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3> 흔적 > 창작시

          흔적

1.

걸으면 걸을 것 같은 바다가 있다

내륙의 짐승들은 어디든 걷는다

사막의 모음은 하나다 아, 총구가 드러난 위장망같다 

모퉁이마다 걸린 감시카메라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눈빛 같은 것 친하지 않으면 낯설고 불쾌한 것이다 괜시리 뒤가 궁금한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사해문서를 최초로 열람하는 양치기의 이마에 초승달이 뜨고 동굴의 기운은 서늘하다 그는 고립된 한 무리의 양떼들이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으로 이주했을까 궁금해 한다  시간을 양피지로 둘둘 말아 항아리에 넣어 둔 채로 열두 개의 달을 지나며 익어 온 冬至의 어두운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2.

죽음은 뼈대없는 우산이다 펼치면 어둠의 안쪽에서 확산하는 두려움일테지 하고 추측하는 순간 가슴이 쩍 갈라지며 기억의 지층 사이로 흘러 쏟아지는 오래된 사색의 미이라들 가장 깊은 밤 산 채로 묻힌 가축들의 들썩거리는 울음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인부는 멸절된 종種의 기억을 깊은 밤마다 하나씩 묻는다 아무도 자신의 노역의 이유를 말해 준 적이 없다 그는 무죄지만 무죄의 집행은 종신토록 유예된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름대는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3.

길거리 저녁 좌판 위에 질서가 풍성하다 크기와 모양대로 색깔 별로 가격 별로 천변 연립들처럼 가지런하다 사람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마치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을 때 첨탑에 찔린 석양이 만종소리처럼 묽어지는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

뭐라고 해야

뭐라고 해

뭐라고

뭐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