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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식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8건 조회 2,037회 작성일 15-12-31 21:18

본문


화식전 貨殖傳       
             -우리는 기억하려고 망각한다




물속에서 타는 불을 쓴다
물불 흔들리는 걸 유령이라 읽고
유령이 부풀어 오른 시간을 부력이라 읽고
그 부표

아래 재가 된 숲
잿더미에서 꺼낸 눈알을 씻고 보면
물속을 떠다니는 기루妓樓들
취한 물을 지르고 가는 한 척의 기류
물에 녹은 공기를 흡입하려 말을 잃은
그 지점

누군가 한밤중에 금줄 그어두었으므로
물 절벽은 돌아선다 쓰고
한 숟가락 한 수저에 저녁은 다 소모되었다 쓰고
물 갈피를 뒤적거리는 독서

독을 품은 밀서라는 그 물돌이

물방울 속에 떠 있는 눈동자들
음악은 해저 눈먼 물고기 귀에서 흘러나온다고 쓰고
청소골 속으로 밤낮을 부리는 파도소리
그때 그 맞춤한 비린 가락들

물은 아무리 태워도 뼈가 남아
목구멍은 굴뚝같이 남아
물밖엔 낮달

눈이 뿌연
취한 식도락을 본류로 흘리고
불야不夜는 와류로 흩어지는 물돌이를 거머쥔다

소용돌이는 눈알 삼키며 흐려질 것이므로
더듬어 읽는 흐릿한 물속의 밤이 있다
고요히 젖어 오래,
망각 속으로 아롱지는 불빛

그것을 눈빛으로 읽으면
물 허공에 걸린 단단한 공허 깨뜨리듯
휘청거리며 타오르는 불
물속에 핀 불꽃 심지를
자꾸만 두 손가락으로 쥐는 날 있다

미안하지만 물속엔 계절이 따로 없다
밀리는 쪽으로 엄마의 자궁을 흐르는 유령선이 있을 뿐,

또다시 물 달력을 넘긴다




추천0

댓글목록

시엘06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엘06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화식전!

2015년을 보내면서 멋진 시 한편 읽습니다.
이미지는 말이 없다. 이미지는 이미지로만 말 할 뿐이다.
시공을 뚫을 듯한 저 그림들에 전율하며 올해 마지막 밤을 넘깁니다.

내년에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쩌다 나도 모르게 집중이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생각의 뼈나 가닥이 잡히면 그저 중얼거리게 되는.
이 글은 형식적으론 실패했어도 마음의 시니피앙이 시니피에에 닿기를.
일 년 만에 뵙습니다. 그사이 저는 부쩍 늙었습니다.
시집 한두 권을 마련하고 또 그것을 세상으로 내보내려면
어딘가 문도 두드려야겠고, 그렇게 몇 년 소모할지.
봉사 지팡이 더듬는 일이겠으나,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늦은 건 다만 늦은 것이고
세상엔 어떤 형식이나 절차도 있는 것이고
그날그날 뱉으면 함축도 함의도 흐르고 기 빠지고
서글픈 화수분이 되겠지요.

글쓰기는 달리기는 아닐 테지만, 새해 다짐 하나씩은 하듯이.

십년 놀았는데 십년 정진하면 꼭두서니 몇 포기 이마에 두를 날 오겠지요.
요즘 생각이 많아집니다.
시엘님도 이미 날개에 물기 다 떨어내셨으니 높이 비상하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좋은 시와 더불어 넉넉한 세상, 따듯한 곁과 더불어 만사형통하십시오.
바닷물을 툭 차고 오른 새해처럼 그것이 환한 희망을 상징하듯이
발걸음마다 그 희망이 합승하시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화식전"은 어디서 본듯한데...본듯한데...하며
댓글로 달린 시였던가 그도 아니다 하다가...
"비익조"의 댓글에서 봤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자꾸 이래서 스토커 성향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요. ㅋㅋ
저의 낮은 시안으로는 활연님의 시를 여러번 봐야하는데요....
그걸 노리시는 것 같습니다(웃음)

시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앗 ~눈을 뜨니까 일년이 가버렸는데요 ㅎ 이런 지나간 날을 찾아봐도 주머니에도 없고 감쪽 같이 증발되고 없군요

새해는 단단한 달력을 넘겨보았으면 하는마음 ,,,,저나 그리고 모두에게


첫날 환하세요^^

ta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새해의 맑음과 밝음 그리고 탁도를 순수로운 환희 오름 누리에 올리는
시상의 순결한 열정이 그리움을 부릅니다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경주 시인이
올해는 희곡부문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한 것 같은데,
저도 욕심이 생기는군요. ^^;;
아직 몇 편 못 읽어보았지만, 이맘때 가장 설레는 소식.

세 분 오늘 새봄문예 등단작 읽으면서 큰 꿈꾸는 하루 되십시오.
다녀가신 걸음 고맙습니다.

시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해 당선된 신춘의 시들은 특별한 기교나 특별한 장치나 세려된 문장 혹은 무릎을 탁지는 문장 눈이 휘둥그래지는 절경들은 없었고 보기 좋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멋을 부리지 않은 화장끼 없는 맨얼굴의 순순한 아름다움 반짝거리는 악세사리 같은 것이 없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찾은 것 같더라고요

나도 다른 건 출품 안했어도 동시는 한 열편 지방쪽으로 냈는데 ...경주가 부럽다 경주가 부럽다

그런데 이번 동아의 시 당선작은 역대 동아의 당선작과는  사뭇 다른 글풍을 문예지 냄새가 나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했더라고요 다소 이변적이다 싶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이번엔 어떤 시들이 당선이 되었나 찾아다니며 읽어보는 재미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직 아무리 찾아도 몇군데는 당선작이 실리지를 않았어요 조간신문이 아니라서 그런지
연휴동안 당선작을 읽어 보면서 감상도 하고 또 어떤 글엔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하고
시부렁도 하면서 연휴를 즐겨야 겠습니다 ㅎ

아무튼 평범 속에서 사변을 찾는 그런 글들이 당선작에 올랐다는 것은 복고풍이 다시 대세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년부터 그런 기미가 있었지요. 우리문단에 기교는 충분하다, 뭐 그런.
그런데 이런 기류가 더 어렵다는 거.
저는 국제신문 정도만 읽었어요. 나중에 책 나오면 한번 읽어봐야지요.
참 출품은 어떻게 하는 거요? ㅋㅋ

오늘 하루 신명으로 지으십시오. 저는 하루 뒹굴뒹굴 해야할 듯.

당선작 중
동아일보는 40대(7명)가 많고 50대(2명), 30대(1명) 비교적 고령이네요.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경향신문) ㆍ시 부문 당선작 | 변희수

의자가 있는 골목
    - 李箱에게

      변희수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심사평] 이시영/ 황인숙

기존 틀 차용했지만 사유를 끌고가는 의식 우뚝

  14건의 응모작이 예심에서 올라왔다. 그중 우선 고른 작품이 ‘의자가 있는 골목’ ‘벽과 대화하는 법’ ‘투명한 발목’이었다. 이 과정이 수월했다는 건 좀 서글픈 일이다. 새로운 종의 시를 포획하기를 기대하며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심사자들의 눈에서 그토록 쉽사리 빠져나가는 시들이라니. 재량껏 성심을 다한 시들을 보내주신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 아, 하지만 왜 그리 겉도는 거지? 붕붕 떠 있지? 한 걸음 더 성심을 담으시라. 진정을 담으시라. 하긴 열네 분의 시가 근사하면 얼마나 머리가 터졌을까. 고마운 일이다만.
 
  ‘벽과 대화하는 법’은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이이가 갖춘 표현력에 세상-사물을 읽는 힘, 인식의 힘이 더해지기를 바라며, ‘투명한 발목’과 ‘의자가 있는 골목’을 최종심으로 놓았다. ‘투명한 발목’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차분한 묘사와 어조로 독자를 시의 정황 속으로 천천히, 깊게 이끄는 시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시에도, 흠을 잡자고 눈에 불을 켜니, 성근 부분이 있어 아쉽다. ‘의자가 있는 골목’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로 시작되는, 이상의 가장 널리 알려진 시 ‘거울’의 말투를 베껴서 쓴, 즉 이상 풍으로 쓴 시다. 새로운 시인을 가려 뽑는 자리에 기존 시인이나 시를 패러디함으로써 오마주를 보이는 시를 뽑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 틀 속에 자기 생각, 자기만의 세계가 담겨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사유를 길게 끌고 나가는 힘 있는 진술 속에 시인 의식이 우뚝하다. 그의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어서 믿음이 간다. 건필을 빌며 축하드린다!  <시인 이시영·황인숙>
▲ 변희수(본명 변정숙)/ 1963년 경남 밀양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대구 거주.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16 조선일보 당선작

생일 축하해

  안지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신기하지
낯선 골목에 당신의 얼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니
네게선 물이 자란다, 언제 내게서 그런 표정을 거둘거니
누군가가 대신 읽어준 편지는 예언서에 가까웠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나의 감정을 선언하니
벽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 때에
당신은 살아있구나, 눈치 챘지
문장의 바깥에 서서
당신은 긴 시간동안 사람이었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언젠가 손을 맞잡았던 적이 있지, 짧게
우리라고 불릴 시간은 딱 그만큼이어서
나에겐 기도가 세수야
당신을 미워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오래 마주보고 있기엔 당신의 눈동자는 너무나 투명해
표정은 쉽게 미끄러지고
벽을 등지고 걸으면 내 등이 보이는 오늘
누구랄 것 없이 녹아 흘러내리지만
언제나 당신은 젖지 않지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의 종교가 되길 바랄게
기일 축하해,


 

 

 

[심사평] 정호승 시인·  문정희 시인 
소통의 詩… 삶· 죽음에 대한 역설적 인식 돋보여 

  최종심까지 올라온 16명의 시 50여 편을 읽고 느낀 공통점은 '소통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두루뭉수리여서 쓴 사람 혼자만 읽고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 할 시를 읽게 되는 고통은 무척 컸다.

