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한 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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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벌레 한 마리가
자벌레 한 마리가 지구를 끌고 간다
오물오물 거리며 늦은 저녁을 받는
오래된 입처럼 그의 몸에는
단단한 뼈가 없어 오므렸다 펴는
그 마디 사이사이로 무거운 슬픔들을
뚝뚝 끊으며 지구를 끌고 간다
앞을 짚고 뒤를 당기거나
뒤를 짚고 앞으로 밀어내거나
마른 수수대 같은 몸은
그렇게 눈과 귀가 없어 아무 것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였다
그저 뼈가 없어 무른 몸을
움막 같이 웅크린 채
앞만 보며 천천히 지구를 끌고 갔다
슬픔은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지 시도 때도 없고
부서지고 흩어지는 것들은 다 내게로와
하루하루 켜켜이 쌓여만 갔다
길은 멀고 어둠은 깊어도 바스락거리는 슬픔 끝에서
잠시 몸을 웅크렸다 또 다른 길을 찾 듯
자벌레는 눈과 귀가 없는 무른 몸으로
뒤를 짚으며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어둠을 흔들며 지구를 끌고 간다.
댓글목록
Sunny님의 댓글

시인님 머물다 갑니다.
오늘도 단단한 생각을 자벌레처럼 무르게 무르게
하루 엮어보자는 생각갖고 갑니다
좋은 날 되세요.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자벌레처럼 앞만 보고 살아오셨던
우리네 아버지 세대에게 이 시를 바칩니다~
고현로님의 댓글

이종문 시인의 '봄날도 환한 봄날'이 생각나네요.^^
귀공자 시인님 퐈이아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철없던 시절~
새벽녘 취해서 길을 걷는데 옆으로
아버지께서 100cc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시는데~~
추운 날씨에 잔뜩 웅크린 모습이 꼭 자벌레 같았습니다~
誕无님의 댓글

...
고요하게 읽히면서 울림이 강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히 지내십시오.
박성우님의 댓글의 댓글

울림이 있다니 영광입니다~
탄무님도 건강~~ 파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