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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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정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955회 작성일 16-06-15 20:59본문
잠자는 사내
강정관(19)
때로는 오늘의 바닥만 보고 걸을 때
내일의 하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태 바닥만 보며 살아왔고
오지 않은 나의 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대전 유성 이팝나무 가로수 길,
나무 위에 물안개처럼 쌓인 달빛이 흘러내린다
봄 밤 아래, 가로등이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 끝
등에 꽂힌 태엽을 겨우 돌리며
인형같이 절뚝거리는 사내
한 걸음, 두 걸음, 떨리는 다리가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오랜 치석처럼 길가에 앉아있는 포장마차
쌀밥 같은 투명한 이팝들이
정처없이 그 위로 쏟아져 내린다
오늘의 행선지도 없기에
기다리는 것도 없다
옅은 봄바람이 코를 스쳐지나가
어딘가로 흘러가는 밤
아지랑이처럼 꽃잎들이 붕 떠오른다
소주는 됐습니다
취해버린다면 진짜 얼굴을 잊어버렸듯이
쓰고 있던 가면마저 벗겨질 것 같다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얼굴은 나의 오늘처럼 자꾸만 흘러내린다
같은 표정으로 매일을 웃어 넘겨왔고
마리오네뜨처럼 춤을 추라면 그렇게 했다
인생의 한창 때가 봄이라던데
사내의 봄은, 사내의 오늘은
아직 겨울인가 보다
타는 목구멍에 술 대신 집어넣는 안주,
그마저도 그가 반죽해온 시멘트처럼
배 속에서 굳어버린다
포장마차 앞에는 내린 별빛들과 꽃잎들이
널브러져 서성이고 있다
앞을 지나가며 웃고 있는 가족이
오지 않은 내일처럼 미워진다
흘러들어온 밤공기가 발목을 부드럽게 쥔다
내일이 올 것을 다시 고대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사내
봄 밤이 되어서야
겨울잠에 빠지는 사내가 있다
오늘을 가슴에 기록하는 사내가 있다
댓글목록
백은서님의 댓글
백은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행을 읽는다 싶었는데 이미 마지막 연을 읽고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