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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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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8회 작성일 24-10-01 11:26

본문

  아내에게 




  나는 연약한 그릇.

  그리고 나보다 더 연약한 그릇인 그대.


  30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그대에게

  구차한 변명의 말들은 꺼내지 않으리.


  길게 기르던 머린 흰머리 섞인 단발이 된 지 오래.

  오솔길 같던 눈매엔 주름이 찾아오신 지 오래.


  어제도 하루의 일들을 얘기하며 웃던 그대의 눈망울

  속에 보이던 순천 풍치마을의 소녀가

  뛰어다니던 상수리나무 너도밤나무 아래 개울물.


  그때 윤슬처럼 흘러가던 그대를 사랑하였으니.

  

  잠시 후면 흙으로 돌아갈 우리.

  

  그대라는 그릇 속에 나를 담가 익혔던 세월들.

  행복은 딴 데서 오는 게 아님을 무심히 가르쳐주던 그대.


  그래서 우리에겐

  더욱 사랑할 일만 남았으니.


  오늘도 먼지 묻은 

  내 마음

  단정한 그대의 마음에 씻으며

  사랑이 무언지 생각하는 

  이토록 오래된 그릇들의 이야기.


  뭐하요?


  시를 끄적이고 있는 내게 던지는 내 그릇의 

  흙 같은 음성.


  그렇게 깊어만 가는 이 가을의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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