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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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 안희선
요즘도
따스한 체온의 육필(肉筆)로
편지나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먼지 쌓인 그리움들이
아직도 서가(書架)에 남아 있으니
힘들게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을 거라 생각해
빛바랜 추억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겨자씨만한 사랑만 남아도,
이 세상은 끝까지 따뜻할 거야
그러니 괜한 슬픔 같은 건
자초(自招)하지 말 것, 이라고
짐짓 느긋하게 말한다면
순진한 걸까
또는 멍청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잔뜩 오기만 남은 걸까
바짝 악만 남은 걸까
이제는 사람들,
지치고 고단한 삶을
어디 한 구석
편하게 내려놓지 못하는데
왜?
피차 서로 속을까 두려워서,
속절없이 영혼 다칠까 지레 겁이 나서
말이야
서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사랑을 말하는 수 많은 책들처럼
한 번 팔고 나면 그만인,
표정이 온통 느끼하기만 한 것들
요즘 누가 그런 책을 산다고
요즘 누가
한 번 말하면 그만인, 사랑을
바보처럼
가슴에 소중하게 품는다고
<넋두리>
새삼스레,
인간의 말(言)이 지닌 허구성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말(뭐, 표기 상으론 문자겠지만)에 의해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시인들의 경우는 구태의연한 질서에 의해
떠받혀져 있는 문자행위에 늘 불만을 갖게 되는 거 같다
그 점에 있어선, 나 또한 예외는 아니고...
졸시에서 말하는 서점에 진열된 사랑도
그 같은 맥락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기존언어, 혹은 문자란 개념의 고답성 및
한정성에 의한 뻔한 약속이 때로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그저 그런 것이란 것에
생각이 머무니 새삼, 본질은 상실한 채
그저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온갖 형상의
모양새들이 차라리 처연하다
물론, 내 글이 가장 처연하다는 건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만
El Camino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님의 댓글

고운 시, 머물다 갑니다.
행복한 휴일 되세요.^^
안희선님의 댓글

부족한 글..
머물러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