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녀, 2는 사이시옷 거리만큼 멀겋게 호(포물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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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뜬 날의 하늘이 오색시위를 당기면
접사눈처럼 구겨박은 오래 된 해몽이 이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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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승님의 댓글

Ⅰ. 가을여자
- Mariah Carey , 겨울처럼 늘 떠나가지 않을 것만 같다.
심야 열차를 타고 호남지방을 경유했어. 열차는 하나 하나의 역(驛)에 정거하며
그때마다 온건하지 못한 회의라는 짐을 하나씩 내려놓게 했지.
열차가 미끄러져 나갈 때면 플랫폼 불빛 이면으로 퍼진 풍경이
유리창이 만들어낸 호수에서 헤엄쳐 나가며,
드디어 그곳에는 잔잔한 여운만이 찬바람에 나뒹굴게 됐다.
등 칸 안은 전등 불빛이 삼킨 고요와 목적지를 밝힌 부정할 수 없는
저마다의 의식으로 커다란 정적이 감돌았고 그것은 좀더 깊은 외로움으로 느껴졌지.
대기의 어둠을 흡씬 마신 실내등은 그때부터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시게 빛나고
유리창엔 땀방울이 돋아나며 ‘반 고흐의 <자화상>’에서처럼,
상처 입은 자(者)의 고뇌가 가을비를 타고 흘렀다.
유리창에 미끄러지는 계절이 슬픈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낙수가 떨어지는 기와지붕의 역사(驛舍)는 환희의 세계로 나가는 문이었지.
그녀의 환한 미소는 역 앞 광장에서 무척이나 젖어버렸지만
눈동자에는 단풍잎이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지.
-내 마음은, “그녀가 떨어뜨린 낙엽으로 술을 빚어야지”
한 잔은 가을을 담아 따라주고,
한 잔은 인연을 담아 따라주고,
한 잔은 비로소 고향을 담아 따라주리라.
그녀는 내 귓가에 무엇인가를 속삭였는데,
내 코끝에는 마지막 가을이 비에 젖어 가는 냄새만이 느껴질 뿐,
우리가 사랑한 계절에는,
저 한 가지 끝에 매달린 단풍잎의 운명을,
어찌하여 볼 수 있었으리.
2005/10/09
Ⅱ. 표정
나는 알았지, 창가에 내리치는 허무의 조각들이 곱게 빛나던 이유를.
한적한 틈새로 잦아들며 아침 한 때 지저귀던 참새소리가
침대 위에서 티끌처럼 나풀거린 요무(妖舞)를.
나는 알았지, 그대의 손길이 간혹 얼굴에 와 닿으며 그리워한 이유를.
사람은 오래 된 습관으로 시간과 예정에 길들여지며,
그대가 애써 어루만지던 얼굴이 바닷가 모래와 다르지 않음을.
나는 알았지, 낙엽이 다 져버린 날 외롭다며 술을 마시자던 이유를.
"바다가 보고 싶어." 그녀의 이 한 마디는 낯설고 애절했다.
"그래, 그 말이 날 취하게 할 것 같아."
우리가 잔을 비워내며 삼킨 것은, 술과
외롭고 낯선 자신이었나 보다.
나는 알았지, 겨울이 깊은 골목에서 여인을 등에 엎은 이유를.
"시원하다. 이렇게 멀리 갔으면 좋겠어." 귀 끝이 시릴 정도로 바람이 찼다.
"그래, 밤바람 때문인가."
그녀는 싸늘한 바람에 숨기고 울었다.
등속으로 파고드는 눈물은 낯선 겨울이었고,
우리가 외로운 이유였나 보다.
나는 알았지, 창가에 내리치는 허무의 조각들이 곱게 빛나던 이유를.
한적한 틈새로 잦아들며 아침 한 때 지저귀던 참새소리가
침대 위에서 티끌처럼 나풀거린 요무(妖舞)를.
2005/10/11
Ⅳ. 여울목에 불던 바람
불빛을 보고 어디선가 나방이 찾아들었다.
바깥에는 종일토록 내리던 비가 그제야 그치려는지,
한량한 바람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저것 잡아야지.
하지만 거짓말처럼 불빛에서 춤추던 나방은,
센바람이 창(窓)을 후리던 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가 그쳤나 보네.
그녀의 발목이 너무나 가냘픈 것에
막연한 고독(孤獨)을 느끼며,
종일토록 하늘을 가리고 내리던 비가,
다시 쏟아졌으면 바랬다.
어둠은,
저것마저 불식시켜 주리라.
-여울목에 나가볼까.
손을 맞잡고 거닐었다, 저 끝에 시선을 두며.
장난삼아 맞서서 거닌다, 그 찰라 견고한 직선의 세상이 뺨을 때린다.
그녀가 앞서가며 아름답게 웃었다, 가냘픈 발목이 아찔하게 세상을 두드린다.
그때였다, 불빛에서 춤추던 나방이 날아왔다.
나방은 센바람에 겨워 보였지만, 무희(舞喜)를 멈추지 않았다.
-저것 잡아야지.
하지만 거짓말처럼 내 앞에 춤추던 나방은,
그녀가 소리치며 부르던 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울목에 불던 바람이 어둠 저편으로 세상을 몰아가고 있었다.
2005/10/14
-건초(乾草)
태초(太初)의 바다를 건너와 미간(眉間)을 간질이는 천지(天地)를 만난다.
과거의 유물을 거머쥔 세상이 열리며 존재(存在)는 눈을 뜬다.
인간의 행적을 쫓아 한 시대(時代)를 소유한다.
감성(感性)의 나무를 숲에서 가져와 자신의 정원에 심는다.
때로는 시기와 질투로 숲을 불살라 버린다.
미지(未知)의 땅을 개척한 ‘우리의 아버지들’을 존경한다.
광활한 대지(大地)와 끝도 없는 바다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지난 시대(時代)의 투쟁이, 여전하다.
사욕(私慾)과 허영(虛榮)에 넘친 저 수많은 정원(庭園)이,
숲처럼 미상불 조림(造林)된다.
어느 날이었던가.
나는 저 숲 속 어딘가에 비밀스런 무엇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무엇은 시대(時代)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한,
‘숲의 정원(庭園)’일 것이다.
건초(乾草)를 밟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숲 속을 지칠 때까지 헤매었을 때, 내 몸은 땀과 먼지로 더러워졌다.
나무사이로 어둠이 들어찼고, 이제 곧 밤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내 머릿속은 텅 빈 것처럼, 고요와 정적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갔다.
마치 지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처럼.
순간 깨닫게 된 것은 ‘허무’였던 것 같다.
대지(大地)에서 숲의 경계가 사라지던 날,
달빛이 아름다워 정처 없이 숲 속을 거닐었다.
건초(乾草) 위를 걷는데, 무언가 그 사이에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들키지 않게, 한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그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타인(他人)의 소유인 정원(庭園)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동일한 장소와 시간 안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숲의 경계가 사라지던 날, 세상의 경계가 그어졌다.
건초(乾草) 위를 걷고 있다.
나는 여전히 저 숲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숲의 정원(庭園)’을,
세상의 경계 안에서 찾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이 내가 찾는 그것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 라고.
( -`건초'詩를 끝맺고 났지만, 이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한 편씩 지을 적마다 이제는 생각으로 시름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다는 말밖에는. 10월 20일 늦은 밤이다. Coldplay - 曲을 듣는다.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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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 시
(부제 : Paint It Black)
유경(幽境)에서 그치는, 이여(爾汝) 나란 누구인가.
무성(無聲) 타계(他界)의 창(窓), 이여(爾汝) 보아라, 나란 누구인가.
말갛게 개인 어두침침한 터널 속에서-쉽게 쓰여 지는 시(詩)
이 나열되는 서식에서 한 발짝 벗어나면, 이여(爾汝) 나란 현상이 무엇인가.
운달(雲達), 과연 덧없듯 하여 창(窓)에서 보노라, 나란 환영(幻影)은 무엇인가.
말갛게 개인 어두침침한 터널 속에서-쉽게 쓰여 지는 시(詩)
수첩을 꺼내어 펜을 들지만, 이여(爾汝) 나란 과연 무엇이던가.
여상(余像) 하고, 나머지 관조의 창(窓), 나란 찰나의 연장이던가.
말갛게 개인 어두침침한 터널 속에서-쉽게 쓰여 지는 시(詩)
숨소리, 이여(爾汝) 나란 누구인가.
유경(幽境)에서 바라보는 창(窓), 이여(爾汝) 보아라, 나란 누구인가.
말갛게 개인 어두침침한 터널 속에서-쉽게 쓰여 지는 시(詩)
2000년 12월 14일 pm 02:10
우리는 아라비아로 갑니다.
당신을 그려보다가 `피식‘ 한 번 웃습니다.
하루 온 종일도 모자라 꿈에서조차 떠오르는 그대가,
오늘은 어쩐 일로 오래 전 버스에서 두고 내린 우산처럼 떠오를까요.
아마 그날은 뜬금없게도 너무나 화창한 날이었거나,
아라비아로 가는 꿈을 꾸고 있었나 봐요.
잡음 섞인 라디오주파수의 볼륨에서 떠도는 마음,
19번국도를 지나며 스치는 바람과 소음에 소식 없어요.
하릴 없이 담배 한 개비 타들어갑니다.
당신이 못내 가슴 태운 것들 입가에서 하얗고 긴 여운으로 흩어집니다.
일정대로 시간과 공간의 루트를 돌아 슬픔이 달려가게 합니다.
-이런 슬픔은 짧은 생애를 살아 온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게 하루가 아라비아로 갑니다.
나는 힘들고 지쳐 슬픔을 다 버리지 못할까, 뒤돌아봅니다.
당신이,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고 서있네요.
2013/07/02
그 사람 실없다.
어느 가을날이었던가, 기분은 높은 하늘만큼 올라가있었지.
손 내밀면 구름이라도 끌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날, 말이야.
밋밋한 오후 2시에 `주성치‘영화를 보고 나와,
베스킨라빈쓰리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격이었다고나 할까.
그때였어, 불우의 징조가 시작된 건 말이지.
시네마 건너편 스타벅스의 테라스에 스캔들이 서빙 될 즈음,
결핍된 감각의 한 귀퉁이를 휘젓는 황홀한 공기가 거리에 번졌고,
최면에 걸린 그림자는 발치에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넘는 중이었지.
정체모를 환상이 내 발치에 달린 건 아마도,
상실 된 그림자 때문이겠지만, 말이야.
-기분이 좋았던 어느 가을날,
하늘같은 그리움 하나 그림자 속에 들어와 머뭇거린다.
