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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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 끈끈이에 들러붙은 바퀴벌레가 버둥거린다 지구에 사람이란 종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런 치사한 속임수를 겪으며 죽어간 바퀴벌레는 없었다 오직, 원시림 속에서 생존의 깨끗한 진검승부만 있었을 뿐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개체의 완성이라 여겨, 6억 5천만년 전에 귀찮은 진화를 멈춘 조상을 원망한다 사람보다 속임수가 높은 간교함으로 진화되었다면, 끈끈이 따윈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싱크대 안 쪽 어둔 곳에 은밀히 낳아둔 알들은 시간 바쁘게 부화할 것이고, 서로 죽이며 자멸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 끝에서 지구의 주인으로 당당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만이 끈적한 죽음을 끌어안은 바퀴벌레의 유일한 위안이다 손짓하는 유혹의 달콤한 통로가, 그 아슬아슬한 틈새가 항상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을, 별것 없어도, 아차 하는 짧은 순간에 한 번 발 잘못디디면 죽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사람들도 살아가다 보면 알 것이다 곧, 시간은 사람들에게도 잔인해질 것이다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들은 서둘러 죽어야 한다" 이건 끈끈이를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끈끈이에 붙어있는 바퀴벌레의 생각이기도 하다 - 안희선
댓글목록
SunnyYanny님의 댓글

양육강식..
생명있는 모든 것들의 생각은 진화되어가겠죠..
머물다 갑니다.
안희선님의 댓글

바퀴벌레..
사람들은 모두 징그러워 하고
세균을 옮기는 매개체라고 해서
모두 박멸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 그들의 그 어떤 간교한 기만도 없는 순수한 생존의지엔
경의를 표합니다
어떤 과학잡지에서 읽은 건데..
바퀴벌레는 한달 이상을 굶어도 생존하고
심지어는 치사량의 방사능 오염에도 살아남는다고
정말, 생존에 관한 한 탁월한 존재라는 생각
결국, 지구에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건
그들이라는
(굳이 환경오염과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죽이며
오늘도 꾸준히 자멸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인간들은
바퀴벌레 앞에 감히 명함도 못내밀)
귀한 걸음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