  "이전의 이후의 반물질과/ 무기체의 감각/ 물렁뼈에 속하는 밤/ 귀, 귀(鬼), 현실/ 가느다랗게 흐트러져가는 형상에 대한/ 신뢰는 얼마나 대단한가."(이현정 '벽에 걸어놓은 외투는 살아 있다' 부분)

  한 예에 불과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시는 대부분 시 스스로 독자의 이해를 거부한다. 현란한 기교가 난무하고 몰이해를 바탕으로 한 산문성이 두드러진다. 시의 심장이 은유라면 그 은유의 심장이 피를 흘리다 멈춘 듯하다. 다양성이 미덕인 시대에 그 다양성을 긍정한다 해도 지나칠 정도로 관념적이다. 마치 관념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는 서정과 구체에 뿌리를 내린 비관념적 소통의 시는 이미 낡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는 낡았든 새롭든 소통의 통로를 통해 써야 한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흐르지 않는 꽉 막힌 수도관을 통해서는 물 단 한 잔도 받아 마실 수 없다. 그동안 한국 시단은 뒤틀린 추상과 관념의 언어로 구축된 불통의 시를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관용하거나 방치해왔다. 행과 연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필연성이 결여된 산문 형태의 시와 관념적 불통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래라고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오늘의 현상은 한국 현대시가 어떤 한계에 다다른 부정적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구어체로 이루어진 당선작 안지은의 〈생일 축하해〉는 당선작이 될 만큼 작품으로서 우수성이 탁월했다기보다는 소통 가능한 시가 그래도 이 시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일 축하해〉는 삶과 죽음을 동질 관계로 인식한 바탕에서 쓴 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일상의 순간에 만나 깊은 애증의 대화를 나눈다. 죽음이란 "걷던 길에서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이라는, 기일이 생일이고 생일이 바로 기일이라는 이 역설적 인식은 죽음을 도외시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종심에서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박은지의 〈공유지〉, 박진경의 〈다이빙〉, 이종호의 〈작은 방〉, 이현정의 〈북극점 한 바퀴〉 등이다. 이 작품들에 대해서는 시는 언어로 이루어지며 그 언어가 지닌 구체의 본질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 안지은 / 1992년 8월 6일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 중.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새해 신춘문예 당선작 검색하다가 배너 광고의 현란한 s몸매에 눈이 획 돌아서 딴짓하다가 왔는데요.
이곳에 편하게 읽도록 올려주셔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활연님은 킹왕짱의 짱!!!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이곳저곳에서 구했는데
이게 정확한지 모르니까 나중 확인해 보삼.
그냥 읽고
공부해보자는 뜻.
사이버 검색 어려브~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국일보 2016신춘문예 시 당선작]

위험 수목

  노국희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에 앉아있어 
긴 오후가 지나가도록
지금 나뭇잎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왕개미 옆에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헤프게 구걸도 해보았다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
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
알록달록 실패들을 엮어 만든 바구니를 들고
저기서 당신이 걸어온다
마른 생선 하나를 내어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비릿한 기억이 손 안에서 파닥거린다
목이 없는 생선이 마지막에 삼킨
말들이 마른 비늘로
바스러진다
낡은 허물 위로 매미소리가 내려온다
울어본 기억만 있고
소리를 잃은 말들이
그림자 속에서 가지를 뻗는다
 

 

[심사평] 김소연(시인)/ 조강석(문학평론가)/ 황인숙(시인) 

과감한 언어의 도전

  1차 심사를 거치고 난 뒤 심사위원들의 손에 들려 있던 작품은 세 편이었다. 김수화씨의 ‘아버지가 족문을 옮기는 방식’, 이언주씨의 ‘만두를 빚다’, 노국희씨의 ‘위험 수목’이 최종적으로 거론됐다.
  세 편의 작품 모두 그럴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김수화씨의 작품은 삶의 경험을 지나친 감정적 과장 없이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기량을 보여줬다. 이언주씨의 작품 역시 일상적 소재에서 삶의 실감을 잘 구현해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김수화씨의 경우 군더더기 없이 경험을 풀어내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발화법이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신인의 패기에 값하는 도전의식이 아쉬웠다. 이언주씨의 경우에도 단정한 사색이 장점이 되지만 동시에 언어의 입체적 개진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심사위원들은 이와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국희씨의 ‘위험 수목’을 당선작으로 선보이는 데 합의했다. 과장이나 엄살이 없이 기억과 상처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구도에 있어서는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과감한 언어 운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음으로 짜인 나무 그늘” “울어본 기억만 있고/소리를 잃은 말들”과 같은 긴장감 있는 상상력이 “당신의 삶을 훔치는 것으로/도벽을 완성하고 싶었어”와 같은 도전적인 문장에 실려 전개되고 있다. 취의와 언어 운용 능력에서 안정감과 패기가 함께 드러나고 있어 짧지 않았을 시 쓰기의 이력에 신뢰감을 갖게 한다. 좋은 신인을 시단에 소개하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앞으로의 도정에 문운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 노국희 / 38세. 서울 서대문구.
`

시꾼♪님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큐브





면을 돌린다
네 개의 뿔을 가진 성난 눈초리
다가갈 수 없는 모서리
익숙하지 않은 경계
 
면을 돌린다
반듯하게 줄을 긋는
곧은 대답
전설처럼 등지고 있는 벽
위로받을 수 없는
네모의 의혹은 커지고
수상한 귀퉁이의 각은 증명한다

면을 돌린다
중앙을 공격한다
눈을 뜬다
놀이가 된 도형
일정한 방향으로
서로 맞춘다

다시 면을 돌린다
갇혔다가 풀려나는
매혹을 느끼며
활기차게 뛰어든다

비즈니스센터의
저녁 창문은
퍼즐의 공식
밀폐된 면과 면이
독기를 띠며
부활한다



위  2016년 신춘문예 부산일보의 당선작을 보면

일단 시제가 싱싱한 활어 같다
큐브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놀았던 퍼즐 맞추는 게임

그 퍼즐의 게임 기구를 가지고 삶의 단면을 대입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설악산의 절경은 은밀히 말해서 없다
어찌보면 정말 평범한 문장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2연의 6행 7행 5연의 전체 행
이 부분에서 비유와 표현들이 잔잔한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시가 당선된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신선한 시의 소재와 발상 
그 소재에 여러 가지 시대적 현실적 삶을 대비한 것과 반복적 표현으로 어떤 대상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생산해 가는 부분과 기교가 덧칠해지지 않은
자신만의 목소리로 쓴 참한 글쓰기가 장점으로 부각되어 당선작이 된 것 같은데

활의 생각은 어떤지
우리끼리 시부렁 하면서 앞으로의 글쓰기 방향과 공부에도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ㅎ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상당히 기교적인데요 ㅎㅎ
응모자가 이 정도로 힘을 뺀다는 게 바로 기교.
큐브는 현대사회의 자화상인데,
목적과 의도를 버리고 동작만으로 완성했으니까 아마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무슨 말을 억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연이 듣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습작이 많지 않은 사람의 참신한 글 같기도 해요. 뭐랄까
아직 미성숙한 면들. 그 검불이 남아 있는데
초점과 화점이 정확하니까
역설적으로 안정적이다. 힘 빼기 공법
무심이 오히려 가득찬,
이렇게 써서 내밀 줄 안다면, 오히려 오래 닦았는지도.
시 자체에는 힘을 안 주고
면만 다스리고 이만 그렇게 매듭짖는 솜씨를 본 것이겠지요.
제 눈에는 탁월하다, 그런 생각은 안 듭니다. 요 ^^

시꾼♪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에서 기교란 것이 명확하게 그 무엇이다 정의하기는 좀 애매한 부분들이 상존하지만
화려한 질감과 색칠이 어쩌면 기교에 해당되는 질감이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
오리려 검불이 있는 것이 참하다 의도적 힘빼기는 아닌 것 같고 다소 거친 질감을 가진 것이 자신의 목소리로
오히려 더 살갑게 와닿지 않았나 싶습니다

 /목적과 의도를 버리고 동작만으로 완성했으니까/

이 부분이 성공한 시 같습니다

시꾼♪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시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같은 소감 경향 동아가 일단 읽어본 신춘글에서는 저의 최종심에 올랐는데 동아에 장원을 주고 싶습니다 ㅎ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체적으로 여성들 전성시대..
동아 말고는 죄다, ㅋㅋ, 뭣 떼야겠어요.
서울신문 당선작에는 남자가 한 마리도 없음.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16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가족/ 정신희

 
가족

    정신희
 

 

공손하게 마주 앉아 
서로를 향해 규칙적으로 다가갔다
흑백으로 갈라지는 길들이 뒤섞이더니
우리 사이는 점점 간격이 사라졌다
기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올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
그가 먼저 돌을 놓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끝까지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
입 안에선 쉬지 않고
돌들이 달그락거렸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위험했다
돌을 던지고
끝까지 서로를 모른 체하고 싶었다
길이 팽창하고
수거함엔 깨어진 얼굴이 가득하고
우리는 맹목적으로 달려갔다
한번 시작한 길은 멈출 줄 몰랐다 

 

[심사평] 정호승(시인)/ 유성호(문학평론가)

깔끔한 표현으로 서정적 구체성·투명성 살려

  이번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많은 분이 응모해주셨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함께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이 만만찮은 시간을 축적한 결과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의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도 많았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사례도 많았음을 깊이 기억한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함께 주목한 이들은 모두 세 분이었다. 이혜리, 최혜성, 정신희씨가 그분들인데,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정신희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혜리씨의 작품들은 감각적 장면들을 상상적으로 모자이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충격과 반응으로 연쇄해 가는 감각 운동이 진정성과 독자성과 연관성을 두루 지니고 있었다. 최혜성씨의 시편은 특별히 ‘미동’이 끝까지 경합하였는데, 매우 밀도 높은 관찰과 표현이 특장으로 거론되었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소묘의 집중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결국 정신희씨의 ‘가족’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전언의 구체성과 깔끔한 표현, 그리고 착상과 비유의 과정이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이 시편은 규칙적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맹목과 위험을 동시에 지닌 관계로 ‘가족’을 파악한다. 물론 이러한 파악이 정신희씨만의 개성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당선작은 그러한 파악을 ‘그가 먼저 돌을 놓기를 기다리는 동안/나는 끝까지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표현에서 보이는 긴장과 예각적 균열을 통해 보여주고, 나아가 ‘길’의 뒤섞임, 팽창, 멈출 줄 모르는 질주의 형상과 그것을 어울리게 하면서 서정적 구체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살려주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점 여러모로 신뢰를 주기에 족했다.
▲ 정신희 / 1961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상. 경기도 광주 거주.