잡을 수도, 놓을 수도, 가질 수도 없어, 망설이는 비극의 전조.
당신의 살결을 만질 때만 나던 가을 냄새가,
도심의 어설픈 곳으로부터 날아들고 있었다.
멀고 먼 세계로 보내어버린 시선은 마른 피눈물만 삼켰겠지만,
오래전부터 폐 속 깊이 뿌리내린 당신의 숨결이 어지럽게 걸음을 이끌었던 게지.
혼탁한 쇼윈도를 스쳐가는 상념은 하나,
길 위에서 `뉘앙스‘를 주웠을 때 주문을 외웠었지, 나도 모르게.
“거짓말”, 참을 수 없는 말이 되었지.
-다시 몰려드는 세상 앞에 등을 보이며,
스타벅스의 테라스에서 스캔들을 주문해 본다.
아리따운 웨이트리스에게는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없을 테지.
환상은 늘 발치에서 그녀와 함께 머뭇거린다.
웨이트리스가 무안한 듯 말한다,
실없는 사람이군요, 라고.
2013/07/07
연금술사
(부제 : 돌꽃이 핀다.)
어떤 독재자의 동상 앞에 선다. 이미지가 퇴화한, 테마 앞에 열정을 본다.
세계는 늘 그래왔다는 듯 기교(奇巧)에 놀아난다.
나는 그것을 어느 새, 잡동사니마냥 만지작거린다.
당신만은 유일하게 존재(存在)를 만졌지만,
어제와 오늘이 손끝에서, 흐릿해져 간다.
-불시에 바람을 타고 밀려온 오색찬란한 기쁨의 파도,
망각의 별로 어둠에 박히기 전에 온기만은 남겨야지.
질긴 밤이 염분에 젖어 하얗다.
(당신은 그렇게 오셨지요, 별을 수줍게 밟으시며.
이내 마음은 벅찬 나머지 쪼개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거뭇한, 세월의 고독(孤獨)이 배긴 돌덩어리를 수놓습니다.
따개비들이 파도와 별빛의 부스러기에 피어납니다.)
바로 보이는 것은 지난 이야기, 내가 지금 만지는 것은 영원할 이야기.
당신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소리를 안고 온다.
나는 그것을 오로지, 석화(石化)한 세월로 되씹는다.
헐벗은 광야(廣野)와 대양(大洋)은 줄다리기하듯 지나며,
돌에 상처를 남긴다. 당신이,
오래된 상흔일수록 따개비로 깊이 뿌리를 내린다.
-불분명한 장소와 불특정한 시간, 세상과 조우(遭遇)하다.
예전의 별밤은 아스라이 어둠처럼 멀다.
따개비가 있고, 고독(孤獨)은 어둠이 된다.
(당신은 그렇게 드셨지요, 보잘것없는 돌덩어리 하나를 위해.
이내 마음은 벅찬 나머지 부서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뿌리내린 숨결로 인해 꽃이 피어납니다.
세상 다하는 날, 그 날이 오면
한량없이 돌꽃 하나 그대 앞에 바치리다.)
2013/07/13
미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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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대승님의 댓글

기억의 주검 바깥의 두께 I
언젠가 두께 저 너머에서 걸어 나온 소년을 만난 적이 있다.
푸른 안개와 은하의 모래알로 조형된 그의 그림자가 볕을 빠져나갔다.
소년은 휘파람을 불었고 나는 그림자와 알 수 없는 춤을 추었다.
그림자는 불모의 시간을 끌어 모아 곡예를 부리고,
세상을 담아둔 주머니를 신이 나서 흔들어댔다.
-사방천지로 흩어지는 조각들이 지구 위 두께로 내려앉아,
다시 내가 걸어오길 기다린다.
당신은 세상 너머 어느 두께의 자오선에서 소년을 기다린다.
극지와 적도를 대칭으로 두께만큼 기억을 표기한다.
우리는 푸른 안개와 은하의 모래알을 사랑했다.
그것은,
콧날에 주절거리며 미끄러지는 구애
지난 시절 오그라든 입김으로 동냥질한 얼의 가려움
남중하다 포개어버린 얇은 시선은 두께의 상실로
기억은 구만리 해저의 손금을 저몄다.
-언젠가 세상 저 너머에서 걸어 나온 당신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주머니 속에 담아둘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당신이 열고 있다.
기억의 주검 바깥의 두께가 있고,
당신은 두께 주변에서 서성이며 간혹 말한다.
세탁기에 머리를 넣고 돌려버리고 싶다, 라고.
2014.02.24.
기억의 주검 바깥의 두께 II
벽으로 파고드는 유희의 곁눈이 그해 겨울을 말한다.
슬라이드 위에 올려놓은 표본처럼 신기루를 바라볼 일이다.
섬모의 잔상으로 끈끈해진 양심의 피사체에 누웠다, 렌즈는 초점을 읽었다.
겨울은 메말라 비틀어진 얼룩으로 파랗게 질린 하늘이 된다.
공간을 단면으로 가르고 얼룩 속에서 겨울을 꺼낸다.
살갗이 푸른 하늘, 당신이 유희의 심장을 갈랐다.
숨을 쉰 이래를 통틀어 오아시스에 이른 적 없던,
원점에서 발원된 그 벽의 경계가 한 걸음 다가온다.
시작은 꿈을 꾸게 하지만 일장춘몽의 끝은 유희가 만든 벽에 기댄다.
불투명한 시약으로 오아시스를 검출해내곤,
일종의 `유희에 대한 벽의 시현‘이라 타이틀을 붙인다.
등줄기를 타고내리는 전율 또 한 번의 신기루,
심장이 아려오는 유희의 통증,
그리고 그해 겨울 깊게 자리한 당신.
2014.03.01.
갈라파고스의 노래
네가 보고 싶어. 이 다음에는 그런 장난은 치지 말아줬으면 해.
아니. 지금은 그저 혼자남아 있어. 몇 일전에 <갈라파고스>가 아팠었어. 감기에 걸렸거든.
석양이 물든 저곳에 네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그곳마저 젖어있을 거라...... 어쩜 좋으니.
녹색이 아주 맑아 보여. 너의 흔적들이 그저 무심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왜 그럴까?
오늘은 즐거웠던 것 같아. 네가 없어도 오늘만은 즐거웠다고 생각해. 지금은 너를 생각하니 오늘 같지가 않아.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소나무 숲 사이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며, 소리가 반사되어 왔다. 태양이 소리를 집어삼키며 돌연 듯 수경이 나타난다. 고양이 손놀림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앙큼하게 그녀가 다가간다. 놀란 듯 기욱은 하품을 했지만, 다가온 그녀를 안았다. 시냇물이 논두렁 사이로 흐른다. 태양의 볕이 잔잔하게 수면에 그을리며 하얀 포말(泡沫)같은 물안개를 피워 올렸다.
“무덥지 않니? 너의 얼굴이 가벼워진 것 같아. 마치 설탕처럼 녹아내릴 것 같아 보여. 햇볕을 피해 있는 게 너에겐 좋을 것 같아. 넌...... 넌 여전히 그늘을 좋아하니 말이야. 저 푸르게 개어 가는 하늘 중으로 공허함이, 물을 담은 샬레 위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번지는 것처럼, 여름햇살이 여름의 무더운 볕을 태워버린다면, 너의 얼굴에 번져있는 잉크 한 방울도, 알코올처럼 증발해 버릴텐데.”
“너는 많이 야위어진 것 같아. 아침에는 새벽이 꽃잎처럼 이슬이 되어버려. 너는 새벽을 머금은 풀잎의 이슬처럼 맑아. 나비처럼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겠니? 새벽에는 별이 밤안개를 피워 내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아침이 오면 너와 함께 정처 없이 날아다니게. 그리고 지쳤을 때는 그늘에서 쉬자_. 나비가 되었을 때 날개로 너를 보호해 줄게. 내가 너를 젖지 않게 나의 날개로 너를 포근하게 덮어줄 수 있을 거야.”
수경이 소나무 뒤로 걸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갈라파고스>를 데리고 기욱에게 돌아온다.
“못 보던 사이에 너를 많이 닮아버린 것 같아 보여. <갈라파고스>와 너는 마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것 봐_. <갈라파고스>가 좋아하잖니. 이제는 누나 말도 잘 듣는구나. 이빨로 물어뜯곤 하던 녀석이 말이야. 이젠 이렇게 등을 쓰다듬어 주어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 것 같아.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어 다행이야.”
“그래도 여전히 밤만 되면 어미가 그리워서 울곤 하는 걸. 가끔 <갈라파고스>를 잠자리로 데려와 안고 잘 때도 있어. 녀석이 슬퍼하는 걸 보면 내가 녀석의 친구가 되어 주고 싶어 눈물이 날 때가 있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거야. 수경이가 이 녀석의 엄마가 되어주면 좋겠다_. 늑대를 닮은 개야. 무척 굶주린 늑대를 닮았어. 너무 온순해, 봄의 아카시아 향기가 물씬 나는 것처럼......”
“보드라워. 잠깐 사이에 이처럼 털이 따뜻해지는 걸 보니 다음 겨울이 와도 추워하지는 않을 거야. 이것 봐. 갈라파고스 어디 가니? 기다려_.”
“아니 갈라파고스를 쫓아가지 않아도 돼. 녀석이 눈구름을 몰고 올 거니까. 수경이가 눈(雪)을 보고 싶어하니까, 녀석이 눈의 언덕으로 달려가는 걸 거야. 머지않아, 이상야릇한 공기를 호흡하며 꽃비처럼 내리는 별 하늘의 눈을 보게 되겠지. 반딧불처럼 녹색 빛깔의 영롱한 눈을 맞게 될 거야. 사랑하는 수경아, 풀벌레 소리가 들려올 때는 눈(目)을 감아줘야 해_.”
“눈(雪)의 언덕에 사는 요정이 갈라파고스의 부탁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요정의 세 가지 부탁을 먼저 들어줘야 눈의 언덕에 있는 눈구름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하던데...... 음_, 눈(目)을 감았을 때도 어둡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람이 불어오는 걸 피부로만 느껴야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살갗에는 얼음 버섯이 송이처럼 맺힐 거야. 나에겐 갈라파고스처럼 따뜻한 털이 없는걸. 입술은 붉게 얼어버릴까? 공기마저 차가워질 텐데.”
“눈이 내려_. 별이야. 조금 씩 조금 씩 별들이 밤하늘에 고이고이 맺히고 있어. 풀잎의 이슬처럼 별들이 눈을 털어 내고 있어. 저 별은 마치 푸들 강아지처럼 앙증맞게 몸을 떨며 눈을 털어 내고 있어_. 이곳에 시(詩)의 반딧불 같은 눈들이 아슬아슬 내려와 노래를 불러주는 거야. 자_, 이제는 눈을 감아 주겠니.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너의 손을 내가 꼭 잡고 있겠어.”
