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을 걷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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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27회 작성일 21-07-06 12:26본문
동해남부선을 걷는 오후
봄이 오시는 장산 초입
세 갈래 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 산길을 걷는다.
봄이 보이는 해운대 우동
내 곁으로 노인이 다가온다.
옛 철길이 어딘지 아시는지, 묻는 내게
아 폐쇄된 동해남부선 말이군요, 내가 잘 알지요,
엷게 웃으며 일러주는 우연히 만난 노인과 동행이 되어 옛 철길을 걷는다.
유채꽃 조팝나무 회양목 영산홍들로 치장한 옛 철길 산책로엔
저마다 생각에 잠긴 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버스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버스 정류장 옆 이팝나무에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올해 농사는 풍년이겠구먼, 노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한참을 걷다가 폐쇄된 해운대역 대합실 뒷문에서 노인과 헤어졌다.
나는 노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운대 옛 역사驛舍를 뒤로하고 청사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미포가 눈에 들어온다.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라고 적힌 모형 기차 앞엔
나무로 된 그네 의자가 덩그러니 흔들리고 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의자는
산과 바다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추억을 훔치고 있다.
영원을 평행선으로 달릴 것 같은 철길을 걷다 보면
가끔 새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가고 꽃들은 듬성듬성 철길에 누워있다.
행인들이 두고 간 뿌리 잘려진 조화들이다.
진짜 꽃들은 바위와 넝쿨 뒤에 숨어 있다.
오른 귀엔 파도 소리를, 왼 귀엔 수풀의 바람 소리를 들려주는 철길 위에서
불행은 딴 세상의 일인 것 같다.
큰 바위 너머로
옛 해안경비철책이 찢어진 채 구부정하게 서 있다.
철책을 지나니 청사포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 뱀이라는 뜻이 좋지 않아 푸른 모래를 가진 포구로 개명했다는, 청사포.
철길을 배경으로 외로이 서 있는 등대는
저만치 지는 해 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등대보다 더 오랜 세월 바다를 바라보았을 철길에겐
나무 밑동처럼 잘려나간 슬픔이 있고 내게는,
아픈 발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환희와 대면하는 환의 얼개
열락의 힘이 동인이 되어
천천한 있음을 대면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 감사합니다.
여름날 건강하시고,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