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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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어
백지위에 시를 적다가
숙성 잘된 시 하나 먹고 싶었지
고민을 많이 했지요, 답답한 한 줄을 버무렸다가 버려버렸지요
냉정히 돌아서는 연인들의 이별같이 사라졌죠
맛깔난 시 하나 먹기에는 시력의 입은 추레한 맛에 길들어 너무 작아져 버렸지요
너무 먹고 싶어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와락 삼키고 보니 시감이 아작나고 말았지요
배속에 들어간 한 줄의 아우성들이 신경 하나하나 끊어 놓고 있네요
아직 입속에 있는 행간의 긴 여운이 까칠하게 혀를 가만히 두질 않네요
시의 향기를 먼저 알아가는 순서들은
오래전부터 무작정 여기까지 달려왔나 봐요
눈앞에 펼쳐진 시의 식탁에 앉아 군침을 계속 삼키고 말았지요
손만 뻗으면 갈비 뜯듯 우두둑 씹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어요
한번 먹어서는 양이 어지간해서 채워지기 어려워요
천천히 시의 재료를 살피고 시속에 베인 깊은 맛을 먹어야 해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꼭꼭 소화 시켜야 한답니다
첫맛보다 끝 맛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저 시와 닳은 건강의 시심으로 들어가 온종일 살고 싶을 뿐이예요
시에 맛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요
시의 위장이 너무 아파 마지막 연까지 정신없이 먹어버려요
서정의 낯은 음률과 자유로운 현대시는 가장 친한 사람처럼
마음의 햇빛을 더 풍족하게 환하게 웃고 있지요
시의 영양가는 먹을수록 더 많아져서 지친 일상을 통통하게 살을 올리게 하고 있지요
몸이 아프면 약을 먹는 것처럼 치유의 주문으로 깊은 냄새는
살아있는 시인이 몰입해서 더 살아나는 순간의 환희,
온 몸을 가득적신 시감의 육즙으로 앞으로 먹어야 할 시 하나를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비 오는 날이면 시 하나가 더 그리워져서 허기에 시달려요
수유하는 아이처럼 몰캉몰캉한 시를 빨아들이면서 시의 요리집으로 다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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