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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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안에는 새하얀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첨탑으로 가는 문이었거나 늪이었거나 거먼 구름이 걷히면 청명한 하늘색 나선형 계단을 올라 캔버스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손목을 그은 날 선 선명한 자국들이 늦여름 자지러지는 살풀이에 달아올라 실거머리처럼 검붉게 꿈틀거렸다 잘려나간 미세혈관들이 깨진 욕조를 칭칭 감은 담쟁이덩굴처럼 기어오르다 배수구로 둥둥 떠내려갔다 그 희미하고 가느다란 벽을 통과한 유속을 따라 융털 같은 전라의 기억들이 젖은 가르마를 가르며 발목을 붙잡고 발등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석화된 석류알들의 갈라진 시취가 배인 먼지 낀 욕실의 창가로 그것은 천공으로 가는 문이었거나 늪이었거나 나는 스텐실붓을 꽉 거머쥔 채 말라비틀어져 가는 탈색된 알갱이의 풍혈風穴 속으로 걸어갔다 얇은 햇살로 부풀어 오른 기억들이 망막 속으로 기어 다니는 부등시不等視의 비문飛蚊들을 유리창 너머로 꾹꾹 눌러 찍었다 수많은 담쟁이덩굴이 발뒤꿈치에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뜨리며 횃대에 걸어 둔 새하얀 캔버스, 불 꺼진 방 안으로 일렁이는 우윳빛 포말 사이를 가르며 퍼드덕 날아가버렸다
댓글목록
崇烏님의 댓글

말복 지나니, 조금 나아 진 거 같습니다.
내일 모레가 처서라지요..이제 더위는
다 갔다 생각하니, 한 세월
이리 빠르구나 하는 생각 잠시 하게 되네요.
아침, 멋진 화폭 속 거닐다 갑니다.
콩트 시인님,
휴일, 선선하고 건강하게 보내시길요...
감사합니다.
tang님의 댓글

존재에 대한 해석이 성령적 요소와 어우름되며 차단되는 내적 갈등이 자아로 이입되고 있습니다
가늠되는 자존 해석에 대한 물음이 현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립에 대한 고찰이 자아를 형언하려 했습니다
시화분님의 댓글

헤, 저의 글 윗집에 계서서 조심스레 노크 해 봅니다. 캔버스 속 상상해 보다 갑니다. 몽환스런 글 속에 장엄함 마자 느껴지는 군요. 글 감상잘하였습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