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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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문장들
동두천 8차선 대로
달리던 버스가 1톤 트럭을 삼켰다
버스 기사는 졸음을 밟아
트럭 기사의 몸을 속도로 압축하고
트럭의 영혼을 단숨에 부품으로 해체하였다
타이어는 개울가로 튀고
달려오는 차들이 무심하게 신발을 짓뭉개도
그의 체온을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다
구르는 배터리는 보험료로 작성되고
죽음은 바로 돈과 교환될 것이다
수거되지 않은 심장처럼 트럭에서 새어나온 시커먼 오일이
질펀하게 사고 현장을 그린다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이
차창으로 빠져나온 팔이 흔들,
손가락이 계기판 바늘처럼 움직이다가 허공에 얹힌다
하늘은 백지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바람만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을 붙잡고 있다
지금쯤 아이는 육교를 지나 학교로 가고
아내는 아침 설거지를 할 것이다
상처 없는 생각들이 깨진 살 틈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움찔움찔거리던 손가락이
허공에다 새기려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완성할 수 없는 글자들은 엔진 오일처럼 줄줄 흐르고
깜박깜박 조는 손가락을
천천히 천천히
구름 위로 올려놓는다
우리시 발표
댓글목록
채송화님의 댓글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아서 궁금증이 도질 무렵 내려갈수록 풀리는 의문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로또 복권 맞은 그런 느낌! 설마 하다가 역시나!로 바뀌는 글입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마음이쉬는곳님의 댓글

트럭기사님 무사하신가요?
사실 트럭이야 깨져도 되는데
사람은 안전이 중요 하잖아요
트럭은 또 사도 되는데
사람 신상은 중요 하잖아요
그리고 트럭운전 하시는 분들
안전 운전 꼭 부탁드려요
조경희님의 댓글

읽어내려가면서 살이 떨리네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좋은 시로 함께 하니 좋습니다
희망의 3월 가꾸시고요^^
이경호님의 댓글

위 아래 뭔가 쾅쾅 부딪히는 분위기이군요.
독자도 마음이 쾅쾅합니다.
이면수화님의 댓글

교통사고 처리 전문가가 현장 검증하듯 촘촘하게 풀어나가는 詩線 속에 드러나는 고단하지만 푸릇했던 삶의 마지막 순간들...
아내와 자식이 눈에 밟히는 그 막막한 더는 상처 받지 않을 시간들이 먹먹하게 찐득하게 가슴에 차오릅니다.
졸음으로 과실치사죄를 범한 버스 기사의 삶과 가정 또한 순식간에 으스러지고...
아무튼 운전대 잡는 순간부터 저승과 이승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라 나 혼자라도 늘 二乘이라는...
강태승님의 댓글

김기택 시인에게 배운 솜씨 -ㅎㅎ-
감사히 읽고 갑니다-ㅎㅎ-
손성태님의 댓글

역시..갈고 닦은 솜씨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살아있는 언어가 그려내는 그림이 처절합니다.
잘 감상했어요. 이명우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