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장 및 감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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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람은 시마을의 규칙과 미풍양속을 단속 보존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음에 위 임명장과 감사패를 수여하는 바이다.
자신의 시의 발전을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시마을의 규칙 확립과 준수를 위하여
그 한 몸 바쳤기에 타외모범이 되어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
특히 지질이도 가난한 주제에,
목구멍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시를 쓰겠다고,
이 신성한 마을에 거지가 들어 와
일주일내 굶었던 시를 한꺼번에 쓰느라
귀한 지면을 더럽힌 자를 엄벌에 처하여
다시는 이 마을을 넘보지 못하게
추방한 공로를 인정하는 바이다.
간다. 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묘지 관리인아.
정말 감사하다.
내가 무슨 되도 않하는 짓거리를 해도
늘 나를 믿어주고, 내 편이 되어 줄거라고 착각했던
정말 100% 1000%로 나의 죄일뿐
죽었다 깨어나도 믿었던 형님의 인품이
내 오랜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해 준 공로를 뭐로 갚아 드려야할지 모를 일이다.
그것은 비열한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모르면 더 나은 말들까지 공개적으로 개시하는 일은
그렇게 규칙을 중요시 여기고 이곳 시마을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기는 자의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이 표면상 100%옳다.
잘못한 것은 나다.
표면상 나는 100% 잘못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대의 행위는 못났다.
그렇게 시를 신성하고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모두 그래 주기를 바라지만
그대가 시를 위해 하는 일이라곤
시가 사는 마을의 공기를 차갑고 경직된 것으로
만드는 일 뿐인 것 같다.
그대는 여기가 나의 놀이터냐고 물었다.
맞다. 때로는 놀이터다.
어떤 날은 예배당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여행지,
또 어떤 날은 친구네 집,
또 어떤 날은 장례식장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나비가 노니는 꽃밭이기도 하다.
내가 시마을을 국군의 날 사열식을 하는
사관학교 마당으로 여기지 않아서
나는 나쁘다.
어떤 어처구니 없는 날은 소줏병을 들고 앉아
이 신성한 마을을 술집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누군가를 열렬히 그리는 불륜의 현장으로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해도 해도 되지 않는 지독한 짝사랑을 토해내는
변기로도 삼았다. (시에게 나는 스토커다)
어떤 날은 사나흘을 커피와 핫식스와 박카스를 마셔가며
글을 채근해도 문장 한 줄이 되지 않는 날이 있고,
어떤 날은 리플이나 달다 가자 싶은데
갑자기 글이 치밀어 올라 세편 네편이 되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규칙을 어기지도 않았다.
시마을의 주민들은 시인가?
나는 결국 이마을의 주민들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동네를 한번 둘러보라.
별의 별 사람들이 별의 별 짓을 하며 살아간다.
그 별의 별 사람들이 별의 별 생각들이 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에 대해 이름 석자와
늘 완장을 차고 자들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한다.
관심도 없다.
당신은 잘못하는 것 하나도 없지만
잘하는 것 역시 아니다.
나는 너무나 잘못했다.
그러나 시가 막걸리 한 잔 할 사람을 고르라면
당신과는 마시지 않을 것 같다.
내 술버릇이 아무리 개판이고 입에 걸레를 물고 있어도
시는 사람과 술을 마시고 싶어 할 것 같다.
누가 사람인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참 사람 좋네하는 소리 많이 들은 사람은
사람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미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 년 저그 사람도 아니야,
사람 근처에도 못갔어 하는 소리를 자주 듣고 사는 사람은
늘 사람을 고민한다.
사람이 아니라니까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이란 무엇인지 누구인지, 나도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사람 근처에 못갔다고 하니까
사람 근처에 가고 싶어서
어디로 가면 사람 근처인가 싶어서 사람을 고민한다.
시는 사람 욕심이 많다.
시는 희망에 가득차고 반듯한 사람만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반듯하고 타외모범이 되는 시민들도 많았지만
외롭고 서럽고, 병들고, 방황하는 아픈 시인들도 참 많았을 것 같다.
