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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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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고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612회 작성일 20-03-26 08:24

본문

밤의 해변에서

 

바람 앞세우고 걷는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허공에서 씨줄과 날줄로 엮이다가

찢어진 깃발처럼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지른다

길 잃은 새들은

회상의 고도로 어둠에 길을 새기고

그리움 저편의 안부는

버려진 사구에 축축한 머리를 박고

눈썹에 매달 수 없는

인연의 무게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사랑이라는 게

때로 지독한 역설이듯이

안개꽃 자욱했던 식탁은

새벽 야시장처럼 버려지고

투명한 잔에 묻었던 온기는

돌아선 벽에 머리를 부딪쳐

부서지고, 깨지고, 피 흘리고

잠들지 못하는 수평선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슬픔 끌어안고

서럽게 제 이름 부르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은 앞서가는 제 발자국 밟으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아무도 잠들 수 없는 밤이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3-30 17:13:03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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