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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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오랜 세월
46번 버스 정류장 옆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
무릎엔 옹이눈 파여 있다.
옹이 안엔 벌레의 주검과 진물과 상한 잎들이 고여 있다.
검은 비닐봉지가 슬쩍 무르팍을 건드리며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어디 생을 건드리는 게 저들 뿐이겠냐며
지상의 나무는 함부로 살아온 녀석을 용서하기로 한다.
내달리는 트럭이 일으키는 바람에 이파리들이 잠시 휘청거린다.
매연을 겨울 잠바처럼 껴입은 채 서 있는 나무
기다리는 버스는 아니 오고 검은 봉지 또 한번 뒤집히고 있다.
곁에 누웠던 이파리도 덩달아 뒤집힌다.
그 사이 구름을 비집고 비가 자작나무처럼 내리면
비에 눌려, 검은 봉지와 이파리들 다시 지상으로 주저앉는다.
기다리는 사람 없는 정류장 부스에 버스가 도착한다.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이파리들을 태우고 떠난다.
어디선가 새소리......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무는 미뤘던 저녁 식사를 한다.
비와 바람을 먹은 저녁이, 정류장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버스 정류장에 부는 바람과 플라타너스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시의 결구까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잘 감상했습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오랜전 버스 정류장 옆에 있던
늙은 플라타너스를 본 인상이 늘 남아,
시로 그려봤습니다.
어렵네요.
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옥순님의 댓글

시인님 안녕하세요?
거스를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이나
또한 자연의 운명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시인님의 높은 예술 혼을 만나고 갑니다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건강 잘 지키세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반갑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활인입니다.
생활이 저의 시이고,
시가 제 생활의 시냇물이자 거울이고요.
전 예술이 뭔지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깊은 겨울밤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