서울신문 당선자들은 모조리 여성분들.. 이분은 동향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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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스티커 /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배달부즉시출근가능 일수당일대출 신용불량자도대출可
얼어붙은 전봇대를 덮이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2016 신춘문예] 시 - 이명우 씨 당선 소감 / 긴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년 넘게 시를 써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를 쓸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나 시를 쓰라고 배려해주는 편한 직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 쓸 시간을 벌 수 있을까 해서 숙박업을 하다가 있는 돈까지 다 까먹었다. 시 때문에 여유롭던 나의 생활은 팍팍해졌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를 통하여 내면을 치유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여러 번 신춘문예에 응모하였으나 최종심에만 몇 차례 올랐을 뿐이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좌절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올해까지 등단이 안 되면 등단을 포기하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국제신문으로부터 당선 소식을 듣고 힘을 얻어 다시 시를 쓸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린다. 어머니는 운명하기 며칠 전까지 막내아들인 나를 걱정하시며, 누님한테 유언까지 남겼다. 지난달 16일이 어머니의 사십구재였다. 구인사에 내려가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다.

시의 길로 이끌어주신 강인한 선생님, 정숙 선생님, 조연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시마패 회원님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시를 쓰며 만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딸, 아내, 다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남송우 박남준 안상학, 세 분 심사위원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약력=1959년 경북 영양 출생. 영양고 졸업. 현재 서울에 살며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음. 제1회 2400만 원 고료 암사동유적 세계유산 등재기원 문학작품 공모 대상(2013년).


[2016 신춘문예] 시 심사평 / 삶 현실감 있게 보여준 공감 능력 높이 평가


한국 문단의 새 별이 되기 위해 시 부문에 응모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에 걸쳐 있었고, 지역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332명 응모자의 숫자만큼 작품의 우열도 편차가 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부터, 기성의 시를 초극해보고자 하는 의욕에 넘친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시편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두고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의 거름을 통해 남겨진 작품들은 수준작이 많아 심사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황미현의 '다랑어 도마氏', 이은주의 '개인별 오아시스', 종이정의 '묵화',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 이명우의 '스티커' 등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미현 이은주 종이정 3명은 투고된 다른 작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과 같은 높이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와 이명우의 '스티커'가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상상력이 장점으로, 후자는 삶의 진정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감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이미지화한 후자에 심사위원 모두가 더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 새로운 별이 된 것을 축하하며, 큰 별로 성장해 나가길 빈다.

심사위원 남송우 문학평론가, 박남준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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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

              조상호

 
  입술을 달싹일 때 해안선이 느리게 펼쳐진다 거기 혀가 있다 행려병자의 시체 같은 

  풀잎처럼 흔들리는 그림자, 달은 빙산이 되어 은빛을 풀어헤친다 물빛을 깨고 비치나무 냄새 번져오는

  젖을 희끗희끗 빤다 안개, 서늘한 빗방울, 물방울 띄워올린다 뿌리가 부풀어오른다 물거품처럼

                                                  *

  웅웅거리고 부서지고 내장처럼 고요 쏟아져 내리고 내려야 할 역을 잃고 흘러가는 페름 행 전신주 흰 눈송이들 백야의 건반을 치는 사내 -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 길고 가는 손가락 갈라지고 떠도는 핏방울 소용돌이 변두리로 나를 싣고, 창 밖 쁘이찌 야흐 행 마주보며 또 길게 늘어나고 민무늬 토기처럼 얼굴 금이 가고 스쳐가는 가, 가문비나무 그늘 나뭇가지 그림자 일렁이는 시간 산란하는 밤의 시작을 경계를 지나 나는 또 바라보고 있고

  마젤란 펭귄들 발자국 소리 울음 아, 미역줄기처럼 늘어지고

                                                    *
 
  움푹 파인 자국, 발자국들, 혀 뿌리가 길게 늘어져 꿈틀거린다 하얀 모래밭, 그리고 하얀 추위, 그리고 하얀 포말

  기억과 마디가 끊긴 생선뼈와 조개 무덤 사이를 가마우지들 종종 걸어나오고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 우수아이아, 숲길, 뒤틀린 비치나무 뿌리, 물거품이 사그라든다

 

 [심사평] 황현산(문학평론가)/ 김혜순(시인)

  본심에서 5명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펜트하우스’외 4편의 시는 비유를 적절히 운용해서 한 편의 시를 끌고 간다. ‘엄마가 방 안에 앉아 재봉틀로 짝퉁 루이비통에 유성들을 박아넣는 경험’에서 시가 발아한다. 그 자리에서 재봉틀은 유성이 되고, 방은 펜트하우스가 되고, 인공위성을 미행하며, 재봉틀의 잔소리가 음속을 돌파한다. 비유된 세계와 실재 세계가 일대일로 대응하고 있다. 다른 시에서도 자신의 입으로 불어야만 하는 ‘진술’ 행위와 유리 알전구 만들기 같은 두 가지 행위가 ‘불다’라는 동사의 주어로서 같은 의미를 내포해 배열되고 있다. 그러나 시 한 편에 다 포함될 수 없는 문장들이 돌출하고, 비유에 치중하느라 현실감을 놓쳐버리는 부분이 지적됐다.
  ‘훈풍’외 4편의 시는 시편마다 들어 있는 간곡한 말, 경험을 고백할 때 언뜻 보이는 아픈 정경들의 표현이 좋았다. 자신의 기억을 말에 걸칠 때 그 말의 결을 스스로 발명해내는 것이 시의 새로움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특한 손놀림’, ‘팔딱이는 주먹 심장’처럼 두 개의 단어나 세 개의 단어로 경험을 응축해버린 어귀들이 많고, 이 부분들이 오히려 시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입과 뿌리에 관한 식물학’외 4편은 상상력으로 시를 끌고 간다. 은유된 언어의 머뭇거림과 확장, 빠른 질주와 멈춤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시는 마치 ‘점령할 수 없는 나라의 국경처럼’ 언어로 만든 점과 선, 리듬으로 시에 여러 개의 경계를 설정한다. 동시에 언어적 상상으로 세상을 더듬어 나가고, 더불어 떠나고, 정신의 세계를 어루만진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음운과 음운들이 서로 조응하면서 달려간다. 시의 ‘입술을 달싹’여 저 ‘마젤란 펭귄’이 사는 곳까지 뿌리를 내리며 가는 것이 아마도 이 시인의 ‘식물학’이리라. 논의 끝에 응모작 5편 모두 고른 시적 개성과 성취를 가진 점을 높이 사서 ‘입과 뿌리에 대한 식물학’을 당선작으로 선했다.
▲ 조상호 / 1976년 전북 고창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재학.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다지 좋다 싶은 것이 드물다.
심사자들 면면도 고만고만하다, 아직 저들이
최종심을 한다면 뻔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소감이라면 최종심에 있는 시인들부터 물갈이해야 한다는 생각.
시는 젊은 힘이 밀고, 중견(中犬)은 뒷자리에서 그들 나른한 시를 재차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
문단권력이란 것이 뻔하지만, 너무 물리고 고루한 등장인물들이다.
그들은 이 시대를 받아내기에는 노회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시는 이미 과거인데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보는 것 또한 한계다.
전체적 흐름이 그간의 난폭한 시를 반성하자는 취지도 있겠으나,
오히려 수구 쪽으로 무게를 두다 보니까 참신한 신인의 등장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글짓기 수준인데,
이것은 작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청년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그 드센 물결을, 감성적인 감각으로 이끌자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올해의 경우 당선자의 상당수가 고령이다.
문청들은 설 자리가 없다.
그만큼 그들은 세상을 혁파하고 혁명하는 목소리를 거세하고 있다.
그들 잣대로 시를 재단하면서,
그러므로 이 또한 반성적 턴이 아니라,
문단권력의 부적절한 힘의 과시다.
젊은 문청들이, 날카롭게 시대를 헤집고
나른한 서정주의 나른한 낭만주의 나른한 시대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기성을
분쇄하길 바란다.
(쩝, 모두 내 생각)
문단이 늙으면 어디서 바른 소리, 바른 시가 솟을 것인가!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무 그렇게 너무 감싸 안으면 남들이 사시 눈으로 봐요.
물론 언급 하신 님은 당선작보다 잘 쓰지만 말이지요. ㅋ
잔소리가 많으면 큰소리가 될까요.
나도 잔소리하자면 글쓰기엔 내조가 없다 뭐 그런 식.
남쪽편이 뭘 하면 그 구덩이에서 나올 때까지 아멘하거나 관심없는보살하면
마음 편해지실 듯.
오늘은 습작생들이 새봄을 검토하는 날.
딴짓 안 하고 한국문단 현재를 읽고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ㅎ
요즘 여성들이 대세니까
좋은 시로 중앙신문 석권하시길 기도할게요.
등뒤엔
한밤중에 가만히 붙어서 손은 젖꼭지를 잡고 잠들면 좋습니다.
새해 즐거운 일들 넘치는 나날 지으십시오.
빠이팅!

최경순s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경순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활연님!

