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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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저수지
낡은 시간들만 고여 있소,
신발 두 짝 벗어놓고 저리로 들어간 오촌당숙과,
당숙네 세살박이 간난이, 다리를 저는 간난이
간난이가 빠진 우물과 우물 옆 낡은 감나무
구름이 떨구고 간
계절의 흰 숨소리까지,
각양각색 풍문들이 떠다니는 물이랑은
마른 갈대 새로 보였다 안 보였다 하오,
철새 떼, 젖은 날갤 털면 물 밑 발길질에 채이는
낡은 고요의 시간,
노랑부리저어새 깃털사이로 하늘 출렁일 때마다
근거 없는 소문처럼 일어서는 가창오리 떼,
수천 수 만개의 울음주머닐 열어 서쪽 하늘 가득
붉은 빛으로
짧은 겨울 해를 끌고, 당기고 하는 게 보이잖소
리강을 도망쳐 온 가마우지 가마우지
끝없는 자맥질에 평평한 겨울 해가 부서지고,
나, 못 둑 위에 나 앉아 물낯을 가르는 고깃배 한 척
끌고 가는 사람 당겨, 흔들리는 옆자리에 앉아
가마우지 낚시꾼이 되고 싶소,
고여 있는 시간만큼 나, 노닥노닥 함께 앉아
저 편 뽀얀 안개사이 월동하는 무리들 사이로 흘러가면 좋겠소,
물과 안개와 바람이, 낡은 뒤란처럼
마른 가슴을 열어 저리도 견디고 있소
[이 게시물은 시마을동인님에 의해 2015-12-05 10:19:17 창작시에서 복사 됨]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도무지 뉘신지 짐작할 수 없지만,
흐르는 강물도 단칼에 베어낼 듯 유려한 솜씨를,
달인의 솜씨를 맛보고 갑니다.
수련향기님의 댓글

활연님의 댓글에 괜시리 설랩니다!
아무도 저 보고
시인이라 말하지 않아서
시인이 되고 싶은데....
절망한 시간이 많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혀가 좋을까, 속이 좋을까?
속이 좋은 詩
맛보고 갑니다.
저도 기꺼이 한 표!
고현로님의 댓글

...짧은 겨울 해를 끌고, 당기고 하는 게 보이잖소
리강을 도망쳐 온 가마우지 가마우지...
이렇게 행을 띄우는게 무척 인상적이네요.
따라해봐야지...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