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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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할머니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어요.
B동 6층에 살고 있는 채영이와 할머니가
우리 아파트 로비를 걸어가는 걸 보았지요.
할머니는 요즘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저씨, 우리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에요.
채영이는, 로비 근무 서던 내게
할머니의 그림이 든 스케치북을 자랑스레 보여줬습니다.
집으로 가는 소녀,
그림의 제목처럼,
소녀는 할머니랑 걸어가고 있었던 거랍니다.
늙수그레하지만 새 꽃잎처럼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의 그림,
속엔,
청포도 빛 노을 물든 기다란 호숫가와
그 호수를 호위하고 섰는 돌담과
돌담 위에 앉아 하늘을 치어다보는 딱새 한 마리,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돌담길을 걸어가는 작은 소녀,
가 마치 밥 로스의 그것처럼 펼쳐 있었더랬습니다.
상수리나무 가지 위를 노니는 청설모처럼
소녀는 돌담길을 뛰었다 걸었다, 시간을 걷는 거였구요.
할머닌 그림 속으로 들어가 소녀가 되고 싶었던 거랍니다.
지난 월요일 늦은 오후의 일이었어요.
로비 지나 아파트 보도블록 위를 소녀와 할머니가 걸어갔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윽고 서까래 밑 시래기처럼 노을이 걸렸구요.
난 내게 손짓하는 그들 빛살과 손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소녀와 함께 돌담길 걸었던 것입니다.
그때 어디선가 아이들이 노랠 부르고 있었구요.
난 보리밭처럼 흔들거리며 눈을 감았지요.
저기, 어제의 소녀와 오늘의 소녀가 걸어가네요.
로비 탁자에 두고 간 스케치북 위에선
청포도 송이 닮은 눈물 한 방울, 저 혼자 뒹굴고 있었다 합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마음 안에 오랫동안 가라앉을
한편의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부족한 시,
늘 고이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안녕하시길 빕니다.
이옥순님의 댓글

어제의 소녀 와 오늘에 소녀
그렇군요 ....
늙어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동심으로 돌아 가게 만든는군요 ^^
저도 글을 쓰며 온갖 시름을 다 잊곤 합니다
그래서 쓰고 또 쓰고 ....
뭐 그렇게 내 만족을 위해 쓰지요
오늘은 시인님 시 로 즐겨움을 느끼고 갑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일하다 늦게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마음 살가운 시 많이 쓰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