“시(詩)의 선율이 피부를 만지며......, 바람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느낌으로......, 키스해 주지 않겠니?”
“갈라파고스 왜 그래야만 했니? 난, 너도 기욱이도 잃고 싶지 않았는데...... 요정의 세 가지 부탁 중 하나가 그것이었니? 하지만 난, 차라리 그때 눈을 맞으며 반딧불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거야. 너도 반딧불이 되어 녹색 빛을 퍼뜨리는 벌레가 되었으면...... 안타까워. 너의 운명이라는 것, 우리들의 운명이라는 것을.....”
수경은 눈의 언덕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요정의 인형이 되었다. 무엇인가, 그녀의 살갗을 만지며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은......
“기욱이 오늘도 그처럼 차가운 이유는...... 갈라파고스 눈의 언덕에서 오늘도 눈구름을 가져갈거니? 하지만 더 이상 요정은 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너는 더 이상 갈라파고스가 아니기 때문이야. 안타까워, 너는 혼자 남게 되었어. 예전처럼 별이 뜬 밤에 늑대처럼 울겠지. 하지만 넌 더 이상 따뜻한 털을 가지고 있지 않잖니. 나는 하프를 연주해야만 해.”
갈라파고스는 바람을 향해 달린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추워서 `끙끙‘거리면서도 바람을 향해 달려간다. 하프를 연주하는 수경은 피부에 돋아나는 얼음 버섯으로 인해 입술마저 얼어버려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남은 게 없는 걸까? 너는 나비도 될 수 없을 거야. 너는 단지 차가울 뿐이야.
갈라파고스, 기욱에게 사랑의 멜로디를 전해주지 않겠니?
비가 내리는구나. 별의 눈물이야.
사랑하는 마음
넌 사랑을 모르는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늘 외로운 거래.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늘 고독한 거래......
사랑하는 사람은 혼자여서 외로워 보이지만, 눈물만큼이나 뜨거운 정열로 살아간대. 그래서 외로움마저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고......
난 이제껏 살아오며 한순간도 사랑하는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건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였을 거야.
누군가가 한 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써 미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지.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당시, 아련하게 흐르던 수맥(水脈)의 시간은 정지해 버렸던 거야. 감정에 노닐던 수많은 기억들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무게로 생각의 부피를 압박해 왔어. 결국 그것이 무엇이었나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 누군가는 절제된 인물이 되어 있었지.
편지를 쓰듯 일기를 써 내려갈 때의 애수를, 펜 끝에서 느껴지던 은하수는, 그 누군가를 향한 마지막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아쉬운 일말의 사랑이, 여전히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고백이란 사연이 남음을 직감했어.
도서관 정문 앞으로 쉼터가 있다. 기욱은 쉼터의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린다. 비둘기 떼가 어지러이 느티나무 주위를 날아다니고 소리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들은 포석 위에서 한들한들 춤을 춘다. 넓고 엷게 푸른 공간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가을날의 신비로운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티 없이 하얗고 맑은 풍경이 되어 가을을 노래한다. 책의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고 있듯 시선이 가있던 기욱은 낯설지 않은 그림자가 자신 앞에 버티고 서 그늘이 되어있음을 알아챈다. 순간, 몽롱한 그림자가 자신의 영상(影像)에 겹쳐짐을 느끼고 뒤돌아보려 한다.
“내가 이렇게 볼에 대고 속삭이면 귓속도 간지러워 할까? 아니면 귓속이 먼저 느끼고 수줍게 볼을 움츠릴까? 나의 목소리를 만져주지 않겠니? 모래처럼 바람에 스러지기 전에 나의 가벼운 목소리를 너의 목소리로......”
“책 속에 너의 모든 목소리를, 유리그릇에 담듯 투명하게 담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긴_ 머릿결하고(있지만), 하얀 목덜미에 감도는 선연한 아름다움하고(있지만), 잡히지 않는 소리가 하늘에 비칠 듯 말 듯, 반사되어 오는 그리운 자취하고(있지만),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변화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르지(만). 책 속에서 너를 닮은 글자를 찾을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엉성하게 자리를 잡은 문자가 되어있었어. 공백이라도 좋았으니...... 상상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마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소리들이 비에 씻겨 내려오지 않기 때문일 거야. 만약 그 많은 사랑의 사연이 섞인 소리들이 지상으로 내려온다면 우리들은 가슴이 벅차 숨 쉴 수 없을 정도의 감동으로...... 그렇지 않겠니?”
“손을 잡고 물속에 넣어보지 않을래? 물속에서는 그림자가 희미해져서 어떠한 혼란도 없을 테니...... 너를 피해있는 내 모든 감정의 물결이 수중에서 투명하게, 너의 손으로 흘러 들어갈 거야. 우리들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이 분수대의 물결에 남아있을 거야. 영원히 지워지지도 않고, 비나 눈에도 씻기지 않고, 마냥 처음의 느낌으로 남아있을 거야. 느껴지지 않니? 이대로 소원을 말해보지 않을래? 분수대에 우리의 두 손을 던져 넣으며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빌어보자_. 가슴 깊은 곳의 골짜기에서 울려오는 메아리를, 우리들의 메아리를 분수대에 남기자_.”
마음에 얼음집을 짓다
난 너만을 사랑할거야. 언제까지나 넌 나를 괴롭힐 테지만, 도저히 너를 잊을 수 없어.
그날은 창백하고 맑은 햇살이 어렴풋하게, 때론 강렬하게 머리카락 틈으로 휘감겨왔지. 그것은 너의 숨결이었는지도 몰라......
왜_, 왜 하필이면 나는 너의 가슴에서 울려오는 생명의 울림만을 듣고자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렇게 나를 미칠 것 같은 슬픈 외로움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너의 숨소리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얼룩으로 옷깃에 남아있는데, 너는 지금 이곳에 없구나.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나는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그 누구에게......
광고표지판, 네온사인, 빌딩 유리벽에서 반사되는 빛, 요란스러운 엔진소리, 인파가 밀집한 소리의 부조화, 갈라지고 찢어지는 듯한 규칙성의 소리, 시간이 절규하는 소리, 기댈 수 없는 무의식의 소리, 그 모든 사태들의 난립(亂立).
기욱은 지하도를 빠져 나와 교각 위를 걷는다. 교각 아래로 고수부지가, 맞은편으로 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안개 중을 걷듯 하지만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꿈결 같은 길이 펼쳐진다. 물방울이 옷깃에 와 닿지만 곧 증발해버린다. 피부에 와 닿는 물방울 또한 정결할 뿐이다.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제도기와 삼각자를 덮고 있는 도면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고 있다. 선연한 바람이 약간 곱슬머리 진 그의 앞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살랑_이며 지나간다. 그의 걸음 또한 살랑_거리며 지나간 바람만큼이나 가벼웠다. 몽환의 다리의 끄트머리 상단의 신호등 앞에 섰다. 녹색 불로 바뀌자 공원의 입구로 향해 걸어간다. 습한 날씨였지만 피부는 건조하다. 젖게 할 수 없는 물방울, 그 분자들은 눈을 가졌다. 사람이 볼 수 없는 불쾌감을 그들은 볼 수 있다.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단지 물방울이 느낄 수 없다는 것밖에......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양 갈래의 길이 난다. 그리고 그 길들은 달팽이 모양으로 서로 겹치지 않고 중앙에서 만난다. 그 사이사이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식물이 자란다. 그 달팽이 같은 길마다 계절이 탄생한다. 마치 그것은 인생의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는 조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철나무가 녹색의 벽을 이루고 미로처럼 둘러쳐져 있는 낭만의 거리, 사람들은 <st. ralffinz>라 부르고 있다. 동편으로 정원처럼 꾸며진, 단풍나무가 벤치 뒤에 서있는 자리에 기욱은 앉았다. 반구 위 은행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태양은 깜박거리고 태양의 눈으로부터 정면의 건물옥상에는 오색의 풍선들이 나들이 나온 가족처럼 경쾌한 리듬의 바람을 타고 있다. 갈색니트의 소매를 접히고 손목시계를 바라볼 때쯤 낯설지 않은 낙엽 밟는 소리가 나며 다가오는 인기척이 났다. 기욱은 벤치에서 일어선다.
마주하고 선 두 사람의 눈길 아래로 공간은 정원이 된다. 장미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 같다.
“이제 널 만나지 않겠어. 너와의 사랑은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난 이제 정말 결심했어.”
“고개를 돌리지마. 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거지? 누나...... 기다렸어. 안고싶어.”
“바보야, 난 이제 널 보지 않겠어. 그런 말은 하지마.”
기욱은 벤치에 않아 바지포켓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마치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예전에도 누나를 만날 때마다 느꼈었지만......”
“너와 더 이상 만날 수 없어. 이젠 힘들어. 얼음집을 너는 결코 지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기욱이가 얼음집을 지을 수 있더라도 금방 녹아버릴 테니까, 공연히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난 너와 함께 살 얼음집을 지을 거야. 난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난 바보라서......”
“더 이상 나로 인해 널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
“아니, 내가 괴로운 것은 언제나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너를 향한 생각 때문이야. 난 힘들어서 괴로운 건 아니야. 널 사랑한 순간부터 간헐적으로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어. 지금은 네가 옆에 있어줘서 머리가 아프지 않아. 널 사랑해......”
“난...... 난 널...... 네가 걱정이 돼.”
저 멀리에서 포성(砲聲)이, 성난 울부짖음의 포성이 태양 볕에 튕겨지며 심열에 꽂혀질 듯 강렬하게 울려온다. 솜털처럼 내리는 물분자들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불꽃을 튀겼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전도체일 뿐이다. 감정은 그 매개체를 타고 하늘의 빈 공간으로 올라 별, 구름, 빛, 먼지, 안개, 수증기, 색깔, 비, 눈, 서리 등이 된다. 또는 여백의 물질이 된다.
기욱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누이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녀는 그를 저지하며, 부탁하는 듯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매정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 것을 당부한다.
“울고있구나. 그래, 너의 눈물이 결국...... 그 슬픔은 언제나 나를 가로막는 창칼이 되고 말지. 바리케이드를 치고 날 막아서다니...... 난 어서 빨리 얼음집을 짓고 싶어. 그때쯤에는 제발...... 누이의 입술에 번져 흐르는 환호의 영접을 받고 싶어.”
