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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van beethove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4회 작성일 15-11-29 16:42

본문

늙은 나무

 

잎이 무성하던 시절

바람도 햇빛도 모두 쉬어 갔다.

빗방울의 장단에 맞추어

바람은 군무를 추고

빛은 가지마다 수많은 별을 달아 주었지.

어느샌가 칼을 품은 찬바람은 어김없이 불어오고

나뭇잎들을 모두 잘라 가버렸네

쉬어가는 이 아무도 없고

빈 가지에는 무심한 바람

칼끝을 스치는 휘파람 소리

벌거벗은 가지 사이로 놀란 빛마저

머뭇거리다 황급히 지나버린다.

오래 늙은 나무는

지나간 것이 모두 그리움이 되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기억도

회한의 그리움이다.

허리에서 배꼽이 된 커다란 옹이는

고통이 고요히 잠든

세월이 준 훈장이다.

오랜 세월 숙성된 깊은 장맛처럼 신비로운

잎이 무성할 때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으나

이제는 그림자마저 투명하다.

이제야 알았다

커다란 가지가 태풍에 부러져 겪은 아픔이

잎을 욕심 끝 단 자신의 불찰이었음을,

오랜 세월 띄우면 고통도 숙성된 깊은 향이 된다는 것을

휘청이는 세월에 허리 굽은 늙은 나무는 고독하지만

지난날의 기쁨과 고통은 이제

뿌리에서 깊은 맛으로 발효된 소쇄 瀟洒한 고독이 되었다.

늙은 나무의 배꼽이

배설물 가득한 창자를 모두 쏟아내고

커다란 바람구멍이 되는 날

바람아

비야

햇빛이여

우리 잎으로 하던 이야기

❤으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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