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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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하얗게 꽃 피었다가
낮이면 해 부끄러워 꽃잎 오무리는,
그 소박한 박꽃에 취했다던 사람들아,
여름 대낮에 무리지어 홀딱 벗은 모습으로 꽃 피고는
저리 붉게 타오르고,
저렇게나 당당할 수 있냐고,
능소화 보고 욕하지 마소.
뜨거운 여름 태양에 민 얼굴로 맞선,
선홍의 다섯 조각 꽃 입술 과한듯 하여도,
능소화 화사함은 어느 나리 못지 않소.
다른 나무에 기생하여,
벌겋게 꽃 도배해준 것 하나로,
주인 행세 한다고 욕하지 마소.
능소화 화려한 치장으로 그나마 그나무 말년이 빛나는 것이라오.
고택 담 위에 무단히 올라
하늘 높이 꽃나팔 불더니,
길 가는 낯선이들 내려다 보며,
주인이 하인 보듯 한다고 욕하지 마소.
날 키워주고 바라다 봐준,
고택 옛주인이 그리워서 그러려니 하고,
바닥에 떨어져서도 의연한 내 통꽃의 기상을 봐서라도,
부디 밟지 말고 그냥 지나 가시구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존재의 아성에 도전했습니다
존엄의 위세를 사모하는 극적 환호가 영적 견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등대빛의호령님의 댓글

능소화나무를 예쁘게 본 기억이 나서 시제에 끌려왔습니다
경북에 유명한 능소화나무가 절단된 사건이 있었다는데 시에 오버랩 되어 읽혔답니다
실명시키는 꽃이란 누명 때문이려나요 아니면 관광객이 시끄러워 부린 심보이려나요 아쉽게 됐지요
화리님의 댓글

tang님, 등대빛의호령님 댓글 감사합니다.
시마을에 제 첫 글입니다. 들러주신 분들 감사하고, 시인님들의 시상과 감성에 놀라고 있습니다.
예전엔 능소화가 귀하여 마을에 그저 한두 나무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너무 흔하게 보여 꽃으로써의 위상이 떨어진 듯 합니다.
어렸을 적에, 능소화 필 때 여름방학 시작하였으니 늘 반가운 꽃이었지요. 그렇게 귀하고 사연 많은 꽃인줄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