기욱은 벤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사철나무 위로 고개를 살짝 내민 장미꽃을 바라본다. 단풍나무에서 색깔이 덜 익은 잎들이 가냘프고 무겁게 떨어진다. 바람도 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잔디밭으로 무겁고 연약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저 잎들이 지면에 닿지 않고 한없이 언제까지나 공기 중으로 날아다닌다면...... 저 잎이 누이와 나를 위한 방을 만들어 주어 남몰래 은밀한 만남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이젠 가야겠어. 널 만나지 않을 생각이야. 제발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해. 널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 줘.”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줘. 너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단풍잎이 떨어지고 있어. 저 잎들 중의 하나가 누이의 얼굴을 만져줄 거야. 나의 손인지도 몰라. 너의 손이 필요해, 라고 말해주지 않겠니......? 너의 손이......”
“...... 너의 손이...... 필요해.”
그녀는 마르지 않는 우물을 가진 마냥 푸른 바람이 깃 든 새벽빛의 눈에서 비를 뿌렸다. 기욱의 <너의 손> 단풍잎은 우화(雨火)에 타버린다. 그 모든 단풍잎들 또한 깨알처럼 흩어지며 먼지가 된다.
“널 사랑해, 영원히...... 난 얼음집을 지을 테야. 난 두통이 심해. 언제나 널 생각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미칠 것 같아. 미칠 것처럼 아파..... 아파서 못 견디겠어. 못 견디겠단 말이야.”
둘은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에서 간격이 없이 미숙하게 서서 울었다. 둘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가을풍경이 되어 내리는 비가 세상의 모든 공기를 젖게 하였다.
“그래,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차가운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것이구나. 미처 나는, 어쩌면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 마냥 낙엽을 태우고 있었던 거야.” 기욱은 바지포켓에서 머리핀을 꺼내, 상처 난 손으로 벤치 위에 그것을 놓았다. “네 머릿결을 쓰다듬고 싶었어. 이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어. 너에게 나의 마지막 흔적이 될지도 모르는 머리핀이야. 하지만 난 얼음집을 짓도록, 괴롭고 아픈 일이지만, 노력할 거야.”
기욱은 <st. ralffinz> 길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한다. 기욱은 가끔 뒤돌아 볼 듯 말 듯, 주저주저하는 듯이 걷고 있었다. 그녀는 옆으로 선 채, 빌딩의 유리벽을 바라보고 있다. 눈물이 그 안에서 낙엽처럼 떨어진다.
얼음집을 짓지 못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어. 하지만 너는 오히려 그 뒷일을 걱정하고 있다.
여전히 눈물은 가을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된다. 저 멀리에서 울려오는 포성(砲聲)은 찢기고 갈라져 빛에 반사된다.
언제까지나 너에게 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인지, 아프게 하는 시선이다.
벽 사이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손의 열기마저 너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그것이 진정한 눈물이기에......
2000년 9월 13일, 수요일 pm 06:50
동행
(부제 : 그날의 동행한 질서 또는 나를 보다.)
버스 안은 시원하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경쾌하였지만 슬픈 음색을 발하고 있었다. 밖의 열기를 받아 데워진 몸이 차츰 식어가면서 나는 밝은 듯한 슬픈 음색에 들뜬 마음이 침전하며 우울하여졌다. 버스 안의 찬 공기도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버스 안의 모든 보이는 것들이 슬픈 모습으로 돌변했다. 나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슬픈 것들을 차갑게 인식하였다.
신문사에 들렀다. 호의적인 사람들이 호의적인 태도로 호의를 갖추려 하였다. 나는 호의적인 말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호의적이지 못한 나의 고무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이 이중인격을 외면적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호의적인 것이 호의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에 안절부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호의적이지 못한, 일종의 사무적인 발언을 남발하였다. 나의 인상처럼......
더위가 기류를 타고 바람처럼 피부에 와 닿았다. 더위는 아무래도 거짓인지도 모른다. 거짓인 것은 사실 바람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이 더위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디지털 시계가 오늘 14시 10분을 나타내고 있다. 버스기사가 사무적인 표정을 하고 사무적인 옷 매무시를 한 채, 사무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동료기사가 다가와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그에게 라이터를 빌리려 한다. 그는 겸연쩍은 듯이 터프 한 손놀림으로 그의 동료에게 양심적일 것을 무언의 신호로 말하며 라이터를 익살맞은 동작으로 건넨다. 그의 동료는 익살맞은 동작으로 익살맞게 건네는 그의 라이터를 장난하며 받는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태풍이 흘기고 지나간 하늘에 다시 거칠고 둔탁한 느낌의 구름이 덮쳤다. 햇살이 새초롬한 모양새로 슬그머니 도둑발로 걷듯 구름 뒤로 갔다. 다시 습하고 더운 날씨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며 더위가 흘기고 지나간 시멘트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는 음료수를 마셨다. 깡통이 점점 데워지고 있다. 손은 젖어가고 있다. 나의 눈이 그것들을 보고 얼룩지고 있다. 드디어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늬처럼 얼룩이 져 보이기 시작한다.
timeless time(담배상품명)을 한 갑 산다. 처음으로 피워보는 새로운 담배이다. 나는 포장을 뜯고 한 개비를 빼내어 피워 문다. 아! 기막히게 부드럽고 얌전한 담배이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초등학생 꼬마와 얘기를 나눈다. 이 꼬마 여자 애는 내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모르면서, 무턱대고 아무런 질문이나 던진다. 나는 그만 골이 난다. 담배를 피워 문다. 꼬마 여자 애가 건물 밑퉁의 하늘을 멀겋게 본다. 나는 멀겋게 꼬마 여자 애를 본다.
젖가슴이 축 늘어진 늙은 여자가 공중화장실에서 나와 성큼성큼 벤치에 앉아있는 내 앞을 가로질러 휑하니 지나간다. 내가 늙은 여자의 젖가슴을 끊임없이 보고 있다는 것을 외면한 채,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한다.
편의시설, 터미널의 TV 앞에 와 선다. TV 옆으로 대형프로펠러를 장착한 선풍기가 의미 없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무감각한 얼굴들의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시선의 자리를 아무렇게나 둔 채, 무감각을 바라볼 줄 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터미널 입구에서 서성인다. 나는 지금 초조해 하고 있다. 초조한 시간이다. 나는 어떻게 이 초조한 마음을 초조하지 않게 하여야 할지 몰라하며 서성이는 것이다.
시계탑이 교차로에서 의미 없이 세워져 있다. 저 큰 시계로 인해 내 시선이 의미를 가지게 하는 이유란 바로 여기에 있다.
PC통신에서 친분이 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열중한다. 대중(大衆)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들보다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통신을 하면서 내가 사람흉내를 내는 기계를 느끼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잠깐 동안, 잠깐 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생각한다.
나는 간혹 외출하고 난 직후 멍한 상태에서 멍한 생각을 한다. 나는 내가 왜 외출한 뒤, 멍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멍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나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멍하여 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나는 강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서 강을 바로 보는 것처럼 멍하여 있는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샤워를 한다. 나는 도피한다. 나는 더위가 도피하길 바란다.
밤이 되면 우울해 진다. 계절이 바뀌면 우울해 진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 진다. 말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고 있으면 우울해 진다. 시간이 느리게 가면 우울해 진다. 강물이 아름답게 출렁이며 흘러갈 때 나의 눈은 우울한 것을 목도한 것처럼 우울한 모양을 한다. 나는 우울해 하는 자신에게 우울한 생각을 우울한 감정에 맞춰 우울해 지도록 유도한다. 우울하지 않으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우울한 생김새의 생각이 있다.
그리운 사람이 다가와, “그리워하고 있었니?” 하고 묻는다면, “지금은 그리워하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어.” 라고 말할 테다.
누군가가 보았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말하며 누군가 궁금해한다면, 누군가는 누구인가를 누구이다라고 말할 테지만, 누구는 누구가 아닐 경우, 누군가에게 대하여 누군가를 누구인가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Beatles의 노래 중 <yesterday> 곡만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도 여전히 <yesterday> 곡만을 듣고 있다.
2000년 9월 2일, 토요일 am 01:15
구슬치기(확장판)
서문
구름바다 멀리 구중궁궐 서시 한편 여명에 쓰여 지는,
어느 전설처럼 빗장 걸지 못한 광대의 이야기.
개벽을 알리는 천둥의 용오름,
바다의 맥(脈)을 짚고 대륙의 혈(血)을 지나
섬광의 줄기가 잉태한 천하(天下)는 우주의 구슬.
구슬의 씨앗으로 태어난 만물(萬物)의 피조물,
발아(發芽)에서부터 소멸에 이르기까지 사연에 매여
구슬의 형상(形象)을 닮고 마는 광대적인 생(生).
생의 연습을 준비하는 서정의 인간사,
유구한 시간 앞에 엎드려 한(恨)을 말한다.
달에게서 옥토끼를
해저 조가비에게서 진주를
내 마음은 둘 곳 없어,
(도태한 점막을 구슬의 형상에도 이르지 못한)
공중에서 한 점 휘감겨온 서정의 생(生)
이제는,
당신 발 앞에 던져 이야기하고 싶다.
구슬 굴리듯......
중문
은하의 장력과 결속된 에너지로 뭉뚱그려진 천공(天空),
구름 속에 숨어 시공(時空)을 초월한 구슬 안 궁궐에는
천하를 꿈꾸는 구슬의 씨앗들로 가득 하였다.
당신과 나는 이미 오래 전 이곳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기다려야 했다.
푸른 안개와 은하의 모래알로 조형된 달이 구슬지붕에 매달리고,
여명의 농간이 바다의 맥(脈)에 이르러 조가비로 들어간 날,
궁궐문은 햇살 튼 실루엣으로 무지개를 켰다.
물방울처럼 미끄러져 내리는 꿈의 무리들,
광대의 한(恨)마저 혈(血)을 누르지 못해 혈(血)이 된,
우수(憂愁)의 시간은 짧다.
달에게서 옥토끼를
해저 조가비에게서 진주를
내 마음은 광대가 노래하는 한(恨),
공중에서 휘감겨온 서정의 생(生)에서
당신을 찾아 사랑하는 것.
구슬이 맺혀 아롱지는 은하를 보았다.
시공(時空)을 무시하고 굴러가듯......
말문
당신을 이곳에 모시기 위해 광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대를 향한 얼입니다.
달에게서 옥토끼를
해저 조가비에게서 진주를
한(恨)에게서 사랑을.....
2014.03.07.
개스킷나이프
진부한 시간이다. 과열된 장치들의 과부하를 조율하는 중도의 중화쯤.
