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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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내가 가는 곳마다 미리 와서는 잎순 돋는 후박나무 가지에 깃털 하나의 무게로 앉아 있다.
황홀히 새의 이름을 묻기에 앞서, 나는 혼자 이국을 떠돌다 어느 날 문득 생각 없이 벤치 한 켠 조용한 내 공간을 찾아 초록물 듣는 담장 곁에 앉았다. 씁쓸한 외국어가 잠긴 한 잔의 뜨거운 커피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호흡하고 있는 내 삶의 나선계단 어디쯤 잔잔한 오후를 반사하고 있다.
모든 소리로부터 격리된 이 손금 안에서 나는 투명한 담을 쌓아 시시각각 음영이 바뀌어가는 녹음에 겹쳐 나는 외로운 빛깔 띠어갔다.
문득 위를 보니 내 유년의 습자지같은 새가 미리 예리한 가지에 와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투명한 눈알은 아래 위를 번갈아 두리번거리지만, 시선은 하늘 너머 저 무한한 청공 그 어느 지점에 닿아 있지만, 분명 유년의 하늘은 저 위에서 벅찬 심장으로 오늘의 나를 듣고 있다. 두근두근. 내 심장이 파릇파릇한 언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바싹 말린 꽈리 비슷하게 생긴 심장이지만, 현악사중주 속 첼로소리같은 내 누이가 거기 살고 있고, 엎드려 죽은 내 강아지 뽀삐도 거기 들끓는 구더기에 덮여 흙이 되어가고 있고, 사루비아꽃 꽃낭에서 꿀을 함께 따 먹던 아이들은 산 언덕 너머 철조망에 옷이 걸려 뭉게구름을 쫓아가지 못했던 기억이 오솔길 사이로 허물어진 곳집의 잔해가 되어 내 심장 속 선명히 남아 있다.
쌍무지개가 티 없이 비췻빛인 허공에 높이 걸린다. 해변에 조용히 다가와 속삭인 다음 다시 머언 수평선으로 물러가는 연초록 파도다. 이것들이 언어가 되어 날 슬프게 한다. 내 유년의 뭉게구름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한 반향으로 일제히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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