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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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한 번쯤 그렇게 울어 보았으면
속 울음 가득 피가 배어,
시들지 않은 영혼처럼
* 冬柏에 관한 시는 너무 많지만,
정말 좋은 詩 한 편이 있어 이 자리를 빌어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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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피다 / 허영숙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는 내가 즐겨듣는 노래가 있지 노래가 나오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해마다 바람이 그려놓은 악보들이 마당에 두껍게 쌓여 있지
바랭이, 개망초의 전주곡이 끝난 자리에 이름 모를 풀꽃들이 스스로 지닌 음계를 타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피었다 지고
도돌이표를 따라 한 무리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며 합창을 들려주기도 하지
나만 아는 그 집에는 오래 전 당신이 부르던 노래가 있었지
노래가 흘러나오던 입술을 열고 들어서면
잡풀만 무성한 마당, 저음 또는 고음이 가진 당신과 나의 불안한 옥타브를 베어버린 킬링필드,
그 들판에 우리의 노래는 이미 죽고 남은 몇 음절의 노래가 미완으로 남아 있지
달빛만 조명처럼 출렁이었다 사라지는 빈 무대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당신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던 겨울 날
집과 집의 경계를 깔고 앉아 당신의 지문이 묻은 악보를 뒤적이는데
성성 날리는 눈발이 피날레를 예고하더니
담벼락 밑에 서 있던 늙은 가수 하나가 목울대를 세우고 붉은 노래를 낭창낭창 부르기 시작했지
그 틈을 타고 오래 가두어둔 한 음절을 기침이 쏟아지도록 따라 불렀지
눈발 속에 당신이 붉게붉게 피고 있었지
2006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시마을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詩集, <바코드 2010>.<뭉클한 구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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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의 감상 & 생각>
올 겨울에도 동백은 붉게 피어나겠지요
선운사(禪雲寺)의 동백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시절의 인연이 닿지 않는지 여직 못보았군요
시인의 詩를 통해, 겨울의 동백을 만나봅니다
이 시의 시구(詩句)들에서 '동백'으로의 이행(移行)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궁극(窮極)의 [눈부신 사건]으로 동백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매개항(媒介項)이 없이도 점층(漸層)되는 이미지의 집약(集約)에 따라,
그렇게 한 떨기의 붉은 동백으로 꽃 피우게 하는군요
나만의 개인적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해마다 신문들의 요란스러운 문예잔치(?)의 당선 시편들에서
느껴지는 당선을 위한, 당선에 의해, 당선이 된,
[시示를 위한 시詩]......
그것들과 견주어 볼 때,
월등 우수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목록
희양님의 댓글

선돌 시인님의 동백
간결하면서도 깊이 빠져드는 무형의
느낌을 느낌니다.
그리고
허영숙 시인의 동백 피다
1연에서
한참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문장의 전개와 보석 같은 어휘 구사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선돌님의 댓글의 댓글

허영숙 시인님은
저 보다 훨 늦게 등단한 분이지만..
그녀의 시세계는 (수평적으로)넓고도 (수직적으로)깊어서
저 같은 미천 微賤한 건 그녀 앞에 명함도 못내밀죠 - 정말,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시마을이 배출한 詩人 중에
그녀를 대신해 갈음할 여류시인은
없는듯 하고..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 소회 所懷)
머물러주시고 귀한 말씀 놓아주신,
희양님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