일과에 정해진 일정의 서식된 나열은 양력을 받고 응축된다.
조밀한 기포로 극분해될 때까지의,
쉴 틈 없이 환각의 통로를 지나는,
휘발성의 기화, 틈사이의 미세입자를 난도질하다,
증류된 역풍(易風)과 발화의 역풍(力風) 사이에서
모호해진 포화가 쪼개어진다.
존재가 뚜렷해지는 시간이다. 생체기에 누른 거즈조각 같기도 한.
당신을 해석하는 두개골 안쪽의 피질은 주름골이 깊다.
갑각류의 피가 화석으로 굳을 때까지의,
지반에 포개어진 형판에서 주물 된,
자연의 굴레를 거스르는 흔적. 비약은 자유롭다.
뇌하수체에 흐르는 시간의 강물처럼.
칼날 같은 개스킷이 은연히 모서리의 바람을 막고,
당신과 나 사이의 괴리를 조율한다.
어느 정점의 귀퉁이를 잘라냈을지도 모를 칼날이,
해리에 박힌 풍속의 꼬리를 잘랐다.
봄날,
이지러진 음(音)의 문양을 한 꽃잎이 바람 위를 부유하듯
따사로운 봄볕을 데리고 당신을 마중 나가 노닐고 싶은, 그런 날이다.
2014.03.19.
장사
(부제 : 소삿날을 세우다)
거름망을 붓으로 긁으며 실뱀장어치류를 모두던
좁은 방 한 구석에는 부스터의 부루로 치류통이 달리고
갑판 물 칸이 원시의 근원인양 통로를 구획한,
사선으로 날 선 등은 갱물주름도 말리지 못하고
내린 닻줄마냥 거기에서 항상 팽팽하였다.
장사(壯士)는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은 등을 세우고 살았다.
실뱀장어를 연상시키는 부레를 온몸에 키우며,
물 칸에 피고름이 맺힌 닻줄을 내리곤 했다.
바람녹 든 소삿날이 등 세워지면 나는 왠지 슬펐다.
사선으로 날 선 등이 파고들까, 방 한 구석의 부루 우는 소리가
그럴 때마다 갑판 물 칸에서 나곤 했으므로.
조수가 밀치는 그로테스크를 유영한 소사는 또 다른 닻을 내렸다.
끝도 없는 원시를 향해, 등을 꽂혀 세우고.
실뱀장어치류의 가늘고 기다란 하얀 속이 드러나듯
장사의 소삿날은 뚜렷하다.
단 한 번도 세운 적 없는, 절대의 원시가 조수에 밀려간다.
소삿날 같기도 한,
?
2014.04.15.
우울한 날의 기록
사이렌의 붉은 모자이크 신호가 허공에서 파장을 일으키며 기류를 건너
기다란 곡선을 와해하며 버뮤다삼각주차원의 단자에 결집된다.
노면을 미끄러지려는 저항의 매개체와 전도체의 주행에는,
그러한 애향심이 역학의 궤적으로 은유를 내포하고,
지상최대 전자금융의 집합체 나스닥과 다우존스로 외관을 받쳐 세운,
기형의 전자기파기단 속 가상의 매트릭스를 형성하는데,
소켓 속 램프는 기판의 신호수가 되어 발광을 기다리기 마련이듯
스파크로 사라진 필라멘트에 단자는 신호를 추적할 수 없다.
버뮤다에 빠진 사이렌의 음향이 매트릭스에 노이즈로 형성된 것을
플라즈마라 기록해 두고 어커스트로피에 매단다.
고래는 어커스트로피로 포획되기까지 자유롭다.
플랑크톤으로 수확된 외계의 전설을 해수로 음미하며
스파크로 사라진 사이렌의 음막을 퍼뜨려,
물질의 차원이 이를 수 없는 세계에 이르고 있다.
가끔 매트릭스 안 가공의 망간전지에게서 느끼는 향수를
우리는 단지 버뮤다를 비행한 차원으로 말할 뿐,
노면 위 사이렌이 울리면 램프 안 신호를 잃을까 걱정이 돼,
당신 생각으로 하늘 위 붉은 노이즈를 보곤 한다.
어커스트로피에 빨려들 때까지,
나는 왠지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
2014.08.10.
첨삭(수정본)
문장이 만든 지느러미, 미로 속 어딘가의 수중을 지난다.
습자지로 라이닝 된 순수의 세계를 천장갈퀴로 발髮을 핥아내고,
고공비행의 행적을 인버트 해 개면한 아가리로 유장한다.
가령,
해류를 관통하는 환침의 집단이 수맥에 유관한 아가리에 잠영했다든지
평야를 횡단하는 무리가 맹금의 살殺로 잠류하였다든지
또는,
지관의 기슭 안 능선을 잇는 음경이 산혈을 열고 있다든지
극지를 관통한 자전축이 행성의 궤적을 누르고 있다든지
......하는 따위의,
심해의 침강한, 봉로의 맥을 걷는 나선으로 문장의 갈퀴를 뉘인다.
첨삭이 눕는 시간이 인버트 되고,
순수는 다시금, 하늘가를 유영하는 낙엽장이 되어 지느러미를
바람막에 비틀고 있다.
첨삭된 시 한편 문장의 미로를 지나며
아가리별 유성으로 지나겠다.
2014.10.24.
첨삭(원본)
해류를 관통하는 환침의 집단은 수맥에 유관한 아가리에서 유장된다.
지관의 음경 안 기슭은 그러한 장엄이 산간자락을 능지로 잇는다.
평야를 횡단하는 무리가 아가리에 잠영되는 순간, 그 또한 대순환의 일부분이다.
고공낙하를 즐기는 행간에서 이탈한 비루의 첨삭을 예시한 전례에 따라
시단의 유적에 지릴 것은 첨삭으로 이관된 투신이랄까!
거대한 구강 속은 음미와 분해가 공존하는 동화의 환관이다.
툰드라의 극저온에서 발기한 봉로가 압착된 허공의 비명이었든,
그것은 백야에 몰아친 질곡의 유성이겠다.
아가리가 삼킨 수많은 첨삭에서 하루가 나선의 맥에 눕는다.
가만히 눈감으면 내 입안에도 맥의 침강이 느껴지겠다.
2014.10.15.
`해의 혀가 핥고 지난 단풍은 붉게 울어야 했다. 바닥에 잘려진 붉은 손모가지를 바람이 끌고 가는`
엽지葉紙에 바랜 혈흔은 해의 혀가 핥고 지난 붉은 행적이다.
행적에 쓰여 진 가을의 손모가지는 순번 없이 떨어져 바람이 물어가거나
기압골이 센 모퉁이 지대의 부적토로 유기되었다.
그러면 지반은 천장반구에서 쏟아낸 시퍼런 눈물로 붉은 물줄기를 이뤄
가을빛 풍작을 고하기 시작하고.
간조 때 마냥 볕의 부종이 빠진 어둠으로
붉은 밤은 해 뒤편의 벽을 `해가 달 타듯` 담쟁이 손을 뻗쳐야만 했다.
그래서 해풍으로 쓰여 진 해조류 조염의 맛은
바다를 풍미한 종種의 염사鹽死체 눈물로 읽는다.
그 눈물의 결정은 별을 닮아 모조리 슬프고 염습하다.
달의 개기월식이 벽보로 그려진다.
별과 별사이 성운의 벽보로 안착되기까지 물안개를 긷는 억만년 된 일출과,
그보다 오래되어 엽지흔에 설은 여명의 입김이, 내 아버지 팔뚝의 대동맥류를 타듯
일만 일천 봉峰 삼천리를 넘실대는 것이었다.
바다는 별세계에 닿아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빛마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최후가 캔버스에 그려질 때마다
눈물에게서 조염의 맛을 느껴야 한다.
요컨대 해는 불멸이 아닌 끊임없는 유해로 오는 게 아니겠는가.
별과 별사이 늘어진 캔버스 어느 여백으로 유해들은 쌓이고,
퇴적층 맨 하단으로 단풍의 부적물이 산재하였다는 구전口傳은
이제 곧 빛의 장막너머 해벽에 새겨지리니.
나는 그 행적을 노래하고 유유히 가련다.
2014.11.18.
Moving Shot
이봐요, 잠깐 거기에서 한 줄 건너띄우기 해봐요.
아니면 그냥 한 단어붙이기 해봐요. 밑줄, 탈락이나 요약으로 의미 따윈 잊어버려요.
영웅본색영화가 생각나요, 이쑤시개는 카타르시스의 찌꺼기와 같아요.
거봐요, 액션느와르가 무너진 심의된 등급은 검열성 경고 같은 거잖아요.
에로틱을 꿈꿔 온 사춘기 장르는 발화되고 유약발린 난센스가 깔렸어요.
캐리커처시체들이 뒹구는 아기자기한 각색연기 뒤에 오는 스크린 핀(fin) 필름.
우리가 목도한 일종의 동의이거나 동조에는 일말의 결핍성 장애가 있었던 거예요.
마치 그것은 통조림 캔으로 키핑(keeping)된 유통구조사이를 오가는 거래와 같아요.
콜라보레이션이 뭔지 아세요?
당신이 선택한 것은 이미 도태의 전말을 전제하여 전개되는 거라 믿어요.
인간성이 결여된 사회를 떠올려보세요. 주윤발은 이제 진짜 연기를 보여주려나 봐요.
홍콩은 얼마동안만 영국령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는 맙시다.
뇌수를 파먹는 기생충은 사상이 아니라 바로 정부정책이거든요.
콜트, 스미스, 매그넘, 리볼버... 아무거나. 단,
리볼버라면 러시안룰렛이 가능하겠네요. 권리,
장전이 끝났는지 모르겠군요.
법과 정의는 늘 책장 속에 함께 잠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간혹 또는 자주 들추어진답니다.
정의가 없이도 법은 책장에서 걸어 나오곤 하는데,
누구랄 것도 없이 소모품으로 인쇄된 법전의 한 페이지를 이길 수는 없잖겠어요.
롤링이거나 전락을 츄잉껌으로 대리만족한,
우리는 캐리커처시체들인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이미 Government에 길들여진 小콜라보레이션이자 인텔리에 굴복한 유닛의 일종이었습니다만.
2014.11.08.
흙 어
그녀는 미지의 고혹한 색감에서부터 발원된 사람처럼
어떤 버릇된 말의 어감과 유사한 색채를 연상하게 이끌곤 했었는데
`대기층의 불안에 의한 지연이었다거나 교통량의 증가로 인한 정체는
외부로부터의 마비랄 수 있고, 또한 마취의 색상과는 동족이라 하겠다.`
정체모를 낯선 착시현상이었다가 바깥 테두리의 모서리잔영으로 귀착하는
그녀가 지닌 색상은 관능의 최면으로 뭉뚱그려진 황홀경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는 이를테면, 레드의 경계에서 벙긋한 모양새의 입술로
붉은 심장의 협곡사이 하늬바람을 끄집어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오래 전 죽은 기억 속 뱃사람의 소맷단까지 가 보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었다.
