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그래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드문드문 다니던 기차타고 도착한 작은 역은 우리들만 내렸다
고개 오르내리며 굽이돌던 십리들길 걸어 방학이면 가끔 찾아갔던 고모네
도착해보니 근처 일하러 가셨는지 아이들 놀러갔는지 아무도 없다
배는 고프지 먹을 거 찾아 들어간 부엌천장에 매달린 소쿠리 안 밥주발
밥이 수북했다 배는 고프지 찬장 안 열무김치와 고추장종지 찾아 기름 쓱쓱 비벼 먹었다
단발머리 계집애가 겁도 없이 동생들 데리고 눈칫밥 천덕꾸러기였어도 좋았다
설날 전부터 엄마는 밥할 때마다 한주먹씩 덜어내던 쌀 단지 털어 씻었다
산꼭대기 달동네 된바람이 숭숭 울며 얼굴을 할퀴던 우리 집에 푸짐하게 떡가래가 놓였던 그때
새벽부터 엄마 대신 줄 서서 기다리다 우리차례 가까워 엄마 부르면 어느새 하얀 김 오르던
떡을 이고 함박웃음 웃던 엄마 조상에 올릴 떡 따로 덜어놓고 몇 가락 떡에 설탕 주면 우리는
아까워 서로 누가 빨리 먹을까 누구 게 더 많나 급하게 눈치 보며 먹었다
밥 나물은 쉬지 않게 얼른 먹고 옷 양말은 손아귀보다 큰 빨래비누로 손등 터지도록 조물조물
방바닥은 길쭉한 나무에 빼곡 머리숱 꼽은 빗자루 쓸어내 털었지
구멍가게 큰소리로 움직이던 텔레비전은 돈을 내라고 보챘다
며늘애가 들고 온 크고 가지런한 딸기 접시 붉게 상에 피자마자 금세 져버리고
가래떡 동글동글 잘라주니 냉동실에 사놓은 거 많이 있어요. 떡만둣국 아이들이 잘 먹어서요
방바닥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들 부스러기 쓰는 청소기는 그렇다며 끄덕끄덕 움직였다
다 빨았다 노래 부르던 세탁기속 이불 꺼내 건조대에 널어놓으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설렜던 그때
명절 생일이 아니어도 늘 아무렇지 않게 사먹을 수 있는 요즘
철이 사라진 시절에 끼어 생각하자니
어린애였던 그때가 더 좋았지 싶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