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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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산길을 걷다가 바람에
휘몰아치는 산갈대 속을 걷다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마음을 잃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에메랄드빛 매끄러운 허공을 걷고 있었다.
수면은 투명했으며 배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내 오후는 곧지 못하고 흙길은 서서히 비탈길로 이어져
저 멀리 산 아래 시인들이 살아가는 작은 집들
엎드려 후박나무와 늘어진 등나무 넝쿨 플라타너스 아래 숨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주 작은 뱀 하나가
검은 물감과 흰 물감이 조화롭게 섞이지 못한
불협화음을 달구어진 등 위에 얹고서
날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날 노려보고 있었다. 흙 위에 나뒹구는
이슬방울처럼 내 폐는 금새
찢어질 듯 아파왔다. 거울처럼 차가운 수면 아래로
누가 손을 넣었다가 물을 탁 하고 튀기는 것이었다.
파문.
뱀 한 마리가
고원지대 외로운 산길을 기어
죽음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뱀은 저 푸른 하늘이 어리는
자신의 표정 속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내 곁에서
혈관이 끊긴 손목을 자연스레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동공에 박힌 부용꽃이 시들어 가는
스물네살. 후박나무
청록빛 수액이
그의 혈관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으리라.
뱀은 반투명한 껍질 하나만 남기고
내 유년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다시
산길 위에 혼자 남았다. 샛노란
산유화 한 송이가 파랗게 질려
샐러맨더의 비늘이 묻어 있을 뿐이었다.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부용꽃 스물네 송이 붉게 떨어지는 그 투명하고 시린 살라맨더의 비늘 속으로 홀연히 걷다 갑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grail200님의 댓글

청록빛 수엑이 ㅡ> 청록빛 수액이
너무나 아름다운 시입니다
닮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수정하였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