`어장語場에는 어색語色의 여러 갈래가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나는데
어원어족 어신어체語神語體 어미어말 어감어휘 어사어용語事語用 어출어귀語出語歸 등으로 분별하겠다.`
그러한 레드홀릭에는 아틀란티스의 고요한 수중세계를 헤엄치는
몽환의 지느러미가 있었다.
그녀의 어휘가 빠져나오는 촉수에는 미지로부터 불시착한 노스탤지어가 있었고
그것은 서랍 속 앨범의 사진보다 협곡 깊은 곳까지 이르게 했었다.
`밤하늘의 별을 등기로 부칠 수 있다면 나는 아마도
겉봉의 수취인란에 아틀란티스 어느 거리 지명의 레드홀릭 앞이라 쓰겠다.`
그리하여 내일은 오지 않고 오늘처럼 하늬바람을 기다리게 된다면
p.s.
`내가 밟고 가는 어휘의 바닥은 황홀하여 이를 데가 없었다.`
내 생의 막다른 페이지에 닿아 주저하는 경우라면
기억 한 켠 접어둔 황홀한 어휘는 당신께 드리고 싶겠다.
여기 시간은 불분명하고,
나는 레드의 동족이 깔린 지대 위를 거침없이 밟고,
또,
.
.
.
2014.11.14.
볼륨 한 가운데 떠있었다.
너륵배 한 척 휘어가는 찬 빛에 걸렸다. 시간이 걸려 넘어진 밤하늘 기슭은 어휘영청 달고픈 잠영 속에 투신하였다.
비막飛膜이 뭍으로 올라 신전나무에 견갑을 칠하며 백야에 연을 날리자, 백야연 달만이 제 길을 알고 가던가.
나뭇가지, 여느 여분의 가지 끝 조감도에 배 따라 떠나는 야경 속 설원은 아궁이장작너머처럼 달빛 재를 깔고
살구 빛 보조개 파인 새색시 두 뺨 위의 연지곤지가 되기도 하였다가, 또는 부러진 바람가지와 같이
이 빠진 막사발 색동유약 입혀 보낸 송장이 되기도 했던, 타는 가슴마디 곁가지에 여무른 달만이 길을 지쳤던가.
하늘땅, 땅하늘 바닥까지 뿌리가 달 맺혔다. 가만히 흔들어보면 심장가까이 열린 것을 이제야 아는,
강바닥 물주름살이 짙은 수면에 유속은 고요하겠다, 달이 차자, 달찬다.
물푸레 물안개 몇 억만 개의 천년부귀영화가 흥망성쇠하면 연무를 돌아나가 달 바람맞나.
기연이라 했다, 그런 날은 기연의 기일이라 했겠다.
아궁이장작불이 사그라지듯 무인지대의 적막이 잔재로 산화된다, 달의 길이 묻힌다.
곧, 백야연 비막이 내리려나한다.
나는 달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 새처럼 수면을 떠돌고 있었다.
또는 달 가지에서 흩날려진 분진으로 (조각된)
형체 없는 너륵배가 되어 볼륨 위를 떠도는 꿈에 있었다.
2015.01.14.
말초신경으로 교감이 교차된 교각사이,
문형文型은 의문이었다.
레고블록이 겹친 창고를 열었을 때 견고한 고립은 외부로 노출된다. 일련번호로 규격화된 통제에서
유기적으로 시스템을 탐닉하는 정교한 작업에 공기압으로 변형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석유화합물로
밑바탕이 도배된 이상한 세계에서 `나는 망간의 껌딱지처럼 회로기판에 있으면서 전자이거나` 간혹
단파주파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용접기술자에게서 아세틸렌불꽃 튀기는 방법을 가져와 봉합되고 싶어 했다.
플랑크톤은 그렇게 죽어갔기 때문으로,
시그널이 팽창한 곳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만나야 한다.
일원적 교차에서 벗어난 신비의 물약들은 선창벌레만큼 오랜 연혁의 기포를 발산하였나.
갑각류의 짠 거품에서 양서류나 파충류의 음역에서 미끄러진 체액에, 늪의 연보라 했다. 자기장의 증발증류 궤적처럼,
나는 어떤 하나의 아지랑이가 되어 불꽃으로 산화한 `지구가까이 근접한 달에게서 뚜렷한 형체로 흉 진 크레이터를 보았을 때`,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공기압이 회전하여 찍은 스탬프가 달세계에 있었고 RPM은 떨어졌다, 정지하였거나 자유낙하를 즐겼다.
전압이 떨어진 전류에 부하가 걸려 죽은,
시너지효과라 했다. 그리고 나는......
아킬레스를 유압이라 썼다. 유류화 된 세계에 흉터 진,
누군가 짜 맞춰 놓은 통제에 규격이 유통되는 사이,
문형은 의문으로 남았다. 나는 문형을 의문으로 남겨두려, 전개한 서식을 낱장으로 말아 올린
`클립에서 압사를 생각하다` 지긋이 의문이 관통한 핀에 `장미가시에 찔려죽은` 릴케를 그렸다.
세상과 맞짱을 뜨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라는
달세계 흉터를 올려다봤다.
`지구라는 궤적은 아픈 것이구나.`
2015.01.17.
동학계엄
하구언 포구 철새무리에서 연착한 부리달린 어느 집시 새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국조기간산업인 건설 붐이 일어나던 시기와 일맥상통하였던바,
바지선이 골재채취를 위해 오지를 탐사하고 다니던 무렵 즈음이라 하겠다.
부리달린 집시조류가 조류학계의 도감으로 편찬되고 예비조류학사 필독항목으로 열람되기까지
불굴의 집념과 노력으로 헌신한 선구자들을 기리며 업적을 추앙해 약소하나마 그들의 공로를 기린다.
지맥강천 유구히 세월바랜 바람니에 뜯겨 날아간 학술지 전면의 도감은
집시 새 도래지 기념비로 건립되어 포구 전문에 일부 쓰여 있겠다.
집시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집시 새는 철새로 분류하지 않고 천연물이나 희귀종이라 쓴다.
(이것은 멸종위기종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로써 해석한다.)
무리를 짓지 않기에 신출귀몰하며 집시 새 도래지를 조성하여 둔 것은 신전처럼 유적지로 활용하여,
집시 새 발굴의 시초와 연계-행성바깥의 혜성처럼 주기성을 지닌- 연구 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겠다.
과 항은 불가사의라 되어있다.
부리는 부엉이과처럼 짧고 갈고리모양을 하고 있어 맹금류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몸집에 비해 비대한 조족과 발톱은 하얗다.
몸집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발표되지 않았고 단지 깃털이 까마귀과에 흡사하여 까맣고
반청의 반점문양 날개와 꽁지가 있으며, 무엇보다 특이하게 관찰된 것은
눈가 눈썹이 몸길이보다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집시 새의 비행이 신비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천조새라 했다, 나는 천우조라 했겠다.
(신전 유적지에 그루터기마냥 서있겠는가.)
민족의 긍지를 드세웠던 고구려의 기상, 그 뿌리를 휘날리며 한반도를 종횡하고 드넓은 연해주와 만주까지 갈 것이라 했다.
`집시계보가 뚜렷한 반도의 용혈관문을 직통하여 천문이 열리는 날 오면 개벽의 신세계로 가는 노래 부른다`
(만파식적의 청명한 대 우는 소리, 집시 구관으로 뻗쳤으리라.)
새가 오기엔 아직, 세상은 가물지 않았다.
이무기와 근친인 도롱뇽과 파벌직속 호환의 무리, 그 집단이 난사한 사생아들만큼 가득 찬 풍문 속에,
감개무량한 세월은 무미건조할 뿐으로.
`갈망`이라 중얼거려 본다, 주술처럼 갈망이 가문다.
하단에 첨부 된 주석을 보면, 집시 새를 관찰하기 좋은 날에 관한 일종의 조언이 가미되어 있었다.
(전설로 내려오는 구연동화처럼 징조를 적고 있다.)
혼돈과 불안으로 생장의 기근이 든 땅에 천조를 갈망하면,
용마루 위 천적, 이무기를 타파하라는 계시로 온다고 되어 있다.
당신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민족혼이 서려있음을 잊지 말라, 당부하였다.
2015.01.18.
메이드 인 #
부제 : 샤프트shaft 쉬프트shift, 쉬프트shift 숍(#)
벌크트레일러가 헤드기어를 벗어던진 오후였다. 타르를 선회한 스퀴즈는 아스콘 밥을 짓고 아슬한 절벽 위 유증기로 머플러를 돌아나가는 중이었다.
쉬프트에 크랭크를 물고 돌아가던 실린더에서 핏빛 오일이 흘렀다. 벤젠이나 크레졸을 삼킨 탱크로리를 `중독`시킨 트래킹 타이어는 떠다니는 발칸반도로 읽었다. 그런 날은 금형제조사를 찾아가 `메이드 인`을 금속에 프레싱하게 된다. 프레온가스는 스프레이나 버너, 냉장고 따위의 저장고에서 벗어나 오존에
스퀴즈마킹을 하고 어떤 `메이드 인`을 프레싱하리라. 핏빛이 폴라로이드에서 프린팅 하여지고 코팅된 `중독`을 유리온실에 전시하는 유전의 딜레마.
혹자는 중동 아이들을 위해 살상무기로 인한 참극을 찍었고 `메이드 인`으로 된 살인의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쳤다. 귀에는 이명처럼 벌이 날아다녔다.
샤프트 피스를 말하고 쉬프트 피스를 오인 사격하고 다니는 `메이드 인` 대륙은 간편한 프레온가스처럼 실용적이다, 죽음을 프레싱하고.
오존의 빛깔이 드레싱 된 칵테일 속 우산요지가 극적으로 흔들렸다, 변태된 닉 앞에 선어미로 아이러니를 펼치고서.
마로니에가 부른 `칵테일 사랑`이 스마트폰으로 링크 된 버스를 타고 싶었다. 팬케잌처럼 돌아가는 레코드나 축음기의 트랙은 그만 잊고 싶을 테니.
나는 오일쇼크의 베이비붐세대가 쉬프트 피스에 피스톨로 유격한 칵테일을 마셨다, 버스는 어차피 오지 않을 텐데 말이다.