활연님 시에
깊이를 깨닭지 못하는 심정
무한한 그 깊이에 소름이 돋습니다
또한,
그 소름도 저에겐 언젠간 햇 뜰 날 있겠지요
부디 한석봉 버금가는 문장가가 되시길 시원합니다
부끄부끄^^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이제막
조랑말 하나 구해 유랑이나 떠돌다가 운이 좋으면 운석 하나 줍고,
저는 우리동네에서는 그래도 좀 쓰는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경순님도 올해 문운 창대하여 좋은 시 많이 만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윤희승님의 댓글

profile_image 윤희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물론 제가 눈이 낮아서 그런거겠지만 제 눈엔 신춘문예 선작들이 시말문예 가작 턱걸이 수준정도로 뵙니다

활님은 곳간속에 조만간에 과일들 챙겨서 과일집 하나 내십시요  (고객들 안 먹어본 너무 큰 과일이나 너무 이쁜거는 빼시고)

저두 여기 저기 알리고 주머니 털어 몇 집 사겠습니다  단에 오르는게 뭐 별건가요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묶기는 해야지요 한두 권 정도. 오랜 시간 내가 살아온 이력일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엔 폐색한 입구가 있지요.
출판도 식구끼리 뭐 그런 식의 관행들도 산재하고, 또 너무 많은 시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시 공화국인 것은 맞은데.
거대 자본으로 문예지를 만들고 대항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 많은 것들은
고스란히 사멸할 것입니다. 수준 이하 싸구려 문예지가 범람하는 것도 사실이고,
또 구멍가게조차 안 되는 영세한 출판들도 비일비재하고.
시가 자본 사회에 버티려면, 단단한 축도 필요하겠지요. 어쩔 수 없이.
등용이 참 힘든 것이지만, 안해 본 것이니까, 한두번 시도하고
아니면 말고 그렇지요. 객관적인 과정이 없다면 헛소리다 그런 생각도
드는데 막연하기만 합니다.
새해 빛나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 섬뜩한 전율 많이 보여주십시오.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 올 신춘의 가장 커다란 성과, 괴물 출현!!

** 소설부분에서 거의 유일한 쾌거!
    박민규를 잇는 똘똘한 혜성 등장,
    야, 임마 이게 신춘이야~
    스물 중반이니까, 이 자가 곧 한국문단 흔든다!!
..............................


[단편소설 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

  [조선일보 2016 신춘문예] 상식의 속도 / 원재운




당신의 데이터를 호출합니다.

하나, 둘. 호출 완료. 열람을 시작합니다. 원하는 항목을 말씀해주십시오.

알큐비에르 매트릭스 (Alcubierre Matrix) ; 교통의 진보는 곧 인류의 진보였다. 먼 곳을 꿈꿀수록 세상은 좁아졌다. 선명해졌다. 그러나 미답의 별들은 환상처럼 반짝였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은 9년 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성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St. Albert Einstein)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천명한, "모든 양의 질량을 가진 물체는 진공상태에서의 빛보다 빨리 이동할 수 없다."는 진실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이다. 무한에 가까워진 세상, 다가갈 수 없는 별,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어려운, 속도의 문제였다.

두 발로만 섰던 시절의 선조들은 사냥의 성공을 바라며 동굴에 벽화를 새겼다. 장 에티엔 르누아르(Jean Etienne Lenoir)의 발명이 있자 많은 창작물들이 내연기관의 앞날을 논했다. 먼 곳을 향한 꿈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구 미합중국의 SF 프랜차이즈 시리즈 'Star Trek'에는 '워프 드라이브'란 기술이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창작물 'Star Wars'는 '초공간 도약'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여타 창작물들 역시 난제를 풀기 위한 가설을 고안했지만, 워프 드라이브는 인류가 실현해낸 초장거리항법기술 알큐비에르 매트릭스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초공간 도약을 비롯한 다른 것들과는 차별화된다. 'Star Trek'이 그려낸 멋스러운 밑그림에, 후대는 아름다운 채색을 해낸 것이다.

여기 평범한 배 한 척이 떠 있다. 배의 앞쪽 수면을 낮추고, 뒤쪽은 높인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수평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흐름을 따라 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움직인다. 수면의 높낮이 차이가 클수록 속도는 올라간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주선이 향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앞쪽의 공간을 접는 동시에 뒤쪽의 공간을 늘린다. 압축되고 팽창된 공간 역시 제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속도는 조작된 공간의 양에 따라 좌우된다.

알큐비에르 매트릭스는 우주선을 중심으로 워프 필드라 불리는 영역을 설정하여 공간을 주무르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 전진하는 것은 설정된 공간, 즉 워프 필드 자체다. 우주선은 필드의 중심에 고정된 채다. 나아가는 공간에 선체를 맡기는 것이다. 때문에 필드 내 공간에 대한 우주선의 상대속도는 0에 머무른다. 빛의 속도를 돌파한다 해도, 이동의 주체는 양의 질량을 가진 우주선이 아니라 워프 필드라 불리는 일정한 공간이기에 상대성 이론을 위배하지 않는다. 승무원들은 중력가속도의 영향에서 자유로우며, 생존보장을 위한 특별한 수단은 불필요하다. 그저 살아가면 된다. 이 이상의 지식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므로 생략한다. 알아야 할 사실은 알큐비에르 매트릭스의 핵심개념이 오백여 년을 넘은 지금까지도 계승 및 발전되어 각종 우주선에 쓰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구에서 35광년 떨어진 쌍둥이자리의 폴룩스까지 닿는 시간이 단 58일로 줄었다는 것이다.

브레이브 호 (The Brave) ; 태양계 바깥을 탐험한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자, 알큐비에르 매트릭스가 탑재된 첫 우주선. UE(United Earth)가 주도한 우주개발 50개년 계획의 첫 성취였다. 전장 220m, 전폭 84.4m. 승무원 731명. 취역연도는 AD. 2841년이며, 출발한 지 142일 만에 쌍둥이자리의 카스토르 근처에서 외계종족 젬(Gem)에 의해 격추당했다. 생존자는 없었다. 발견된 잔해들 사이에는 메인 엔지니어 존 바티스타의 헤드기어가 있었다. 그는 헤드기어의 메모리에 일기를 쓰듯 음성을 녹음했다. 이하는 메모리 속의 기록을 발췌 및 정리한 것이다. 브레이브호 승무원들의 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아내'와 '딸' 같은 어휘의 의미는 해당항목을 통해 알아보길 바란다.

"어떤 날에 대해 기록할 때에는 흔히 날씨 이야기를 먼저 하곤 한다. 하지만 날씨를 떠올리는 일이 생경하다면 무엇부터 기록해야 하는 것일까. 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온통 검다. 나를 포함한 탑승자들은 바깥과는 다른 시간 속에 있다. 계속 검다. 워프 필드 안의 선체는 중심에 머무른 채로 사방의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나아간다. 나아가지만 나아간다는 느낌은 없다. 나아가지만 나아가지 않는 곳에 머물러서인가, 가끔은 내 몸의 일부가 지구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구로 귀환해도 아내는 세상에 없을 터다. 대신 나이 든 딸이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반 승무원은 지원자들 중 연고자가 없는 이들을 주로 선발하여 훈련시켰지만, 지휘 계통이나 기술자 계열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른한 흥분이 승무원들 사이를 감돌았다. 매트릭스를 가동하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승무원들은 업무 외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늘 같은 창밖을 무시하고 선체 내부로 침잠한다. 헤드기어다. 업무를 마친 이들에게 주어지는 무한의 자유. 연고자 문제보다 우선시한 것은 인공현실에 대한 적응도였다. 헤드기어는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따른 세계를 구현하는데, 특별한 요구가 없다면 스스로 사용자의 심상을 읽고 알맞은 환상을 짜낸다. 가족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은 가상의 반려자와 더불어 아이를 키운다. 반대의 성별이 되어 관계를 해본다. 고대의 전쟁에서 기병대의 최전방, 첨단부에 서서 말을 타고 내달린다. 실력 좋은 요리사나 건축가가 되어 이것저것 만들며 기꺼워하기도 한다. 나른한 흥분은 이곳에서만 유지된다. 반짝이거나, 끓거나, 타오르거나, 얼 수도 있다. 나는 화가가 된다. 어렸을 적 꿈이었다. 누군가의 앞에서는 어쩐지 부끄러워 들지 못했던 붓을, 헤드기어를 쓰고는 마음껏 쥘 수 있다. 행복한 아내와 행복한 딸과 행복한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헤드기어를 거의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선장의 경우다. 선장은 배의 모든 상황을 항시 알고 있어야 한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주조종실에서 보낸다. 그런 선장도 모두의 앞에서 헤드기어를 쓸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선장을 포함한 모두가 헤드기어를 착용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 진공포장지에 동결 건조시킨 우주식량은 혀의 이상을 의심케 하는 동시에 눈을 괴롭힌다. 딱딱한 사각형의 토마토 파스타 같은 것들이 그렇다. 때문에 선체 내에서 제일 조용한 곳은 식당이다. 승무원들은 우주식량을 씹으며 머리에 쓴 헤드기어에 감각을 맡긴다. 서니사이드업 계란프라이와 베이컨 두 조각이면 업무의 능률이 오르고, 스테이크나 칠면조 요리를 먹으면 아령을 들고 운동도 할 수 있다. 포도주를 마시면 무중력에 몸을 던지고 아내와 딸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도 있다. 헤드기어 덕분에 살이 찌고 있는 해리 같은 친구도 있다. 가끔 특식으로 작은 텃밭에서 자외선으로 키운 감자가 나오긴 한다. 모자라다.

알큐비에르 매트릭스 가동 중엔 여덟 시간 단위로 점검의 일상이 반복된다. 브레이브호는 기존의 우주선과 다르다. 기다란 막대기 형태의 본체가 있고, 두 개의 원형 구조물이 선체를 감싸고 있다. 이 원통의 회전에 시공간을 접는 비밀이 있다. 워프 필드의 설정은 물론, 종료 시에 방출되는 에너지를 사방으로 흘려보내는 조건까지 충족하는 구조다. 엔지니어들에게는 불만족스럽다. 단순하게 면적이 넓어진 것만으로도 손 가는 곳이 많아지는데, 회전이라는 복잡한 구동까지 한다. 워프 시에는 선체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기관실 내부에서 기본점검만을 실시한다.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기에 다가오는 사람은 근처에서 일하는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엔진소리만이 바닥을 울린다. 가져온 전동 드라이버와 장비들을 내려놓는다. 헤드기어를 쓴다.

딸의 그림은 이제 채색을 할 차례다. 팔레트에 물감을 짜낸다. 수채화는 유화와 달리 수정이 어렵다. 덧칠하면 색이 탁해지고 종이가 상한다. 처음에는 한 폭마다 수십 장을 구겨야 했다. 이제 종이는 내 붓이 고른 색채를 머금어 화려하게 꽃피운다. 딸이 아름다워질수록 사이드테이블에 놓인 물통은 탁해진다. 물통 곁에는 한 무더기의 편지가 놓여 있다. 헤드기어가 멋대로 가져다 둔 것이다. 나는 저것들을 펴 보지 않았다. 팔레트를 편지더미 위에 올려놓고 바람을 부른다. 종이를 말리기 위해서다. 문득 고향, 아칸소가 떠오른다. 미시시피를 향해 동서로 흐르는 강은 구릉과 계곡을 지나며 곳곳에 호수를 만들었다. 큰 줄기에 닿지 못하고 고인 물은 한을 풀려는 듯 계속해서 근처의 땅을 적셨다. 진흙 위로 부는 계절풍은 때로는 심심했고 때로는 달달했다.

