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내린 다음 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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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다음 날에
뼈를 때리는 바람이 지나가고
세워놓았던 눈 무덤이 사라지면
세상은 마치 폐허(廢墟)처럼 변해간다.
그런 날에는
폐허(廢墟)같은 세상에서 빠져나와
허허로운 마음으로 상상을 한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을
눈송이로 추억을 만드는 사람들을
어느 아담한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을 동창생들을,
그러다가
빈방에 홀로 앉아서
둥그런 거울 속의 나와 대화를 한다.
그녀는,
후줄근한 내 감성을 비난하고
아웃사이더가 된 나를 놀리고
머릿속 가득 찬 생각을 비웃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맘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드러눕는다.
이불 속 세상에서
나는 화원을 만들고
벌과 나비를 불러와서
꽃들의 향연에 흠뻑 빠져든다.
그곳에는 집도, 차도, 사람도 없고
거울 속의 나조차도 없어 즐겁지만
그 시간은 아쉽도록 짧기만 하다.
갑자기 이불이 젖혀지며
불쑥 들어온 폐허(廢墟)의 아우성에
순식간 사라지는 비밀의 화원(花園)
이어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그녀의 비난(非難) 소리는
다시 폐허(廢墟)같은 세상 속에
날 집어 던지고 나는,
비좁은 바늘구멍 속으로
커다란 낙타 한 마리를 몰아넣어
누더기 같은 삶을 다시 깁기 시작하고
다시 눈 속에 세상이 매몰되길 고대한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며,
저도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더랍니다
폐허 같은 나도 저 흰 눈에 깨끗이 함몰되었으면 하는..
삭막한 현실은 언제나 내 앞에 막강한 벽으로
딱 버티고 서 있기에 그 벽은 가능하다면 (꿈이지만)
말짱 부셔버리든가 아니면 기어코 타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었지만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았음을
그 벽 너머 내 의식 안에서 차츰 자라온 하루살이에 불과한
소망과 내 삶의 디딤돌이라 자처하는 시도 되었지만
언제나 현실은 변함이 없기에 현실대로 싫어졌고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현실을 버리고
현실 또한 나를 본체만체 하고
결국 현실 속에서의 나는 한갖 조연 내지 허수아비로
남을 수밖에 없었음을
그러나 가시적可視的인 현실만이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요
시인에게 자기만의 비밀스런 화원이 있듯이,
때로 꿈(소망)은 또 하나의 강력한 현실이 되어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는 생각도 해 보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공감으로 머물다 갑니다
핑크샤워님의 댓글

귀한 걸음 고맙습니다..전 태생이 가장 즐거운 시간에 쓸슬함을,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에 언제 닥칠지 모를 불행을, 환히 웃어야 할 시점에 슬픔을 느끼는 이율배반적 감성의 소유자 같습니다/ 첫눈이 오는데 즐거움보단 이런 느낌이나 느끼니 말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