바숍barshop에서 바텐더가 시연한 그림자저글링을 보았을 때, 나는 샤프트와 쉬프트와 벌크트레일러를 가지고 마로니에가 부른 `칵테일 사랑` 노래 속으로 떠나는 버스 안을 꿈꾸었다. 가사 속 `모차르트 피아노 연주곡 21번`이란 노래구간이 트래킹되어 숍에 담긴다.
릴리즈 된 `메이드 인`이 떠나고 `샤프트 쉬프트, 쉬프트 샤프트`라고 중얼거려 보았다.
2015.01.21.
큐브채널
그러한 프로세싱은 일종의 사이클을 가정한다.
터치스크린 자막에 패턴을 스킨으로 접촉하는 코드삽입. 스마트한 플러그 안에서 `코발트블루시안`이란 스페이스에 로프를 내리고 후크로 고정된 버클을 감았다, 디스크셋업이었거나 동기화 된 백업으로 리셋 된 해저드에 프로그램을 업로드 한,
그녀는 코발트블루시안의 프로젝트파일로 저장되고 해저드의 해치를 로딩 한 로프에 몸을 맡겨 일련의 작업으로 암호화된다.
스크린 속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내벽에는 코발트블루시안의 세계로 이어진 채널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녀와 `플러그인` 된 장소에서 큐브를 완성해가는 해저드의 해치를 공유하였다. 큐브가 소스로 된 톱니에 의해 한 채널 앞을 지난다.
해저드는 자가공명을 통해 메모리에 저장하거나 데이터피이스를 삭제하였다. 채널은 서모스탯으로 해저드를 기웃거리고,
우리가 `플러그아웃` 된 세계에는 이를테면,
그녀의 목 줄기로부터 코발트블루시안으로 흐르는 계곡이 있었다. 혀의 로프보다 주로 입김을 채널로 썼다.
해저드는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고, 나는 단지 해저드의 해치를 가끔씩 열기위해 큐브를 사야만 했다.
코발트블루시안의 바닥에는 오래 전의 내가 있고 내가 앞서 지난 채널도 있으며 서모스탯으로 아픈 아이도 있었겠다. 가끔 서편의 밤하늘에 뜬 달이 빗겨가는 허공의 구름 땅을 바닥으로 삼아 내려오듯,
바닥으로 써내려오는 동안에도,
구름 땅을 밟고 가는 코발트블루시안은 아프다고 울지 않았다. 다만 사이클은 큐브에서 가정하였다, 해저드를 기웃거리며.
2015.01.25.
19번지 누드크로키
여자는 손빗으로 머릿결을 만지듯 `사이즈`라는 말을 올려놓고 커서에서 배경이 되었다.
별들은 사실 깜박거리지 않고 타오른다.
눈꺼풀에 낀 얼룩이 바깥시선으로만 동심원을 그렸듯 초점이 되지는 않았다.
안개로 얼룩진 시가지가 낱장으로 뜯긴다.
빈지에 번지는 잉크처럼 담요 속은 `태기마態騎馬`와 점성이 되어 천장을 헤엄치곤 했다.
수면에서 바람이 해를 말리듯 별빛을 타고 내려온 시간이 젖는다.
여자의 입술은 젖은 시가지를 배회하다가 윗니에 뜯겨 19번지 산으로 갔다.
눈 덮인 정상으로 묻히기까지 여자는 커서 앞 `사이즈`로 점성이 된다.
`태기마`를 타고 동심원이 되고 싶은 안개에서 여자의 입술이 젖은 시가지를 지났다.
귓가 안개를 탐닉하는 담요 속 `태기마`를 탄 해의 소리가 번진다. 그런 날은,
산꼭대기에 오른 19번지 능선 어느 천장에 해의 유해로 `사이즈`가 뿌려진다.
나는 말없이 안개가 떠난 바깥시선으로 여자 곁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초점이 야릇하게 커서에서 배경이 되어갔다.
2015.01.28.
누드크로키
낡아간다, 낡은 것이 들어 찬
닳고 헤진 종種의 기슭에는 안개 깃으로 말린 부력도 있겠고 누에고치가 밀랍을 먹고 뱉은
솜사탕의 오래 된 포자도 있었겠는데, 삼각주 모래톱 물가를 본적삼은 큰머리독수리가
고요한 탁족에 밟혀 흘러든바, 물그림자로 종주한 이녁물때에는 닿지 않았다.
초점으로부터 소실점까지 내밀해진 용적을 살갗으로 비벼서 개고, 비개고.
이따금씩 갇혔던 유배지의 전희는 스크루에 달려나 밀항하였다.
골수에는 표류하던 항로와 선체들로 캄캄하다. 침몰하기까지 떠다니는 뭍으로,
하늘가까지 융단을 펼친 너울성파고 잎맥에서 슬려나가 낙과落果로 진다.
밀항으로 인쇄된 그림엽서가 일으킨 물보라에서 바다로 된 하늘은 구름 섬에 닿았다.
수몰지 집터를 기웃거리며 지번이나 우편함번지를 읽는 물밑 유속이 침선에 오른다,
뭍이 꺼진 과일의 향은 아스라이 슬려 진 산호를 닮았다.
여자는 인류가 침몰 전에 뭍으로 끌어올린 섬이라, 밀항한 전희로 말한다.
그녀는 이따금씩 동공의 수정체였다가 각막 앞 렌즈에서 펼쳐지곤 했다.
어둠이 밀려난 원주에서 피사체의 빛으로 종주하다가 화이트아웃 된,
안개를 그릴에서 구워만든 해질녘은 아름다운 어둠이 되기도 하겠다.
우리의 초점은 그런 필름으로 이어붙이기 한 소실점으로 되어있다.
바다의 뭍에서 뭍으로 된,
또는 섬이었다거나 집터 같은...
점선으로 커팅 된 롤링휴지의 칸칸이 전희를 분담하고, 종주한 해갈을 기다린다.
입김에서 식은 안개를 티슈로 말렸듯, 바람에 떠는 전희의 혀처럼 롤링휴지면 허공을 세운다.
어둠이 닦인 후에도 아침은 새벽을 낱낱이 뜯지 못했다.
여자는 전희로 된 새벽안개로 섬까지 흘러가 뭍에 닿을 것을 스스로 안다, 하였다.
2015.01.31.
낙엽체로 쓴 불씨
몇 몇의 성냥개비 화력이 허공을 긋고 마지막 생장의 무게를 긁고 있다.
모세관처럼 뻗어난 나무-ㅅ새의 아귀 낱장으로 `헐거워지는 끝까지` 가학을 쥐고서,
천상여독 하였으매 최초의 낙엽은 `고독의 불씨`가 되었다.
행여 불을 절개하면 생애 찬란했던 외로움에 대한 몇 음절 고독이 재로 남을까.
불씨가 되어 타드는 가슴으로 허허롭게 바람 놀던 자리 나무-ㅅ새에 찔려 붉읏다.
오랜 `묵음 끝`을 돌아나가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굴레`라 쓰지 않을 텐데!)
나무불티만한 꿈에서 나는 어느 새 잠이 들고,
“낙상한 마른 잎 새로 파고드는
우수를 안고 떠는 바람
뇌우로 마른 어둠을 부여잡고
마지못해 빈 가슴에 길을 내는
플라타너스만의 일대종사一大從事“
“불의 문을 열고 무수히 떨어져야 하는 굴레
가벼운 불씨를 물고 잠깐의 불새로 날다
미련 없이 어둠을 덮고 고독이 되는 사연
낙엽의 숙명이라 말할까“
가없이 맴돌던 플라타너스 나무-ㅅ새 바람을 타고
시지프스의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마땅히 제 자리를 안다는 듯.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늦가을 앙상해진 플라타너스가 되어 봄을 기다려야할 것을 알았다.
2015.02.06.
곁
부제 :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 1,600km의 행군이 끝나면 우리는 집으로 갈 것이다.
종단과 횡단은 잠재된 본능이었다. 탯줄을 끊고 스스로 땅에 서던 때부터 종족의 후예로써
기후와 토양으로 배양된 피륙이 자라고 수놈이라면 사명처럼 각角을 세울 줄 알았다.
각을 받쳐 세우고 하늘을 이는 것은 `이듬해에도 꿋꿋이 땅을 밟으리라`는 자존의 의지이다.
지각이 변하고 세태가 범람하여 해거름이 서식지를 유린하면, 대이동이 시작된다.
석양으로 기운 어둠을 깎아내기 위해 종일토록 독가시와 유황으로 단련하였나.
광휘를 삶아 구슬을 끼운 듯 황야를 내치는 원안圓眼은 황홀한 늪에 닿아있다.
캄캄한 골목에 도사리고 있는 기류를 돌아나간 바람처럼 높은 곳으로 튀어오를지니.
그 하루를 보전한 해묵은 시간들이 낭떠러지를 미끄러지고 있다. 암수구분도 없이,
누 떼나 가젤무리를 무차별 집어삼키던 악어강도 아닌 사각구릉에서 전락하는 무리들.
평원과 평야를 거침없이 질주한 뒷다리와 절벽을 타던 앞다리가 있건만 발은 허공을 날지 못하지.
우리는 집으로 향해 가는 것을 사명이라 하고 종단과 횡단을 숙명으로 받았다.
하늘을 나는 종족일지라도 허공 위 낭떠러지를 가지매 누구도 시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대신 수놈이라면 뿔을 받쳐 세우고 절판에도 길을 낼 것이다.
뿔은 하늘을 이고 절망으로부터 세상을 건져올릴 것이므로,
힘차게 튀어오를 후세를 위해 스스로 머리를 박고 분노하여라.
곁을 지켜내는 온기가 나의 집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뿔이 돋아난 이유였을지니,
그 끝내 절판은 절망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한 곁이어라.
우리는 왜 스스로 뿔을 박고 (어둠에) 분노하지 않는가.
2015.02.07.
10시의 여자와 20시의 여자, 그리고 열한 번째 마찰
여자는 매시간 아라비아산 올리브가 된다. 역사驛舍의 플랫폼으로 나서는 여자라면 발착지가 아라비아임을 아는 것이다.
