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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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 아침이 기지개를 켜며 형형색색의 물상을 깨운다. 매일 같은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 지구는 무리수를 두었다. 지구는 똑바로 허리를 펴지 못했다. 23.5° 기울어진 편향의 세계. 기울기는 자연과 사소한 인사(人事)에 신령처럼 깃든다. 일과 내 관심사에도 쏟아져 빗줄기를 퍼붓는다. 세상 만물에 씌워진 기울기는 각자의 경로와 각도를 가진다. 사건과 사고들은 급격한 경사로 흐른다. 뉴스는 빠르게 전파되어 퍼진다. 빈국(貧國)의 소식은 어디에 있나. 지구는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를 생산한다. 기울어진 연인이 기울어진 자세로 기울어진 이야기를 기울어진 귀로 듣는다. 겨울을 바라보는 노인의 등허리는 저물어 가는 산의 바닥처럼 무겁다. 노인의 마지막 호흡에도 삶의 무게추가 달려있다. 새소리와 나뭇가지에도 빛살이 들어와 박힌다. 벌레를 쫓던 새가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여러 곳에서 출발한 기울기는 최저점을 목표로 곤두박질친다. 세상의 중심, 내 맘 척박한 어딘가로 파고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고 소박한 옛 꿈들도 그곳에 도착했을까. 황폐한 땅에 뿌리내려 싹을 틔우고 있을까. 떨어져 깨진 그릇을 들고 울고 있던 동심의 내가 떠오른다.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둥근 품속
그렇다면 작고 소박한 옛 꿈들도 그곳에 도착했을까?
황폐한 ...싹을 틔우고 있을까?
무엇보다, 떨어진 깨진 그릇 들고 울고 있는 동심의 내가 떠오른다
인상 깊은 시,
잘 읽고 갑니다
탱크님의 댓글

인상 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써놓고도 너무 추상적일까봐 걱정했네요 고니plm시인님 . 이렇게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