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茫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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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茫茫)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아이의 조막손 위에
내 작은 손가락 하나를 살며시 올려 놓았다
펴졌던 손이 천천히 돌아가며 내 몸을 조금 덜어갔다
아득하고 망망(茫茫) 하던 것들이
마치 다 비운 자리를 다시 채워 가는 것처럼
조막만한 손 안으로 스르르 모여들었다
내 몸을 덜어가는 손길이 곱고 보드랍다
저렇게 오물거리며 내 몸을 덜어가서는
어느새 내 눈을 맞추며 겸상(兼床)을 하고
산새처럼 재잘거리며
제 그림자를 내 그림자에 맞추며
들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 내 곁에서 같이 걷다
내 마른 숨소리까지 다 가져갈 것이다
아이는 이 큰 인연들을 다 새겼다는 듯
오물오물 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고개를 따라 묽은 젖내가 한 움큼 따라왔다
다시 망망(茫茫)하였다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내 생의 전부를
아이는 꼬막 같은 그 작은 손으로
오물거리며 종일 되새기고 있다.
댓글목록
하늘바람구름별님의 댓글

저도 애가 둘인데 녀석들 지난 시간떠올려보게
되네요. 고물거리고 바둥거리던 신비한
시간 얼마 안지난듯 한데 벌써 자기 생각에
자기 모습 어렴풋하게 나마 보이니
한편 대견하면서도 또 빠르단 생각입니다.
그렇게 같이 가겠지요.
나도 망망대해고 걔네들도 건너야할 강과 바다 만만치
않겠지요. 그래도 보석 같은 아이들 덕에 삽니다.
뿌연 안갯길 작은 손 같이 붙잡고 가고 있습니다.
좋은 시 잘 보고갑니다.
살아있는백석님의 댓글

네.. 구름별님...
내 모습 닮아가는 애들 보면서 저도 그때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서
무서운 영속성을 느낍니다.
저 오물 거리던 놈이 벌써 중학교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