10시에 정차한 기차는 십분 후 객차 문을 봉합하고 행선지로 이동하겠는데 대략 여분의 일분이 더 소요된다. 다음 역을
경유하더라도 이러한 행태는 반복 순환하게끔 유도된 유기적 고리의 결속으로 `전리傳理`하여있다. 머리에 이고 있는 히잡
이 풀어지며 열차가 암영을 뚫고나간 레일 위로 물고기꼬리를 늘어뜨려 허공을 헤엄치는 형상이 된다. 물속은 허공을 누빈
비단물고기가 돌아갈 곳도 아닐 진데, 지느러미는 이미 유속을 타고 부레관은 자유롭겠다. 올리브유油 동이가 누르는 히잡
아래 아라비아는 척박한 기후와 토양에 `할례`의 물 부대끼는 소리가 났으므로 베일은 감금당한 꿈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
아낙은 아라비아의 올리브유油가 되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가, 세계로 나가는 지중해에 든 표정의 눈망울로 세상을 보
는 것이니까. 올리브는 수세기동안 히잡에다 강을 냈고 세헤라자데의 구술口述 속을 흐르기도 했을 테니, 그 얼마나 빼곡이
들어찬 농밀한 시간이련가. 올리브로 된 시간이 기차를 타고 플랫폼을 부대끼며 너울이 되었다. 히랍에서 동이 찬 기적이
부러져 아랍에 담기고서야 밀랍의 비누거품으로 가벼워지는 관습이 있다. 10시의 여자가 떠난 역사대합실은 지중해만을 옮
겨다 놓은 듯 터번을 쓴 무리가 향신료와 비단, 노예와 섞여 혼잡을 이루었다. 상공인들은 주로 티켓을 발매하고 화폐로 된
주화를 타국상인과 거래하여 환전차익으로 수익을 남겼으며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통역까지 선임한 모습이었다. 안
개처럼 희뿌연 물비늘에서 각질로 벗겨지듯 그 모습은 전시풍 화양에 배겨 그림으로 남았다. 일찍 도착한 아낙이후 20시에
대합실로 들어설 여자는 그림 속 풍경을 빠져나와 다시금, 예정된 열차에 오르려고 플랫폼으로 나올 것이다.
다시 아라비아산 올리브를 표방하여 여자가 등 칸에 오르려고 한다. 여자는 고대로부터 이어내려 온 히랍을 둘렀겠지만
아라비아가 담긴 동이를 이고 있지 않다. 그녀는 발착지가 불분명한 열차를 타고 예정에 없는 종착역을 가는 것이므로, 눈
동자에는 어둠이 똬리를 틀고 방울뱀소리로 섬직하였다. 불과 수세기 이후의 시간은 아낙의 머리에 무엇을 이게 한 것인가.
플랫폼이 육중한 축에 흔들려지고 수족관의 누수에 젖은 듯 베일이 레일 아래로 새었다. 불꽃은 사그러들지 않고 성전높이
오를 것처럼 사방으로 뻗치었겠다. 20시의 시간에 여자는 관습을 기차에 태우고 스스로 폭약이 되어 물속에 침전하였다.
올리브향이 짙게 역사 주변으로 퍼졌겠는데, 대합실 화양에선 향신료와 인파로 붐비는 냄새가 그림에 있었다. 열두 번째만
의 결심과 열한 번째 의지에서 여자는 히랍을 벗고 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올리브는 더 이상 아라비아에서 지중해를 꿈꾸지 않았다. 지금의 아낙은 스스로 터번을 쓰고 히랍을 태워버릴 것이므로.
2015.02.08.
뱅, 뱅뱅...
그니까 긁어 부스러진 해질녘 일조량이 차광 발髮에 관절을 걸치고 에두른 섶에, 마른 파열음을 다는
썩정이나 아궁이 갱에 젖은 죽통이 오그라지는 산발이란
경대승님의 댓글

부제 : 기시감
시혼
詩魂
절명한 산무더기 가라앉아 하늘걸이 절벽층층에 고갯마루 주검들을 쌓아
묏등은 에메랄드빛 가람을 흔들어 바람의 명치에 구름 갈기를 새길 새
조망을 운구하여 해어름 장의사절단 사방경첩 놋쇠로 장지못 채워 사방기둥을 심는
지관地觀이 풍수風水를 독려하여 입관을 부루 져 기슭에 매이고저
객사한 역술을 무등 태운 상여 꽃가마 불쏘시개와 노닐 적이라
양각으로 새겨진 음양에 불의 인두 놓자면 부음이 결맹을 앓고
머리숱 가마의 소용돌이 치센 곱사등 아양을 휘장 내걸고 간, 저음의 가락몰이로
산구들 따숩게 비문碑文을 열람하는 문지방에도 아치가 징 박혔으리니.
`언 세월 에둘러 방죽으로 소꼴 치러 간 목동아
물 쐐기 풀고 망아지꼬리 붙들어 놈팡지게 노닐려
부뚜막 검장을 이마에 매고, 시큼해진 비지땀 까까묵고
망태기에 삘기를 한 아름 동무하고 가누나`
-부고
고장에는 요람의 오솔길이 목 언저리를 누볐다가 고갯바랑 흙먼지로 고비 재를 갔다.
토질에 사그라진 혼백으로 `령靈`이 되는 누대 속 산울림,
고방문을 열면 진열장 신위 신주神主가 거적자리 비탈지게 쏟아지읏고,
장군통 그늘장처럼 습윤해진 곰팡내 비옥하겠으니 구더기와 공벌레가 한데 살러 와,
이와 좀이 낀 손톱 새 비듬처럼 바구미는 `령靈`을 토렴하게 된 허울이련가,
한恨 많은 여인네의 손톱은 왠지 늪지에 퍼진 물안개와 같았으므로(눈물의 허울이어라).
령의 뿌리가 음각을 삼투해 물레로 안개를 감는다, 한 서린 망울 혼절한 세월풍파랴.
발그레 휘어진 오후 볕이 피난 나온 듯 낡고 허름한 곳간 앞에 기댄다.
자물쇠로 지른 숟갈임자 물끄러미 이 켠 바라보다, 오래도록 서성이겠다.
`산이 주저앉아 절벽이 되고,
절벽이 녹아내려 늪이 되듯
여인의 한이란 안개에 남긴 손톱자국 물레질 되누나`
시詩의 수절은 정절을 지킨 여인네와 같아 그 품행을 무명無名이라 한다.
2015.03.11.
경대승님의 댓글

봄
이 세상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봄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싶다.
안녕, 봄아 싱그러운 살내음이 좋구나.
기나한 씨앗의 내부를 관통하는 미로에서 만난 사이처럼 우리 앳되기로 해. 모낭에 고인 물소리와 내장 속 융모의 태고 적 어간이 닮았지. 뼈를 발라낸 봄이 형체 없는 가루가 되었을지라도 불변의 어원을 향해 가야 하는 거야,
조카 준호를 사랑하는 방식은 새싹이 봄을 찾아가는 거룩한 어순,
미로에서 만난 다섯 살의 형과 아버지, 그 보다 더 일찍 봄이 된 선조와 싱그러운 계보,
애순을 맞는 봄마중 티 없는 조카의 얼굴이다.
봄,
봄아,
사뿐히 미끄러져 내린 줄기의 봄처녀와 사랑하고 싶다, 허릿단처럼 바람굽이 휘어진 황홀한 곡선이 물살을 재우듯 잔잔한 하류삼각주에 이르고 싶어라.
기나한 바깥은 유리병주둥이의 평사면 위에서 만나지 않고 한없이 종주하는 일. 세상 모든 햇빛과 달빛, 총총한 별빛마저 담겼었지만 생애 단 한 번도 구하지 못한 봄빛은,
봄처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나비가 꽃물에 발을 적시는 날갯짓,
푸른 지구가 어두운 우주의 꽃밭을 떠다닐 수 있는 원론적 모티브,
내가 별의 삼각주를 지구라 했을 때 외롭고 따스한 봄은...
봄은,
봄은,
기울인 잔의 향취처럼,
봄,
봄,
또 다시 봄,
봄이여.
2016.02.12.
감전사
감압된 마스카라 코일 속 눈썹가지를 흔드는 새들의 소리가 유성흔에서 마른다.
펜촉을 그으면 여백으로 추락하는 몇 만 피트에서의 낙뢰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의 눈동자는 육안에 닿은 적 없는 세기 전의 상공에서 퍼덕이곤 하겠다. 그러한 뇌전의 간극을 떠돌다 왔을 촉구에 불이 켜지는 눈 안, 스위치단추 깨진 깊숙이 아우성은 밝아지고 천 길 낭떠러지, 번개를 닻 내린 물결 속 난간을 돌아나가도 돼. 세월로도 묻지 못한 절대의 고요가 격렬한 몸짓으로 승천하는 걸 보게 될 테니, 아마 그런 불면으로 지샌 변고라야.
서슬 퍼런 삼백넷 가닥으로 꼬아 만든 고압선은 첩첩한 암연, 위를 벼락처럼 지날 테야, 극빈한 원시의 순화의식으로 새들의 울음소리 들리겠는데, 아비규환 속을 지났던 유성일리 없잖아, 궁금해져. 당신은 얼마짜리 마스카라를 쓰고 있나?
엄마가 된 여자와 엄마나이의 여자 그리고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한 엄마나이의 여자, 무심결은 잠결처럼 혼란과 혼돈의 도가니 그리고 환생을 아는 환한 절망, 몰아치는 펜의 유성우.
세계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캄캄한, 부화되기 전 새들은 떠나가지.
펜촉을 세웠던 곳에서부터 시작 된 몇 만 피트에서의 추락, 세월이 뇌우마저 삼키고 벼락을 모르는 암연은, 짙어진 새.
가닥가닥 아픈, 펜에 힘을 실어 애써 부러뜨리면, 유성흔처럼 번지는 촉의 잉크 그리고 부화되기 전 기억하는 천둥과, 같은 소리,
멀거나 머어언.
2016.02.12.
소문
불 켜진 전구가 삼켰던 어둠이 카트리지에서 새었을 때
바삭한 어둠을 비스킷으로 으깨려는 침하한 정적이 꼬아진 주화로 투입되고,
냄비가 차오르는 온도만큼 밀랍으로 굳은
시간의 소음을 데우려면 지구만한 고요가 필요한지 몰라.
입안의 이물감은 잡음이 섞인 듯 볼륨을 낮추는 거야,
흙 속의 지렁이가 배설한 땅거미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그런 건 아주 낮게 미끄러졌을 부력을 껍질로 벗기는 걸 거야,
지렁이가 뜨거운 애무의 방식으로 지구크기보다 더 많이 삼킨 거미
차오르지 않는 경계에서 기생하는,
손닿지 않고 내 곁인 듯 등을 바치는 뒷그림자.
볼륨을 낮추는 거야,
한 번도 데워지지 않은 입안의 땅거미는 하얗고.
미끄러지는 불빛사이로 어딘가 떠다니는 눈가의 이물감.
뒤의 곁으로 엉킨 등, 지렁이, 비옥한 어둠과,
인쇄 전 켜지는 램프
201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