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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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
이포
‘갈라섰다며. 비렁뱅이 주제에 염병
사랑이 뭐 말라비틀어진 거라고 꼴나게 지랄들이여.‘
끝내 물기를 뿌리는 하늘
가랑잎 바삭거림 잠들며 내려앉는 것들에 눌리는 고통도 잊은 채
마음도 몸도 꺾이어 길바닥에 일체가 되듯 버려진 여인
그 말라빠진 뿌리 주어다가 물도 주고 가꾸기를 한 이레
풀 끝이 파릇이 살아나더니 까칠하니 일어서
서서히 저들과 하나 되더란다
한순간의 궁핍과 두려움에서 건져져
걸어서 만 리를 뻗쳐 나가는 번민도
바람에 날려가야 할 헐렁한 발자국도 물에 씻긴 듯
장마당에 장돌뱅이로 엿 팔러 가면 앞서가서 마름질하고
새참엔 요리조리 엿을 팔아 오니
쓸 만하여 딸을 삼았다는데
날이 갈수록 물이 올라 누더기 속에 요염끼가 돌더란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 추운 계절이 가고 나면 파릇한 봄이 오듯
나무들이 피워내는 봄빛처럼 사람도 꽃이 되는 법
그렇게 나이 차이도 묵살한 채 엉겁결에 정분이 나서 작은댁이 되었으니
큰댁이 난리를 치는데
내 옷일랑 나 없을 때나 몰래 가져다 입지
어쩌자고 두 눈 시퍼런데 생으로 뺏어 입고 지랄이여 독한 년 하드란다
삐끗하면 헤어나지 못할 늪에 빠진 듯 종래는 바닥을 치는데
한 이불 속에 세 몸이 누웠으니
신라 처용(處容)보다 한 수 위인 셈
썩을 것들 그러고도 잘 살면 각설이가 아니지
얽히고설켰으니 어찌 바닥을 벗어나리오
지랄 사달이 나는데
큰댁은 이불을 쭉 갈라 가지고 집을 나가버리고
작은댁은 기가 살아 옆구리를 긁는데
사내 허리가 휘어 구부러진 젓가락이 돼 버렸단다
풍비박산 나서 그나마 가물어 늪도 바닥이 드러나고
더는 깨지려야 깨질 수도 없을 지경
각 살이 판이 되어 늪 바닥에 모자이크 이판사판 난무함만 남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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