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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동백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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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22회 작성일 17-02-09 08:26

본문

도심의 동백섬

 

이영균

 

 

손가락이 건반에 닿자 담쟁이넝쿨같이 말라비틀어진 노파의 손끝에서 클래식한 리듬이 일어났다. 한 이십 년쯤은 허물어 내렸을 저 몸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을 기름진 음색, 동백처럼 언 가슴을 가르고 일어나 얼굴의 주름살을 펴며 붉게 번져갔다.

 

리듬은 점점 커져 음의 뿌리인 물의 파랑, 태평양으로 유럽으로 번져나가자 선율의 혀 말림이 밀려와 거리는 추위에 웅크린 몸들에서 파란 율동의 발들로 자라나 동백의 오륙도가 되었다.

 

코트 자락을 들썩거릴 때마다 썩은 악취가 그의 노숙을 확인해 주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콩나물 얼어 부러지듯 선율들의 잔해가 폐품처럼 고뇌로 쌓였다. 한 무더기 채소 쓰레기는 악취를 끌며 어렵게 공중화장실로 갔지만 씻어도 악취는 벗지 못했다.

 

노파의 첫 대목은 따뜻한 봄볕의 소공녀였다. 능통한 소녀는 동백처럼 흰 눈 속에서도 붉게 피었고 세상으로 번져나가 누구도 소녀보단 아름다울 수 없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철벽같은 아집은 그녀를 스스로 고립되게 하였고 끝없는 밤에 갇혀버린 외딴 섬이 되어버렸다.

 

칠보의 불빛들이 하나둘 깨어나는 밤거리엔 토막 난 음표들이 넘쳐나 더는 섬이 아니었기에 동백은 주먹처럼 뭉그러져 노파가 되었는데 오히려 긴 지하도엔 젊음을 다 벗어버린 노파의 뭉그러짐이 평온하였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7-02-10 13:04:16 창작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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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나pl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파도처럼 일렁이며 잘 밀고 나간 시의 힘이 느껴집니다
사연 또한 잘근잘근 잘 씹어지기도 하고요
파문처럼 읽히는 좋은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이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네! 긴 글을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읽어 보시고 많은 조언 부탁합니다.
문학과 함께 오늘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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