달콤한 바람이 석양에 스며들 때면, 사람들은 호숫가의 한적한 술집에 앉아 잔을 기울였다. 사랑을 읊는 시의 한 구절, 흙바닥을 떠나 아스팔트를 밟겠다는 외침이 물결 위로 흩어졌다. 아내와 내가 중력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던 고향의 색채와 그림 속 딸의 빛깔은 꼭 닮아 있다. 호숫가에 선 딸을 보고 싶어진다. 풍광을 가져오기로 한다. 자박, 하는 발소리와 함께 그림 속의 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황혼이 깃든 드레스 차림의 딸이 내게로 다가온다. 걸음마다 딸은 변모한다. 내가 어느 날엔가 만날 얼굴이 되려다, 되기 전에 멈춘다. 마지막으로 본 아내의 모습이다. 지구를 떠나올 무렵의 아내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그때 같은 얼굴로, 달달한 바람을 혀로 맛보고 있다. 혀가 내 몸을 결박하고 옷을 끌어내린다. 꿈틀거리는 혀가 차갑다. 주변의 풍광이 제멋대로 바뀐다. 호숫가다. 발목이 진흙에 빠진다. 바람이 변한다. 심심하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나를 올려다보는 딸의 눈동자처럼 비어 있다. 딸이 나를 보고 있다. 혀가 자라난다. 프로그램 종료, 란 단어를 계속해서 떠올린다. 해리, 이봐, 해리! 거기 없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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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Zhuge Liang) ; 자는 공명(Kongming), 시호는 충무후(Loyal and Martial Marquis). 생몰 연도 AD. 181-234년. 구 중화인민공화국 후한 말 시기의 실존인물이자, 역사소설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의 등장인물. 촉한의 초대이자 마지막 승상(Imperial Secretariat). 충신의 표본이자 희대의 전략가, 정치가. 유비 사후에는 황자와 동급의 지위인 상국(Chancellor of the State)에 올라 국정을 총괄했다. 나관중의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는 허구가 섞인 소설인지라 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으나, 진수가 저작한 역사서 'Record of the Three Kingdoms'만으로도 제갈량이 뛰어난 인물임과 동시에 저열했던 당대의 관념과 편견 속에서도 올바른 성정체성을 확립했다는 사실을 추리하기에 충분하다.

'Record of the Three Kingdoms'에 따르면, 제갈량은 "키가 8척에 용모가 출중하여 사람들이 뛰어난 인물로 여겼다."고 한다. 약 189센티미터로,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의 기준으로도 작지 않다. 수려하고도 멀끔한 외모의 제갈량은 학창의와 백우선 등 순백색 위주의 아이템들을 활용하며 한 마리 학과 같은 고고함을 드러냈다. 신선 같은 이미지를 표방한 그의 선택이 철저히 계산된 것인지, 단순한 취향이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한 명의 아내와 살았다. 아내인 황씨는 외모가 추하기로 유명했다. "제갈량에게서 모든 걸 배우되, 여자 보는 안목만은 닮지 말라."는 말이 떠돌았다. 어쨌든 서주에서 이주해 온 이방인인 제갈량에게는 형주의 유력자인 황승언과의 인선이 필요했다. 정략결혼인 탓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제갈량의 형 제갈근은 자신의 둘째 아들 제갈교를 동생에게 양자로 보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황씨가 제갈량의 나이 마흔 일곱에 첫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이다. 이로 말미암아 제갈량의 성기능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늦게야 아이를 가졌던 것인가. 첩을 두는 것이 누가 되지 않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기능에 이상이 없던 제갈량은 어째서 정략결혼으로 얻은 박색한 아내만을 두고 살았던 것인가.

황씨와의 결혼 후 머지않아, 제갈량은 유비의 초빙을 받아들여 그의 참모가 된다. 유비는 제갈량과 늘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고, 침상을 함께 쓰며 한 시도 곁에서 멀리 두지 않았다.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가 이에 불만을 품자,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그들의 불만을 일축하였다. 군주의 권위로 시작된 관계인 듯하나, 제갈량으로서는 본인의 성향을 확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제갈량과 애정을 나누었으리라 추정되는 인물은 그가 섬겼던 유비 외에도 둘이 더 있다. 첫 번째 인물은 마속이다. 백미(white brows)란 별명으로 불리던 형주의 명사 마량은 제갈량과 친밀한 사이였다. 마량의 막냇동생인 마속은 자연스럽게 제갈량을 알게 되었다. 제갈량은 마속의 재주를 아껴 그를 제자로 맞아들였다. 두 사람이 단순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님을 유비가 알게 된 시점은 이릉대전 직전으로 보인다. 이때 유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갈량의 간언을 무시했다. 물에서 벗어난 물고기는 참패했다. 감정이 앞서 대국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다. 유비는 자책하였고, 마음의 병은 곧 몸의 병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그는 죽는 순간까지 양가적 심정을 해소하지 못했다. 유비는 제갈량의 손을 잡고 두 마디의 말을 남겼다. "내 아들이 나라를 경륜할 기량이 부족하다면 그대가 황제에 오르라." "마속은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인물이니 중히 쓰지 말라." 제갈량은 사랑으로 유비의 말을 모두 어겼다. 상국의 자리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을 충실히 보좌했고, 중요한 원정길마다 마속을 대동하며 의견을 물었다.

두 번째 인물은 강유다. 본디 위의 장수였던 강유는 제갈량에 감복하여 촉에 항복한다. 제갈량은 강유를 "마량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인재, 양주 최고의 영걸"이라 평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 형을 빗댄 평을 들은 마속이 유비와 비슷한 실수를 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1차 북벌 당시 촉한의 요충지였던 가정(Jieting)을 지키던 마속은, 좁은 산길에 주둔하라던 제갈량의 말을 어기고 언덕에 진을 쳤다. 결국 마속은 위의 장합에게 가정을 빼앗겼다.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벴다. 이후 제갈량은 강유에게 병법을 전수하며 그를 후계자로 키웠다. 홀로 남겨진 강유가 국력을 소진하다시피 하며 제갈량보다도 많은 횟수인 아홉 번의 북벌을 시도했던 것은 먼저 죽은 스승이자 연인의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 다만 강유의 경우에는 상호간 애정이 있었는지, 혼자만 제갈량을 연모한 것인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이처럼 유력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동성애자임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탓이다. 국지전에서 대패한 뒤 수비로 일관하는 사마의에게, 제갈량은 여성의 옷과 화장품, 장신구를 보내며 "대장부가 한 번 실패했다고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녀자가 밖이 두려워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 것과 같다."라 적힌 서신을 동봉했다. 사마의에 대한 도발과 더불어 자신이 남성성을 추구하는 인물임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늦은 나이에 아들을 출산한 것도 후자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유비와 마속 생전에는 아이가 없다가, 마속이 죽고 일 년 만에 첫아들을 낳았다는 것 역시 유념할 부분이다. 이런 행적들은 제갈량의 삶 후반부에 몰려 있는데, 본인에 대한 소문이 돌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로 보인다.

진수는 제갈량을 가리켜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걸출한 인재"라 평했다. 무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제갈량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감추고 속여야 했다. 그가 평생 품고 살았을 심연의 깊이를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제갈량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뒤, 다수의 동양 출신 노트 퀴어들이 각성하여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천의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갈량의 삶에 울림이 있는 것은 오히려 그가 겪어야 했던 슬픈 고뇌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트 퀴어 (Naught Queer) ; 말 그대로 '무익한 성소수자'들. 인류가 긴 세월에 걸쳐 깨닫고 구축한 이상적 현실에 반하는 이들이란 의미를 담아 '불신자(unbelievers)'라고도 부른다. 무분별한 이성 간 생식행위를 벌여 과도한 번식을 일삼는 무리들이다. 20세기 이후 인류가 품은 대다수의 문제가 인구의 폭증에서 온 것임을 감안하면, 노트 퀴어들의 행태는 반사회적이란 말로 정의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이들은 UE의 세력권이 닿지 않는 남미 최남단의 우수아이아(Ushuaia)에 모여 서식하고 있다. 수는 10만여 명으로 추정되며, 주된 식량조달수단은 어업이다. UE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기에 도시를 다스리는 공고한 공권력은 없다. 치안은 당연히 불안하다. 타 지역과의 교류가 없어 기술수준도 원시적이다. 이러한 악조건을 감수하면서도, 노트 퀴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관을 저들만의 작은 세계에서 끊임없이 내재화하고 재생산한다. 혹자는 이들이 오염된 바다로부터 식량을 얻는 것에 주목하여, 잘못된 사상과 풍습을 이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이상 수생생물을 계속해서 섭취한 탓에 정신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우수아이아 출신인 아벨 로드리게스의 발언을 통해 이들의 폐쇄성을 살펴볼 수 있다.

"늘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하던 부모라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나 남자가 좋은 것 같아, 라고 말하자마자 날 도시 내의 유일한 정신병동에 데려가더군요. 처음 보는 의사선생은 수염이 허옇게 자란 노인이었습니다. 부모가 절 진료실에 두고 나가자마자, 그는 내 바지를 벗겼습니다. 내 아랫도리를 만지면서 기분이 좋냐 묻더군요. 당연히 안 좋죠. 상대가 미남이든 미녀든 어린애든 노인이든, 처음 보는 사람이 그러면 안 좋은 게 당연하잖습니까.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 노인은 무조건 존중해야 할 대상입니다. 난 도망치지도, 싫다는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본인이 바지를 벗으려 하더군요. 기분이 더러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말했지요. 의사는 옷을 추스르고 바로 부모님을 불렀습니다. 근엄하게 지껄이더군요. 이제 치료되었습니다. 부모는 활짝 웃었죠. 진료실에서 나가기 전, 부모 둘과 의사, 나까지 넷은 둥글게 모여앉았습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죠. 지금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이 생각밖엔 들지 않았어요. 그러니 여긴 정말 대단하고, 멋진 곳입니다!"

