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4】먼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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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구멍 뚫린 날 물레 잣고 깁고 이으면 어느 날은
눈밭을 가겠네 추운 새가 날아오르고
귀막이 깃털이 바람에 묻어나겠네
네가 밟고 가는 길은 얼고 기슭은 좁혀와
적막이 나무처럼 서겠네 눈밭에 발자국만 따라오겠네
어느 날은 늙고 구부정한 나무로 서서
얼음장을 뚫고 쏟아지는 개울을 보겠네
우두커니 얼음장 밑에 거꾸로 서 있는 네가
환하고 눈부셔 오래도록 얼 발로 서 있겠네
바람은 어제를 발밑에 구부리고 추억이 떨어내진 미루나무
눈꽃 피어 시간이 빠져나온 올무를 보고 있을지라도
찬물에 고둥처럼 앉아 흐르는 물을 보겠네
흐르다 굽을 다친 말들을 보겠네
언젠가 우리는 눈보라 몰아치는 기슭으로 가
사각사각 눈을 먹어치우는 햇살 배흘림기둥을 보다가
어딘가로 떠나는 이에게 어딘가로 사라진 것들에게
언 손 감아쥐고 따뜻한 입김을 얹어 주겠네
눈발처럼 흩날리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물컥 핀 눈사태
이생 한 올 실에 매달려 살아온 날 고맙다 하겠네
공중을 탄금彈琴하며 나리는 눈밭에서
목화처럼 가볍게 떠오르겠네
Than
N.B.
끝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면 인두로 지진 활연 나옴.
클릭하면 화면이 확 덤비는 수가 있음.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그런 날에는
진은영
산책을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가다가 만난 친구에게 다정하고 소소한 안부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함께 걷다가 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어
계속 가듯이 그렇게 날씨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왜 마음은 어린 날 좋아했던 음료수병 같지 않을까
아무리 아껴 마셔도 투명한 바닥을 드러내던 그거
마지막 한 방울의 아쉬운 미학을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아무리 쏟아도 계속 흐르며 죽은 종이를, 칫솔들, 깨진 구들을
적시는 게, 갈비뼈 사이로 깨진 간장독처럼 줄줄 흐르는
그런 게 내 속에 있는 것일까
이사 트럭처럼
이집 저집 옮겨다니며 소중한 세간살이며 거기에 담겨온 기억을 내려놓고
잘 사세요 애인들이여
출발하는 매일의 노동을 나는 모르는 것일까
그런 날엔
네 잠의 허파 속을 가시복어들이 빠르게 헤엄치고 있다고
붉은 얼음 위에 너의 손목들이 길게 놓여 있다고
네가 있는 곳에서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날엔 실례를 무릅쓰고
열다섯살까지 엄마가 나에게 기워 입힌 아버지의 낡은 팬티나
그 떳떳한 바느질 솜씨에 대한 정신분석학이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노래한 시인데 대한 지울 수 없는 연대감, 그가 겸비한 용기와 솔직함에 골몰하느라
나는 솔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것라고,
용기가 없는 게 아니라 사실의 씨앗을 부드럽게 덮어줄 유머가 없는 거라고,
나에겐 도망칠 수 없는 지리멸렬의 미학이 있을 뿐이라고
산책을 나갈 수 없는 것일까
불이 바뀌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행인들처럼
금세 건너지 못하고 길게
배를 깔고 누워, 흐릿해져가는 횡단보도처럼
경쾌한 차들이 휭휭 지나쳐가는 굉음의 무게를
모든 세포의 사슬들로 잡아끌면서, 울음도 아니고 웃음도 아니고 그저 무게일 뿐인,
질병도 못되고 회복도 못되고 모종의 이동일 뿐인,
어느 무념의 입술이 책 위의 먼지를 훅 불어버리듯
흩어지고 싶은, 그런 날
`
동피랑님의 댓글

보도라운 털솜이 소복소복 쌓이고 디디면 폭폭한 것이 온도의 한계점을 넘어 차라리 시려오는 발구락도 없어지는
앗, 뜨거 겨울은 좋아라이겠습니다. 뽀도독 자국을 남기며 이 길을 걸으면 밥상 튀긴 것들은 머리에도 어깨에도 얼굴에도 묻기도 하겠고,
얼음 구들장이라도 깨면 눈 맑은 것이 지느러미를 조심스레 젓거나, 돌멩이 마을을 와락 내지 덥석 껴안은 고둥들이 깨구락지
잠 깨지 않도록 찬물을 방어하고 있겠습니다. 먼 훗날 따뜻한 입김을 후~하고 불어줄 주역들이군요.
감탄을 금치 못할 절창이 제 눈을 찔러 시력을 잃게 하니 사태는 곧 눈사태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으로 눈사람 하나 맹글고 갑니다.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근친하는 밤 되소서~^^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어제는 등산하기 전 차에서 잠시 쉬자, 했는데 실컷 자고
늦게 빈둥거리다 왔는데 그 탓인지 잠이 안 오네요. 이 글은 옛날 옛적에 끄적거린,
그땐 다분이 감상적이었다, 속으론 낄낄거리면서, 보게 되네요.
그닥 좋아진 게 없지만, 내가 세상에 뿌린 허접들이 참 부끄러워지는 밤입니다.
이러고 쏟아붓고, 시마이~할지.
오늘도 또 작정하고 산에나 가야겠습니다.
흰눈처럼 고운 날 지으세요.
피랑, 피랑, 동피랑님.
쇄사님의 댓글

ㅎㅎㅎㅎㅎ 지가 활시를 보고 요로코롬 통쾌하게 웃기는 첨임다.
화면이 우찌 덤비나 싶어 눌렀는데
스스히 드러나는 뭔가가 뭔가 싶어 뚫어지라 쳐다봤는디 ........... 쨘!
포복으로 가서 웃음을 절도해 왔습니다.
이제 다시 올라가서 시를 읽겠습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그럼 처음 성공한 겨?
꽃다발도 바치고 뽀뽀도 해주고 해야는데 한양 갈 여비가 없으니
인두로 지진 활연 아바타나 보내야 할 듯.
꾼님은 웬 첫사랑이라고 다시 또 한번 찐하게 붙자는데,
안 맞아 죽으면 다행. 쩝.
조랑말 한 필 구하면, 어찌 며칠 걸려서라도 닿고 싶으나.
겨우 화상을 회복 중인데, 달군 인두 들고 달겨들까봐 무스비.
예전엔 영상도 만들고 참 열씨미였어요. ㅋ
잘 놀았다, 해야 할지.
대사를 웃겼으니, 나중 소주 한 말 받아주갔제.
올겨울은 그대가,
면류관을 쓰시고, 멋쩍게
'주는데 안 받기도 그렇고, 참'
선한 얼굴이 떠오르오. 엉아가
빛나리에 별딱지라도 붙여줘야 할 텐데.
조랑말, 조랑말,
아님 낙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