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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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 *
나는 핏불이다
땅굴을 뒤적거리거나 수렵(狩獵), 조렵(鳥獵)한 흔적도 기억도 없이 사라진 폭스테리어가 있다
힘이 세고 용감하고 때론 광포하고 고통을 느끼는 데 둔감한 불도그가 있다
그들 사랑은 격렬했으나 신파조 단막극이다
태어남은 곧바로 버려지는 것이므로 나는 고독한 핏불이 되었다
찌그러진 면상만 상냥한 프렌치키스로 오인하지 마라 나는
저항하고 스스로 훈련된다
푸들 감정을 손질하는 무연고 개가 있다
나를 뱃속에서 짜내지는 않았으나 내 얼룩무늬 슬픔을 핥아준다
꼬불꼬불한 털이 출렁거리는 비숑 프리제는 엄마 같다
연민이나 가련한 어처구니는 희소하지만 있는 법이니까
내 살코기는 저돌적으로 팽창하고
근육은 분열적으로 단단해진다 링에 오르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다
공격은 정언명령이므로 돌격할 뿐이다
싸움을 주춤거리면 돌이 날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승부근성을 자극하는 메아리다
날 세운 이빨과 발톱만 가지고 구르는 진창은 즐겁다
살가죽이 떨어져 나가고 목덜미가 찢기면 편안해진다
죽어야 마무리되는 게임은 늘 있는 것이니까
분노를 자극하는 건 일종의 음악이다 그 영혼을 들으며 돌진한다
물어뜯고 쓰러뜨려야 비곗덩어리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는 게거품 물어야 한다
링은 말한다, 불타는 살의와 붉은 목덜미를 잊지 마라
자비는 이빨에 찍힌 시뻘건 멱통일 뿐이다 목숨 걸어야
노을은 그 저녁을 덮어준다 급소는 쾌활하다 그곳을 향해
판돈을 던지는 개들의 세상이 나는 즐겁다
핏불이 페달을 누르고 날아간다
자전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다
*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영화, 벨기에 출신 다르덴 형제가 각본, 프로듀스, 감독한 영화는 •1999년《로제타》 (Rosetta) •2002년《아들》 (Le fils) •2005년《더 차일드》 (L’enfant) •2008년《로나의 침묵》 (Le silence de Lorna) •2011년《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élo) •2014년《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등이 있다.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태양의 도서관
김연아
누가 말(言)의 감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태어나기 전에 하나의 말 속에 잠겨있었다
어두운 길을 걷지 않아도 죽음에 닿을 수 있는 세상이 있다
당신은 지평선에 눈을 얹고 소리 없이 나를 읽고 간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나를 데려갔던
그 새벽의 도서관을 기억해
그곳은 고해성사를 하듯, 빛을 토해내는
신비의 책들로 가득 차 있었지
책 속의 문장은 별과 고사리, 작은 여우,
부드러운 이끼, 늪지대의 안개로 넘쳐났어
여기는 당신의 빛으로 길러낸 책들의 사원
귀머거리의 말들이 웅성거리고
책들은 매 순간 자라나지
나는 저 무한의 도서관에 있는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책
나는 바람에 뒤척거리는 페이지
햇볕과 그늘 속을 시계추처럼 진동하는 사람
바람과 함께 사막을 배회하고 돌아온 말은
내 몸의 페이지마다 스며들었다
나는 쉼표가 많이 들어간 문장처럼
천천히 읽혀지기를 희망하지만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는 불가능해
내 몸은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질문을 당신의 거울 너머로 보냈다
그리고 몇 개의 글자를 받아 적었다
질문을 멈추면 세계가 사라지는 거라고
이제 우리는 술어의 한계에 도달했으니
그 너머로 나아가는 길은
생각에 머물지 않는 자들,
나를 버릴 각고가 된 자들의 몫이다
그러니 난 여기서 멈출 거야, 내 몸에서 휘발하는 이 말에서
한 귀머거리가 말(言)과 함께 떠났고, 장님이 그 뒤를 따라갔다
`
활연님의 댓글