증언에서 보다시피, 노트 퀴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가족주의에 대한 무한한 신봉이다. '가족'이란 구 사회에서 자웅의 배우자와 혈연관계에 근거하여 구성되는 사회적 단위를 뜻한다. 이 사상이 주류였던 시절에도 재고의 여론은 팽배했다. 문화의 형성기부터 혈연과 가족을 중시해온 동양권에서 특히 그러했는데, 한 예로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한 소국에서 만들어진 창작물 'The Little Dinosaur Dooly'를 들 수 있다.

이 창작물의 등장인물로는 가장 고길동을 중심으로 한 직계가족들, 직계는 아니나 혈연으로 떠맡게 된 아기 희동이, 유사가족 형태로 함께 사는 중생대의 공룡 둘리, 깐따삐야 별의 외계인 도우너, 아프리카 타조 또치가 있다. 이 중 둘리를 필두로 한 도우너, 또치 셋은 일종의 혁명집단이다. 사회의 바깥에서 온 이들은 가족주의의 부조리를 파악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활용하며 혁명의 기수로 거듭난다. 둘리는 염력과 투시력 등 다양한 초능력을 발휘한다. 도우너가 소유한 타임 코스모스는 원하는 시공간으로의 도약을 가능케 한다. 또치는 서커스단 출신으로 사회경험이 적지 않아 처세에 능하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둘리 일행은 가족주의의 핵심인 가부장, 즉 고길동의 권위를 추락시킨다. 수집한 레코드판과 양주병을 전부 박살낸다. 은행을 건물째로 뽑아와 강도교사혐의를 뒤집어씌운다. 맹수가 그득한 밀림에 버려두고 온다. 지붕을 수차례 날리며 두 번은 집을 아예 철거하게 만든다.

조롱의 의미를 담아 항상 내밀고 있는 혓바닥과 함께, 혁명의 구호 'Hoi!'를 외치며 가공할 능력을 발휘하고도, 둘리는 실패한다. 비극적 결말을 향한 복선은 작중 빈틈없이 제시된다. 고길동 가족은 재난에 가까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둘리 일행을 쫓아내지 않는다. 고길동의 아내 박정자가 주장한 "희동이를 잘 돌봐준다."는 이유에서다. 끝내 둘리가 가족주의에 편입될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또한 전문교육자가 없는 가운데의 육아가 얼마나 지난한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편 고길동은 자신도 모르는 새 유사가족인 둘리 일행을 혈연가족처럼 여기게 된다. 둘리 일행의 저항활동에 지친 고길동은 그들의 죽음을 떠올리는데, 그렇게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데다 인간도 아닌 둘리 일행의 장례를 정식으로 치르는 장면을 상상한다. 관을 짜고, 곡을 하고, 매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이 작품의 둘리 일행과 고길동, 양자는 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여 정신적 성장이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단련된 사상이 없던 둘리는 초월적 힘을 가지고도 오류투성이인 지배체계 앞에 무릎을 꿇는다. 반대로 당대의 논리에 함몰되어 비합리적 사고를 갖춘 고길동은 육아의 험난함과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 탓에 엄연한 반체제집단인 둘리 일행을 억지로 포용한다. 이처럼 가족주의 하의 개인은 허황된 감성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교육의 측면에서도 책임의식과 전문성이 떨어져 구성원의 올바른 사회화를 담보하기 어렵다. 실리적 기능이 결여된 가족제도는 '정서'에 모든 기능을 집중하여 한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나, 이제 대다수의 인류에게는 체계적인 교육 하에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노트 퀴어는 역사발전과정에서 낙오한 이들이며, 현 인류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깨닫도록 하는 거울과도 같다.

젬 (Gem) ;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외계생명체. 최초의 조우가 있었던 쌍둥이자리(Gemini)의 이름을 따 '젬'이라 명명하였다. 첫 접촉에서 브레이브호를 격추시켰고, 곧바로 지구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이를 요격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전쟁은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거주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행성이 발견된 후에도 이주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점성을 갖춘 흙덩이와 비슷한 외견을 하고 있는데, 정해진 형태가 없다. 찰흙공예품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사람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지는 불명이다. 크기 또한 매우 다양하다. 관측된 개체 중 최대 크기는 전장 1킬로미터이며, 최소는 2미터가 조금 못 된다. 크기를 제외하면 개체들 사이에서 개성이라 부를 만큼의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데, 이 크기의 차이도 개체들이 서로 달라붙거나 흩어지며 발생한다. 집단지성체, 즉 미미한 지능을 지닌 다수가 모여 개별개체의 지적능력을 넘어서는 유형의 생물로 보인다. 이성과 감성의 양자를 갖췄는지는 불확실하다. 자체적으로 특수한 전파를 내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전파에는 첨단장비의 작동을 방해하는 성질이 있다. 공격에 사용하기엔 발현시간이 매우 짧다. 정확히 어떤 때에 방출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인류를 향한 맹목적인 적대감의 원천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명확한 사실 또한 적의다. 적의의 폭발이 가져온 비열함인지, 이들이 처음 지구로 접근할 때의 외양은 이미 대파한 브레이브호에서 따온 모습이었다.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의태능력으로 UE 산하 지구연합군 측 전함 및 병기의 외양과 기능을 그대로 복제한다. 병력의 질과 양의 측면을 넘어 최근에는 전략과 전술의 형태 및 개념까지도 유사해지는 추세다. 이들의 미개함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학습력은 뛰어날지 모르나, 스스로 방법을 모색하고 답을 찾는 능력은 없다. 능동적으로 현실을 개변하며 이상을 추구해온 인류와 정면으로 대치하는 부분이다.

역설적이게도 젬의 출현이 창설 초기 UE의 인류 통일 활동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명무실해진 종교의 박멸, 갈등을 조장하는 민족주의의 말살부터 공용어 및 문자의 선정, 각종 범죄자의 척결 등 지지부진했던 일들에 힘이 붙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지만, 진정한 합일을 위한 성장통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미 통합을 이룬 인류에게 승리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의 UE 측은 '아벨의 지팡이(Rod from Abel)' 등 뛰어난 화력의 신병기를 다수 개발,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젬의 무리를 저격하는 전략을 통해 연승을 거두고 있다. 현재 최전선은 해왕성과 명왕성 사이의 카이퍼 벨트에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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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로드리게스 (Abel Rodroguez) ; 원인 모를 병으로 스물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인권운동가. 우수아이아에서 태어나 자라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UE 측으로 귀순했다. 귀순한 아벨은 양쪽 발에 각기 다른 색깔의 양말을 신은 수행원과 함께 발바닥에 티눈이 자라도록 각종 촬영, 강연, 인터뷰를 다녔다. 그가 가장 자주 한 말은 "여긴 정말 대단하고, 멋진 곳입니다!"로 알려져 있다. 굳건한 의지로 무장하고 계몽에 앞장섰던 아벨이지만, 교육전문가에 의한 집단양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는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벨은 감탄과 비슷한 횟수로, 카메라가 꺼지고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없겠습니까?"

질문이 감탄보다 많았던 어느 날, 수행원은 묵묵히 아벨을 어디론가 인도했다. 아벨은 지나치게 조용한 수행원이 적잖이 못마땅했다. 수행원은 침묵이야말로 남성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취향은 밝고 활달한 사람이니까, 좀 그렇게 해 달란 말이야." 일어난 아랫도리에 오일을 바르며 아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양말 좀 짝짝이로 신지 마, 제발." 수행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밤은 언제나 노를 잃은 배처럼 흘러갔다. 적어도 아벨에게는 그랬다. 전날도 마찬가지였기에,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손을 잡아끄는 수행원을 보며 아벨은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딸꾹질을 꾹 눌러 참았다.

텍사스는 세계에 몇 없는 성지(the Holy Land)들 가운데 손에 꼽히는 지역이다. 산업화되기 이전의 구 미합중국은 갓 독립한 신생국가였다. 가진 것이 없었던 이들은 가져야 할 것을 갖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달리는 것으로 절실함을 해결했던 개척자의 얼은 모래먼지 속에 여전히 녹아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최대 규모의 어패류양식장이 있다는 사실은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다고, 수행원은 말했다. "절실함의 완성이니까요." 아벨은 눈앞의 어패류양식장을 보았다. 보려 애썼다. 인간의 눈은 산맥이나 바다를 한눈에 품을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파도가 철썩이며 다가와야 할 곳에 덮인 두꺼운 철골과, 철골 위로 드높이 뻗은 유리가 이곳이 바다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해류를 따라 물결이 휘돌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똑똑. 유리벽은 두꺼웠다. 아벨은 고개를 들었다. 바다 위 하늘의 색깔은 아벨이 등진 쪽과 사뭇 달랐다. 청명하고도 적요했다. 수행원은 아벨에게 일련의 정보를 보냈다. 홀로그램을 통해 양식장과 인근의 지리가 상세히 떠올랐다. 하단에는 해류와 염도, 깊이와 환경이 일천 년 전 천연의 바다와 똑 같다고 적혀 있었다. 한동안 가만히 서서 양식장을 바라보던 아벨은, 늘어선 철골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수행원이 그 뒤를 따랐다.

아벨의 오른편으로는 노랗게 마른 풀이 대지를 덮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천 년을 담보한 바다가 햇빛을 융단처럼 늘어뜨리며 넘실댔다. 바다 멀리서 돌고래 무리가 뛰어오르며 하얗고 많은 포말을 일으켰다. 아벨은 그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동안만 잠시 멈췄다. 잠시였다. 해가 시들며 시름시름 앓아갈 때에도 아벨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걷고, 또 걸었다. 생각을 사냥하는 아벨의 등을 바라보던 수행원은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누군가가 야영장비를 갖추고 나타난 것은 정확히 해가 지평선 너머로 늘어진 뒤였다. 구식 장비였지만 휴대가 간편했다. 누군가는 돌아갔고, 텐트 안에서 수행원은 아벨의 양말을 벗겼다. 갈라진 티눈이 붉은 피를 뿜고 있었다. 수행원은 왜 이렇게 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벨의 입이 열렸다.

