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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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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6회 작성일 18-12-11 14:55

본문

 

더 이상 음악으로 번역할 모국어가 없는

풀잎들이 악기를 땅에 내려 놓았다

심장이 타악기인 동물들이

날개가 현악기인 곤충들의 꽁지를

머리카락으로 간지럽혀서 싸움을 붙였는데

투사를 알아보지 못한 닭들이

낼름 잡아 먹어 버리고는 부리를 닦는다

음악이 되는 것보다

투사가 되는 것보다

식량이 되는 일에서 고요를 찾는다

왜 나는 녹슨 쇠에게서 인간미를 느끼는지

덕지덕지 쇠가 껴입은 녹덩이에

가려운 부스럼처럼 손이 간다

멈추고 싶은 살기가 피 같았을까

혈우병 걸린 쇠를 시금석에 문지르면

24케이의 조흔색을 얻는다

풀잎들이 끝내 감추고 싶어 했던 살기에

서리를 바르면 붉은 녹이슨다

바람이 불면 갈라진 목소리로

죽이고 싶었던 이름을 흩으며

그루터기를 비목처럼 앞세운다

녹 조각이 벗겨진 칼이 헐렁해진 칼집에

앙상해진 몸을 밀어 넣는다

물음표처럼 자주 잠을 깨우는

칼자루를 아무도 만지작 거리지 않는다

다시 남은 날을 갈 것인가

개에게 물리면 개털을 태워서

참기름에 개어 바른다

검은 눈물이 자상에 좋다며

여윈 칼을 숯돌에 비빈다

저 혼자만 눕는 집을 가진 칼은

자주 미쳐서 날뛰고

사람과 집을 함께 쓰는 칼은

칼금 위를 춤추며 무당처럼 뚝딱

내일을 장만 한다


풀잎들의 악기가 몇 일 째 욕조에

남은 물 위를 둥둥 떠 다닌다

오른 쪽 날개에서 툭 떨어진 E현에서

흘러나오는 녹슨 고음이 물에 번진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12-19 14:58:20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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