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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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이 있던 자리/손성태
냉장고에 있던 물병을 꺼내 놓으니
식탁에 물이 고인다
뚜껑을 따지도 않았는데 물을 쏟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왔는지 물방울들이
달라붙는 물방울들이 물길을 내어
흘러내리고 있다
거실의 더운 기운이 물병의 차가운 기운을 만나서
음양의 기운이 태극으로 만나서 서로 꼬리를 물고 물어뜯고 뜯어서
투명한 물방울을 만들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습기가 확 달라붙고
빈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훈기가
사이사이 달라붙어 이슬을 만드는 사이
유리창을 통과한 달아오른 기운이
너울춤으로 달라붙어 물길을 낸다
이쪽과 저쪽의 다름을 스스로 지우고 있다
냉장고 안에서 고형화한 시간의 간격을 빈틈없이 메우고자
서로의 체온을 비비고 있다
서로 뒤섞이고 촉촉이 젖어 이슬방울을 만들고 있다
서로의 눈빛이 같은 물빛으로 그윽해지자
서로의 허기가 메워질 때까지 아래로 흐른다
구덩이를 만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듯
구들을 훈훈하게 데우는 허공의 힘
먼지보다 작은 물 알갱이들이 하나씩 둘씩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고인 물은
식탁 아래로
주르륵 떨어지고 있다
댓글목록
향일화님의 댓글

꺼내 논 물병에 약하지 않는 허공의 힘들이 모여
물방을을 만들고 물의 길을 낸 흔적처럼
수류 시인님이 꺼낸 놓으신
언어의 체온에서 사유의 물길을 만든
좋은 시에 잠시 머물러 잘 감상하고 갑니다.^ ^
水流님의 댓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허공의 힘을 보고
눈에 보이거나 귀로 듣는 실재한다고 믿는 편견에서
잠시 흔들려 봅니다.
허공은 그저 비어있음으로 자유자재의 힘을 내포하고 있나 봅니다.
고우신 발걸음 고맙습니다. 향일화 시인님.^^
동피랑님의 댓글

水流, 님 계신 곳이 곧 물길 아니겠습니까?
허공인들 어디 물 없겠습니까?
물방울에 대한 사유 같이 공감하는 시간 가져보면서
시인님의 환한 미소 떠올립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겨울나기 바랍니다.^^
水流님의 댓글

동피랑 이규성 시인님, 참 오랜만입니다. 그리운 분^^
통영 앞바다는 무탈하시죠? ㅋ
온라인으로나마 자주 뵐게요.
송년의 밤에 뵈었으면 합니다만 욕심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