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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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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살아있는백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02회 작성일 15-11-22 22:10

본문

국화를 띄우다

 

가을의 끝자락 시월하고도 막날에

은자골 깊은 골짜기에 불을 밝혔다

선생님 큰 걸음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되지도 않는 시를 쓴다고

밥줄 하나 든든히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에게 선생님은

후루룩 한 잔 마시고 다 털어내라시며

국화를 몇 송이 하얀 사발 위에 띄워주셨다

한 송이는 모자란 듯 둥둥 외롭기만 하고

서너 송이는 서로의 몸을 견디지 못해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작은 송이 둘을 남기고 다 비워내었다

오지도 않는 시름에 눌려 휘청거리는 방천의 불빛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내 삶을

방안 가득 흩날리던 누런 국화향들이 괜찮다며

내 어깨를 툭툭 다독여주었다

둘러보면 이렇게 덜어 낼 수 있는 게 하나 둘이 아닌데 여태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들만 귀히 알고 찾아다녔었나보다

밤이 깊어 갈수록

국화향은 더 깊어만 가고

밤새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 오랜 믿음을 얘기하며

사발탁주를 둥둥 떠다니는 몇 송이의 국화를 따라

방천의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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