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1) 가을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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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쓰는 편지 / 안희선
오랜 세월 끝에서 떠나기 망설이는 지난 여름의 자취는 눈동자 가득 배어든 달빛에 실려 누리는 고독 속에 슬픈 몸을 잠그고, 마른 풀잎 사이로 꼬꼭 채워진 귀뚜라미 소리, 소리, 소리... 한 가슴 여미며 소스라치게 튀어나와, 아름다운 추억과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깊은 밤의 이슬로 삭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행복한 시절이 오히려 지금이라 말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오직 밤하늘의 깊은 별만이 알 것 같습니다 아, 나는 오늘도 얼마나 여러 번 밤에 잠을 깨어야 할까요 꿈 속에 보이는 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닌데도 차가운 침묵 속에 아스라이 다가오는 이 밤의 적막은 당신을 닮아가고 퍽이나 예의바른 나의 언어는 그것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나 이미 권태로운 소망도 없건만, 또 한 번 당신을 생각하기 위하여 바람에 부치는 울음, 아니 오래 전에 화석이 되어버린 모진 그리움을 이 밤의 푸른 장막을 향해 칼처럼 내던집니다 무엇이 날카로운 소리로 당신을 놀라게 하는지, 묻지도 않고... 흔히 일컬어지는 세월은 당신과는 달리 일컬어짐을 알고 있기에, 행복과 고난이 깃든 이 밤에 가을처럼 편지를 씁니다 사랑과 원망의 두 음(音) 사이에 놓인 휴식처럼, 나의 음정(音程)을 당신께 울립니다
댓글목록
하늘은쪽빛님의 댓글

가을엔, 집배원들의 신발값이 많이 들었겠죠..
노오란 은행잎과 단풍잎은 영문도 모르는 채 따라나서구요..
그윽한 가을이 그대로 오롯이 옮겨져..
가득한 여백과 함께 건너오는 듯한,
고운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각 계절마다 쓰는 편지는
제 각기 다른 정취를 품는 거 같아요
고운 발, 걸음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