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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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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책벌레정민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708회 작성일 15-10-12 18:56

본문

 

  비가 내렸습니까

 

 
  정민기

 

 

 

  비가 내렸습니까
  먹구름이 사라지고 있어요
  의자가 넘어졌습니까
  책상이 일으켜 세우고 있어요
  밥을 먹었습니까
  숟가락과 젓가락이 헤어지고 있어요
  글씨를 썼습니까
  지우개가 틀렸다고 지우고 있어요
  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었습니까
  바다에서 만나서 데이트하고 있어요
  밤이 지나갑니까
  새벽이 오고 있어요
  야간자율학습이 끝났습니까
  학생들이 유령처럼 지나가고 있어요
  병원에 다녀가셨습니까
  처방전을 놓고 가셨어요
  영화를 보고 오셨습니까
  팝콘 향기가 고소하게 스며들어요
  가을 벤치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습니까
  낙엽이 살짝 내려앉아 있어요
  가을을 맞아 시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까
  독자에게 시를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주어요
  나비 소녀를 잊으셨습니까
  구름 끝에 걸터앉아 오래된 시집을 읽고 있어요
  연인을 다시 만났습니까
  이제 헤어지지 마세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깡통을 발로 차보셨습니까
  앞에 가는 사람 뒤통수를 맞췄는데
  '나, 아니야' 라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박준 시인의 시집이 요즘 대세라고 했습니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이 모든 것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뻔했는데
  아, 아까워요
  제 뒷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포켓북에 기록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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