는 저 산 넘어 또 산 넘어 그리고 그넘어 옅어서 보이지도 않는 산의 원경에 솔직한 감탄사가 터트질 때, 석양
의 물결은 고운 새색시 오롯이 절하 듯하고 세월을 넘어 기억에 범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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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시앙보르님의 댓글

마을 풍경 수채화 한폭, 잘 그리셨습니다.
평이한 말보다는 사투리로 그리셨다면 더 좋지않았을까 저 혼자 바램입니다.
소설가 이문구님 배경이 떠올라서 적었습니다.
3월도 건시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