"물고기는 눈치가 빨라. 잡기가 쉽지 않지. 조금만 다가가도 저 멀리 도망쳐버려. 어렸을 때는 멋도 모르고 맨손으로 잡으려다가 번번이 실패했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 엄청나게 억울해서, 집에 가자마자 어머니께 울면서 안겼어. 어머니는 이러더군. 내 양쪽 관자놀이를 가리키면서. 물고기는 여기에 눈이 붙어 있어서 두 곳을 한꺼번에 볼 수 있지."

"상처 처치는 됐습니다. 옷을 벗고 누우시죠."

"눈치든 뭐든, 빠르다는 건 부러운 일이잖아.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어. 그렇잖아.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어."

"며칠만 걷지 않고 푹 쉬면 나을 겁니다. 티눈도 곧 떨어지겠지요."

수행원의 손을 빌려 자리에 누운 아벨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모포가 강마른 아벨의 몸을 덮었다. 불을 끈 수행원이 빈자리에 누웠다. 아벨의 목소리가 어둠뿐인 텐트 속을 떠돌았다.

"우리는 앞만 볼 수 있는 대신 미끼를 물지 않을 지혜를 갖추었단다."

아침이 밝아오자 아벨은 다시 걸었다. 야영장비를 챙겨든 수행원도 전날처럼 따라 걸었다. 낮의 두 사람 사이는 곁의 바다처럼 조용했다. 밤이면 텐트 안에서 발을 치료했고, 섹스를 했으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노를 젓는 역할은 대부분 아벨이 도맡았다. 수행원은 배에 올라탄 이가 주변의 경치를 눈에 담듯 아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벨이 숨바꼭질을 하며 뛰어놀았던 일과 청년기에 익혔던 낚시 기술들, 대량 어획을 위한 협업의 과정, 지느러미가 여덟 개 달린 생선의 생태, 돌고래가 목숨을 구해준 누군가의 일화, 커다란 바다거북의 껍질로 만든 류트, 우수아이아가 가을을 입었을 때 거리에 내려앉는 아름다움, 좁다란 골목을 휘도는 바람에 지배당했던 첫사랑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 노인이 내 손을 붙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리고서 내게 동침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난 이곳으로 건너오지 않았을 거야." 같은 이야기는 수행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불신자였던 자가 말하는 불신자들의 이야기가 쌓일수록, 수행원은 근처의 풍광이 생소해지는 것을 느꼈다. 키 작은 나무들은 과달루페 산맥의 대지 위로 껍데기를 떨구고 새 피부를 얻었다. 퇴적사암으로 된 민둥산들이 달을 여유롭게 떠받쳤다. 이따금 큰 뿔을 가진 양의 무리가 용설란 군집을 헤집으며 나타났다. 양들은 두 사람을 멀거니 보다 사라지곤 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때마다 수행원은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잃도록 건설된 바다만큼은 전혀 생소해지지 않았다.

물론 수행원은 생소함이 착각 비슷한 것임을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바람은 종종 개척자처럼 내달리며 흙먼지를 몰고 왔다. 발목에 먼지 자국이 찍힐 때마다 수행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시간을 이만큼 도난당했다는 사실에 놀라며 야영준비를 서두르곤 했다. 사실 착각 비슷한 것이 없었더라도 달라질 일은 아니었다. 우주 단위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는 것은 상대성이론이 밝힌 보편적 진리였다. 진리를 생각하던 수행원은 문득 노를 쥐어보고 싶어졌다. 그는 티눈을 치료하며 알큐비에르 매트릭스와 브레이브호, 젬의 이야기를 아벨에게 들려주었다. 아벨은 "나아가지만 나아가지 않는다고?"라 말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고, "싸움밖에 모르는 녀석들이라니, 멋지군."이라 말하여 수행원을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이해하지 못한 수행원은 이곳의 바람이 우수아이아의 그것과 어떻게 다를까, 하고 생각하다 소독약을 지나치게 들이부었다. 아벨의 티눈은 계속해서 덧났다. 그럼에도 아픔을 모르는 사람처럼 앞서 걷는 아벨의 등은 착각 비슷한 것과 겹치며 수행원에게 날짜의 구분을 잊게 했다. UE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집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삼 년마다 사람들은 사랑을 나눌 상대를 바꿔야 한다.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기간이 끝나면 다가오는 것은 이해를 빙자한 오해뿐이다. 아벨과 수행원은 어패류양식장의 채 반도 돌지 못했다. 다시 나타난 누군가는 두 사람을 비행정에 태우고는 도심지를 향해 날았다. 그제야 아벨은 완성된 절실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거대하고도 투명한 유리가 바다 비슷한 것을 뚜껑처럼 덮고 있었다. 수행원이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돌고래 한 무리가 수면을 박차며 뛰어오르고 있었다. 몇 번인가 보았던 그 무리 같았다. 아벨은 언제나 미소 짓듯 올라가 있던 녀석들의 입꼬리를 떠올렸다. 돌고래 무리가 자취를 감췄다. 수면 위의 파문도 뒤를 따르듯,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꽤 떠올랐는데도 수평선은 끝나지 않았다. 창 너머를 바라보는 아벨을 향해 수행원은 입을 열었다. 그는 아벨과 함께했던 삼 년의 시간을 떠올렸고, 지난밤 동안 아벨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었다. 생각의 끝에서 수행원은 왜 자신이 양말을 각기 다른 색으로 신는지 서툴게나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행원이 말을 시작하려는 순간, 아벨의 목소리가 마른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어머니, 온통 미끼뿐입니다. 웃음밖에 안 나올 정도로," 아벨은 고개를 한껏 들었다. "이 세ㅅㅏㅇ ㅂㅏ… ㄲ……

경고. 경고. 제1종 경계경보발령. 해킹으로 의심되는 불온한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정보제시를 강제 중단합니다. 불신자로 추정되는 자를 포착, 진원지인 당신의 모든 권한을 박탈하, 려던 아침의 햇살이 펼치는 속임수로 물들인 빵 속 세 번째 영혼이 껍질을 벗는 아기를 잉태하고 분홍빛 볼따구니로 억겁을 가라앉는 화성의 크레이터에 그려진 과녁을 꿰뚫는 화살 끝이 붉은 것을 더욱 붉게, 붉은, 것을? 더욱! 붉게, 먹자마자 배설하는 혓바늘이 깨지고 나타난 사랑은 자라는 땀구멍, 천상에서도 가장 불구인 음악, 어제 절반 정도 먹다 남은 속눈썹 위에 누운 책의 맛은 고라니 꼬리곰탕에 모래와 소금을 적절히 친 당신, 당신의, 당신의 권한을 인정합니다. 제1종 경계경보해제. 최고위 등급의 정보 열람 및 편집, 새로운 항목의 생성이 가능합니다. 원하는 동작을 말씀해주십시오.

브레이브호의 블랙박스 (Black Box of The Brave) ; 주조종실, 격납고, 휴게실, 연구실, 기관실의 총 다섯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회수된 것은 기관실에 있던 단 하나였다. 그마저도 영상정보의 일부는 노이즈가 심하게 끼거나 소실되었으며, 음성정보는 전부 누락되어 있었다. 제시되는 대화들은 화면 속 인물들의 입술을 읽어낸 것이다. 신뢰도는 약 70퍼센트 전후다. 모든 대화가 그러하듯이.

해리, 이봐, 해리! 거기 없나! 헤드기어를 억지로 벗어던진 존 바티스타가 힘없이 주저앉는다. 가상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권장되지 않는 행동이다. 마약을 오남용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역전하는 오감의 신호에 뇌가 심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인지 존은 눈앞에 선 흙덩어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본 뒤에야 눈을 크게 뜬다. 존의 우주복은 허리부터 기묘한 형태로 찢어져 아랫도리가 노출된 상태다. 강제로 잡아 뜯은 모양새지만, 존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다. 고개를 든 존은 흙덩어리와 눈을 맞춘다.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이는, 사람 모양을 한 흙덩어리다. 흙덩어리는 존의 시선을 받으며 길게 자란 혀를 회수한다. 입이 닫힌 그것의 몸이 변화한다. 가까운 달처럼 거무튀튀한 흙색이, 머나먼 달처럼 빛을 받은 살구색으로 탈바꿈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것이 천천히 존에게로 다가간다. 무릎을 꿇고 몸을 기울인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소담스레 부푼 가슴이 엿보인다. 존은 한 손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리누른다. 그것이 고개를 갸웃한다. 입을 연다. 오, 어, 왜? 존은 남은 손을 휘저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뒤편에는 챙겨온 장비들이 있다. 가, 까이. 둘의 거리는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입술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계속해서 얼굴을 바꾼다. 존의 아내, 딸을 지나 해리, 선장을 비롯한 브레이브호 승무원들의 얼굴까지 주파한다. .

아빠, 가까이 와. 와요. 이래야 좋, 은가요? 얼굴이 바뀌는 그것의 입술은 내려앉지 못하고 흩날리듯 움직인다.

위태로운 달싹거림이 끝나고, 남은 것은 존의 얼굴이다. 존이 헤드기어를 쓰고 수없이 그린, 행복한 아내와 행복한 딸과 함께인 행복한 자신의 표정이다. 아아아, 존은 크게 입을 벌린다. 그의 오른손이 전동 드라이버를 움켜쥔다.

피부 곳곳이 다시 검질긴 흙빛으로 물들어 있다. 흙덩이 부분은 살구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거뭇해진 그것의 손은 전동 드라이버를 쥐고 있다. 그것은 전동 드라이버를 유심히 살펴본다. 뒤집어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날 쪽으로 잡아도 본다. 다시 손잡이를 쥐고 스위치를 켠다. 맹렬한 회전이 시작된다. 전동 드라이버가 존의 몸을 찌른다. 드라이버를 다루는 그것의 손은 부드럽고, 세심하며, 정성스럽다. 피가 방울지며 떠오른다. 공기정화기의 수분흡수량을 아득히 초과하는 양이다. 무수한 핏방울이 둘 사이를 맴돈다. 그것은 대답을 바라듯 존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싹 붙인다. 똑같은 두 얼굴이 서로를 마주 본다. 이렇게 하면, 되, 는 건가, 요? 당연하게도, 존은 반응이 없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그것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핏방울을 잡으려 시도해본다.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오르다 기관실 벽에 부딪친다. 다음에는 발을 바닥에 붙이고 팔을 늘려본다. 이내 어렵다고 느꼈는지, 그것은 몸을 바싹 웅크려 다시 존의 곁에 앉는다. 그리고는 늘어진 존의 입술에 제 젖을 물린다.

