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마을 겨울을 만나다. > 창작시

- 이화마을 겨울을 만나다.

                                                 더페아체

이제 겨울입니다.
구름이 먼저 둥지를 튼
이화마을에도 어김없이
겨울이 철새마냥 찾아듭니다.
겹겹이 입어도 안으로
몰래 숨어든 한기는
밖으로 나갈 의향이 없나 봅니다.
이제 막 시작을 알린 추위는
창문에 약한 눈발을 놓고 갑니다.
옷장에서 오랫동안 묵혔던
옷가지들을 꺼내 먼지도 털어주고
구김이 간 곳을 힘차게 달래봅니다.
올해는 더 춥다는데
작년에 미처 치우지 못해
얼려 죽인 선인장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땅위에 미처 뿌리내리지 못한
내 두 다리도 같이 보입니다.
겨울이 되니까 햇살이 달라집니다.
갈라진 세간살이 틈까지 햇살을
촘촘하게 밀어 넣고 있습니다.
봉지커피를 타마시면서
남은 햇살을 일일이 주워 담아
내 안의 텃밭에 파종을 해줍니다.
밖을 보니 함석처마에 밤새 누군가
고드름 몇 개를 매달아 놓습니다.
바람도 쐴 겸 낙산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앞마당으로 나갑니다.
아직 이른 겨울인데도
어깨를 잔뜩 움츠린 수수꽃다리가
채 얼마 남지 않은 잎을 털기 위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댑니다.
나도 수수꽃다리 옆에 가서
온 몸을 세차게 흔들어 봅니다.
한참을 흔들다 추워서
대청마루로 뛰어 들어 가는데
마당에 놓여있는 넓은 평상 위에
무언가 보입니다.
겨울을 추워서 미워했을 이들과
추워서 사랑했을 이들을 위해서
겨울은 한상 가득 푸짐하게
겨울을 차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