* 시작 노트
초등학생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 냉동상태로 보관하다가 유기한 아버지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는...이달 13일 B군이 다니던 초등학교 측으로부터 "장기 결석 아동이 있으니..."
라이덴 형제의 영화는 기교가 없다 한다. 무기교는 어렵다, 그것은 바로 티 안 나는 기교이기 때문이다. 그들 영화는 장면으로 말하고 연출자의 개입이 거의 없다. 결론 또한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밋밋한 기법이, 밍밍한 기법이 오히려 말하는 바를, 그 자장을 폭넓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장이 되었다.
우리는 기교를 마치 장식처럼 이해할 때가 있다. 인간은 본디 장식을 걸치고 있는데도 알몸인 척한다. 관념적으로 보자면 참 솔직한 동물이다.
기술적 교량이 없다면 언어는 연체동물이다. 흐느적거릴 뿐이다. 해파리로 불어와 쏘아대기도 할 것이지만, 언어는 애초에 기교와 전략을 벗어날 수 없다. 기교란 기술적 교묘함이라서 독자에게 전달될 때, 직방의 감동을, 오로지 통각으로 얻는 말초적 감각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기를 적고 감동적이라고 이마에 붙이고 사적인 자랑에 유쾌해질 수는 없지 않은가. 바바리맨은 노골적이지만 그것을 공연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니라 본능의 은닉을 기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늙은 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노래로 인식한다, 그러나 젊은 시는 과거와 길항하고 현재에 저항하며 미래를 운다.
언어의 세공술은 기술과 교묘한 배려가 우선이다. 날마다 솟구치는 리비도로 독자를 흥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의 거울로 돌아가게 한다. 거울은 뒷면이 거울이게 하니까, 비유와 상징은 뒷면이다. 우리는 반사되는 것의 반대쪽이지만 그것을 정면이라 인식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기교가 문법에서 해방시킨다. 시적허용 또한 그 잘난 기교 아니던가.
자전거 타는 소년은,
"보육원에서 지내는 11살 소년 시릴(토마 도레)의 꿈은 잃어버린 자전거와 소식이 끊긴 아빠(제레미 레니에)를 되찾는 것이다. 어느 날,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도망친 시릴은 자신의 소중한 자전거를 아빠가 팔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게 된다. 아빠를 찾던 시릴을 우연히 만나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미용실 주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는 시릴에게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아빠를 찾고 싶어하고, 그런 시릴을 보며 사만다는 안타까워한다. 한편, 동네의 문제아로 알려진 웨스(에곤 디 마테오)는 시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사만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릴은 웨스와 가까워지는데……"
대략 이런 식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시릴의 별명이 바로 핏불(투견)이다.
마지막 장면은 문제아 웨스의 사주로 노상강도를 하게 되는데, 한때 고용주였던 아비와 아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돈을 갈취해서, 웨스에게 바치는 것이다. 시릴은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그에게 얼마간을 건넨다. 그 돈을 그를 외면하고 버린 아빠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받지 않는다. 그냥 꺼져라, 찾지 마라, 그게 아비가 한 말의 전부다. 시릴이 사만다에게 돌아왔을 때 범죄는 발각되고 합의를 한다. 그러나 합의자의 아들은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서, 우연 마주치게 되는데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시릴을 쫒다가, 자전거를 걷어차 넘어뜨린다. 나뭇가지를 타고 나무 꼭대기로 도망가는 시릴에게 돌을 던져 추락시킨다. 살인적 상황이었지만, 시릴은 간신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툭툭 털고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에게로 향한다. 그러니까, 복수는 이 정도로 쿨하게 된 거다, 너도 돌로 쳤으니 제값 치렀다. 그리고 담담하게 엔딩.
'내일을 위한 시간'은 실업자 될 지경의 여자가 사람이라는 섬과 대면하는 쓸쓸하고 간절한 행보를 그린 것이고
'로나의 침묵'은 진실한 사랑을, 그 사랑의 본질을 알아가는 한 여인의 척박한 삶에 관한 얘기다,
세 편의 영화를 권한다. 세 편 모두 다운 받으려면 대략 오천원 남짓이면 되는 영화다.
시릴의 모습이 선하다.
아무리 투견장이라 할지라도, 이런 험악한 기사가 뜨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영화는 간접 가담이고, 밑그림이고 배후지만,
영화에 기대 시를 적는 건 그렇지만,
착상의 동기가 된 영화가 고맙다.
시엘06님의 댓글

자전거 탄 소년! 그 외 영화들도 보고 싶은데요. ^^
저도 영화에 감동을 받으면 종종 감상평 비슷하게 글을 짓곤 합니다.
그렇다고 심도 있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감동을 좀 오래 머물게 하려는 일환으로
그렇게 하곤 합니다.
갑자기 사르트르의 '내던져진 존재'라는 글귀가 떠오릅니다. '향수'라는 영화도 생각나고요.
사랑이 결핍된 존재들이 환영처럼 떠도는 사회를 생각해봅니다.
의미가 깊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와 글을 읽으며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활연님.
활연님의 댓글

예술성이 있다는 영화는 좀 지루하지요. 하고자 하는 말이
내장형이라서 그런 것은 아닌지,
블록버스터처럼 터뜨리지도 않고, 그냥 잔잔한 일상을 옮긴 것 같은데
치명적인 장치들을 숨기고 그저 페이드인,아웃 하는데
그 정서에 휘말리게 하지요. 그래도 영화 보고 뭘 봤지, 보다
좀 장면이 남는다는 거.
요즘은 세상이 공포영화 같습니다. 주말 산뜻하게 보내세요.
하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