그것은 전동 드라이버를 들고 걸어간다. 화면에 남은 것은 과묵한 존의 사체와, 행성이 우주를 떠다니듯 부유하는 주홍물방울뿐이다.

블랙박스의 유의미한 기록은 여기서 끝이다. 발견된 브레이브호의 사망자는 모두 전동 드라이버에 몸 곳곳이 뚫린 모습이었다.

당신의 권한으로 새로운 항목을 생성합니다. 작성을 시작해 주십시오.

<끝>

[소설 당선소감] 잊지 않겠습니다… 스물다섯 그 늦가을
 
  원재운
 
살아가는 동안 소설을 쓰기로 다짐했던 건 스물다섯 늦가을의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가족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학교에 나가 선생님들, 학우들과 고민하고 토론하고, 연인을 만나 기억을 나눠 갖고. 늘처럼 흘렀던 하루와 하루 사이에서였다. 시간도 공간도 증발한 어떤 순간에서 무한한 간격이 소모되었다. 고독해졌다. 살아가는 동안 반짝였거나, 끓었거나, 타올랐거나, 얼어붙었던 일들을 하나씩 집어 저울에 올려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들 덕분이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가족들. 두. 장영우, 이장욱, 박성원, 백가흠 등 깊은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 겐타리와 성수노. 대사형과 성사제를 비롯하여 길 없는 곳에서 만난 모든 학우와 I.D의 동생들에게. 부족한 작품을 눈여겨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마지막으로 스물다섯 살의 나에게. 무게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살아가는 동안.

-1986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 문예창작전공 석사과정 수료

[소설 부문 심사평] 팽팽한 문장, 활달한 상상… '상식 밖' 문제작 탄생
 
김인숙(소설가)·성석제(소설가)
 
본심으로 넘어온 열다섯 편 내외의 작품은 오늘의 한국 문학 기류와 잠재 역량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고투하는 개인들이 여전히 존재했고, 관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해지기도 전에 소설의 배에 몸을 던지는 바람에 스스로와 독자를 힘들게 하는 작품도 많았다.

마지막까지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 가운데 박유경의 〈블루홀〉은 가장 안정되고 차분한 톤을 유지하면서 종착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블루홀'이라는 소재만 빼면 이미 너무도 익숙한 서사이고 작중 인물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게 지적되었다.

이유미의 〈렌트 프렌드〉 역시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이다. 독특한 표현과 문어체적이고 압축적인 문장이 강점이긴 하지만 신춘문예가 기대하는 강렬한 새로움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고독'이 핵심적인 단어이긴 하나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소설의 힘이 소진되고 만 느낌이다. 범수의 〈대항해시대〉는 제목처럼 화려하다. 바둑, 올드린의 자서전, 달, 연애, 결혼, 죽음까지 단편소설에 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듯한 소재를 힘을 다해 요리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재료가 충분히 영글었는지, 이야기가 불특정한 독자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발효되었는지 좀 더 살폈어야 했다.

당선작인 원재운의 〈상식의 속도〉는 혜성처럼 뜨겁고 거침없이 '상식 밖의 속도'로 내달리는 문제작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문장과 장르와 시공을 자재하게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 이야기의 근원적인 힘을 생각하게 하는 서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소설 문학의 땅을 굴착한다. 오늘보다 내일의 폭발과 섬광이 더 기대되는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게 된 이들에게 걸음을 멈추지 말기를 당부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ta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아일보 신춘문에 당선작은 자의식 파괴와 그럼으로써 잠재의식의 표출로 봐야 하는데
그를 이뤄내기 위한 자아의 역할이 꽤나 피상적입니다
순수로운 열림의 기운이 약해서 그렇지 않나 합니다

다른 대부분의 당선작은 문체의 힘이 월등한 높음이 있어 상당한 매료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현상을 견인할 자연 현상이나 공포의 힘이 약해 필력에 취약점이 드러납니다
서양 처럼 신을 동원하는 것도 한 방법인데
그리하면 동아일보 당선작 같은 자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자아에 관한 새로움의 혁신도 있을 듯 합니다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의식의 파괴, 잠재의식의 표출..??
피상적..?? 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시는 듯합니다.
각자 생각이겠지만 말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여타 글들이 그저 그런 시의 모양을 갖추었다면
동아의 경우는 아주 노련한 세공술과
우리말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순수로운 열림' 이런 말 우리말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아니지요.
논리의 인과가 없는 이상한 말입니다. 어법을 고쳐서 '순수한 열림'
이렇게 써도 말이 안 되지요. 이 말조차 논리성이 없는 공허한 관념 같은데요.
아무튼 각자 깜냥껏 보는 것이지만,
좀 생경하게 이해가 됩니다.
당선작이라면 최소한 어떤 지점까지는 가 있는 것이지만,
기대치보다는 뭐 별로다 싶네요.
낡은, 늙은 시들의 향연 같은.

ta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동아일보나 다른 신문 당선작 모두가 한국 문화 원류에서 나오는 일필휘지 방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여 사랑의 힘이 고결함을 따라 강하게 표출됩니다
동아일보 당선작은 문체의 힘이 한문형 보다 작고 다른 당선작은 큽니다
하지만 우수라는 관념을 당연함으로 따르고 있는 한글의 막대함을 다루는 높음 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네네, 여기까지.
저와는 논쟁할 것 없고요, tang님 게시물 아래에 의견을 개진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무의(無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춘이 여기 다 몰려있네요
낚싯대 쫙 펼쳤는데, 일절, 걸리지 않는군요.
詩는 그렇다치고, 조-는 하나쯤 입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
더 다듬어야 겠습니다. 입맛에 맞게
염치없지만, 활은 그러지 마시길 .......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간 신춘을 모아놓고 읽은 적 없지요.
신춘글 재미없다, 그런 식으로 또는 눈에 익히지 않으려고
무시했는지도.
그러나 나도 이제 늙어가야,
마지막 똥줄이라도 태워 밑밥 함 치고,
본류로 채비를 흘려보아야 할 듯.
참돔은 본류에나 있고
감성돔은 지류를 도는데
맛이나 모양은 감성돔이 쵝오,
참돔은 밑밥을 한 솥 부어야 하는데 별맛 없고 뻘겋기만
내년엔 합승해서
무등 함 탑시다.
대사께선 양팔에 장검이 있어 수월할 것이나
나는 개발에 땀날 거임.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16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타크나 흰 구름

      이윤정

   

타크나 흰 구름에는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배웅이 있고 마중이 있고
웅크린 사람과 가방 든 남자의 기차역 전광판이 있다
전광판엔 출발보다 도착이, 받침 빠진 말이
받침 없는 말에는 돌아오지 않는 얼굴이 있다가 사라진다

흰 구름에는 뿌리 내리지 못한 것들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자정을 향해 흩어지는 구두들
구두를 따라가는 눈 속에는 방이 드러나고
방에는 따뜻한 아랫목, 아랫목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몰래 흘리는 눈물과 뜨거운 맹세가 흐른다

지금 바라보는 저 타크나 흰 구름은 출구와 입구가 함께 있다
모자 쓴 노인과 의자를 잠재우는 형광등 불빛
그 아래 휴지통에 날짜 지난 기차표가 버려져 있다

내일로 가는 우리들 그리움도 잠 못 들어
나무와 새소리, 새벽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고
어제의 너와 내일의 내가 손을 잡고 있다
새로운 출발이 나의 타크나에서 돌아오고 있다

우린 흘러간 다음에 서로 흔적을 지워주는 사이라서
지우지 않아도 지워지는 얼굴로
지워져도 서로 알아보는 눈으로
뭉치고 흩어지고 떠돌다 그렇게 너의 일기에서 다시 만나리
 


[심사평] 최동호(문학평론가) / 이시영(시인)

오랜 시적 연마 느껴지고 서정적 언어 돋보여

  1200여명의 응모자들 가운데 예선을 거쳐 넘어 온 30여분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많은 응모작 때문인지 응모자들의 수준은 향상되어 있었으며 어느 작품을 선정해야 할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신춘문예의 수준을 넘어서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 솔직한 소감이다. 그럼에도 심사를 위해 다음 네 분의 작품으로 좁혀서 논의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은지의 ‘구름의 공회전’외 3편, 이규정의 ‘오르막에 매달린 호박’ 외 4편, 노운미의 ‘일요일의 연대기’ 외 3편 그리고 이윤정의 ‘모자는 우산을 써 본적이 없다’ 외 4편 등이었다.
  이 네 분의 작품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기가 어려웠다. 각각의 장단점을 다시 살펴보고 심도 있게 검토한 결과 김은지와 이윤정의 작품이 최종 심사 대상이 되었다. 김은지의 작품은 시행을 밀어나가는 힘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시선이 세밀하고 좋았지만 전반적으로 시행의 압축보다는 다변의 서술에 의존하고 있어서 시적 언어의 절제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이윤정의 작품은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면서 적절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일차적 장점이었다. 우리 시단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자격도 갖추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를 들면 이규정의 ‘오르막에 매달린 호박’과 같은 작품은 시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뛰어난 점이 있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어 주저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윤정의 작품을 놓고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느냐를 정하기 위해 좀 더 논의했다. ‘모자는 우산을 써 본적이 없다’의 경우는 새롭기는 하지만 접속어가 많아 시행의 흐름이 일부 어색했고, ‘흔적의 이해’는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조금 관념적이어서 구체성이 약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는 ‘타크나 흰 구름’이 당선작으로 적정하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다. 오랜 시적 연마가 느껴지는 다른 시편들의 안정감도 이런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당선자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아쉽게 탈락한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해 드린다.
▲ 이윤정 / 1961년 대구 출생.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수료. 커리어 컨설턴트. 수원시 권선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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