나는 나 외에 시 쓰는 사람들을 많이 알지 못해
누가 누가 그랬다고, 당신처럼 자료 긁어다가 말할 재주는 없다.
그러나 시는 사람을 사랑했다.
사람이 지닌 모든 것들을, 침과 똥과 피와 눈물과 미움과 사랑과
애증과 비참과 지리멸렬, 이 모든 것들을 들어주고 받아 주었다.
그래서 시 마을은 꼭 절이나 교회 이거나
규율이 엄격한 가문의 거실일 까닭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디라도 숨고 싶은 죄많은 인생에게는
야반도주한 도시의 여인숙일 수도 있다.
종일 공부만 해서 머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시소 타고 그네타는
놀이터 일 수도 있다.
시 자체도 그렇다.
당신처럼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신일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만만한 친구고
또 어떤 이에게는 욕정이 끓어 오르면 찾아가는 창녀 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짝사랑하는 소녀 일 수도 있다.
왜 그대는 자꾸만 이곳이 놀이터냐고 묻는 것인가?
나는 당신처럼 어떤 증거물들을 수집해둘 시간이 없으나
어떤 시인이 이미지를 올린다고
그 시인에게 이곳은 놀이터가 아니라고,
놀이터여서는 안된다고 또 호각을 불었다.
신성한 예배당이라도 아이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 기도 시간에도
예배당을 뛰어 다닌다.
죄 없는 아이들에게는 예배당이 놀이터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100% 그대가 옳고
그대는 임명장과 감사패를 받아야 한다.
한 껀 올릴 수 있게 나는 이곳을 떠난다.
나는 놀이터도 필요하고, 술집도 필요하고, 데리고 잘 수 있는
창녀도 필요하고, 주일이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성당도 필요하고
담배 한 대 피워물고 앉아 멍 때리다 침 뱉을 수 있는 공터도 필요하다.
시마을이 그대의 말처럼 그렇게 성스럽기만 한
마을이여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도래지 없는 철새가 되어
찢어진 날개를 쉬지도 않고 빈둥빈둥 날아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당신도 나 같은 인간 유형이 싫겠지만
난 진짜 당신같은 인간유형은 두드러기 난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함께 해야하는 이곳을 떠난다.
이것이 나의 감사패다. 잘 살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시제 한번 독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누가 임명장을 받고, 또 감사패를 받았다는 건지.. 궁금하여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글도 있어서
왕서장이 그의 친구 저서(著書)의 서문을
써 주는데 ― 소위 시인이란 것은 음시(吟詩)깨나
한다고 시인이 아니요 가슴속이 탁 터지고 온아한
품격을 가진 이면 일자불식(一字不識)이라도
참 시인일 것이요 , 반대로 성미가 빽빽하고 속취(俗趣)가
분분한 녀석이라면 비록 종일 교문작자(咬文嚼字)를 하고
연편누독(連篇累讀)하는 놈일지라도 시인은 될 수 없다.
시를 배우기 전에 시보다 앞서는 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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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음미吟味 , 그리고 한 생각>
일찌기, 동파(東坡 - 소동파)가 왕유(王維)를 칭송한 중에
마힐(摩詰)의 詩에는 시중유화(詩中有畵)요 , 마힐의 그림에는
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하여 소위 시화일체(詩畵一切)의
상승임을 말한 적 있다
詩.. 또한 마음의 그림(心畵)일진데,
진실된 마음 없는 현란한 활자의 먹칠만 화폭에 가득하다면
그 어찌 詩와 心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방에 근엄한 게시판 규칙과 詩는 넘쳐 흐르나,
시인다운 시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이 時代...
왕서장의 서문은 한 번쯤 가슴에 새길만한 글이 아니던가
(그 누구보다, 이 글을 쓰는 나 부터 먼저)
시와 詩人을 말하기 앞서, 우선 인간다운 人間이 되어야 한다
* 부디, 노여움은 거두시고
앞으로도 좋은 시편들로 뵙기 바랍니다
보리밀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