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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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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야옹이할아버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52회 작성일 17-02-25 05:47

본문

사과 나무엔 사과가 열린다

 

천둥번개가 소낙비와 달리기 경주를 하던 날

배달된 한 통의 편지

마른침 삼키며 개봉 즉슨, 하얀 편지지...

소낙비가 글자를 삼키기라도 한걸까!

천둥이 심장을 치고 저만치 달아난다

이에 질세라 번개가 눈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든다

순간 세상이 하이얗게 변한다

글자 없는 하이얀 백지의 편지 때문일까

어려서 지지리도 잔병치레가 많았던 천성적 약골

그야 녀석의 팔자소관이렸다

입대한 지 얼마 안된 막내 녀석, 그리고 첫편지

텅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니

묘하다!

하얀 편지지에 고개를 처박으면 박을수록

글자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글자는 말을, 말은 사연을 담아낸다

분별이 끊어진 자리에서

녀석이 매를 맞기도 하고 무등을 타기도 한다

입학을 하기도 하고 졸업을 하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밤과 낮, 봄 여름이 묻어난다

일순간 채움의 자리에 비움이 혀를 내민다

다시 글자가 사라지고 말과 사연이 사라진다

 

그랬구나!

백지 편지...

 

30여 년 전 아버님께 보냈던 나의 첫편지

바로 그 편지...

아버진 그 편지를 곱게 간직하셨다가

막내 손주 녀석이 태어나던 날

내손에 가만히 쥐어주셨다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듯이...

 

소낙비에 편지지가 상할세라

백지의 그 편지를

가만히 품에 앉는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손주가 태어나면

다시금 되돌려 줄 선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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