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 창작시

비를 맞으며/광나루

집 가까운 거리에 공원이 있어 산책을 한다.

날씨가 흐리지만 준비 없이 시작한 산책

구불구불 소나무 늘어선 샛길에서 발걸음을 세고

나무 가지들 푸른 이파리 흠뻑 이고 끙끙대는 걸 보니

고통은 새 희망을 낳고

용기를 주고

미래를 준비하는 바탕이리니

원망하지 말고 받아들여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만난 소나기

빗줄기 가늘 때엔

이파리 무성한 나무 밑도 믿을 만하지만

빗줄기 굵어지면 아무 소용없는 것

그냥 선 채로 모든 내 모습 그에게 내어 줄 수밖에

빗물 속에 스민 수억 년 역사의 회오리다.

어제 흘렀던 그 개울이

어제 흘렀던 그 강물이

어제 찰랑거렸던 그 바다가

오늘 내 몸을 적셔 오는 건

나는 그의 물길이어니

단단하게 굳으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단 한 방울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다면

웃으리 내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날마다 내어 주어도 고마움 뒤로 하고

곁에 있어도 흔적을 기억하려 하지 않으니

땅마다 외치는 소리

물보라 되어 산을 넘고

무지개 따라 선을 만들며

자꾸만 선 선을 만들며

굳어지는 소리에

소나기는 슬픔에 젖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