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심던 날 / 최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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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심던 날
솔거 최 명운
직장에 다닌다고 몇 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묵정밭에 들깨를 심었다
낫 쇠스랑 괭이 이용해 베고 파고 긁었지만
내리쬐는 햇살에 땀은 비가 오듯 흘러내리고
힘의 한계에 부딪혀 몇 평 파헤치지도 못하고
포기하려 고민하는데
오리고기 꿩고기 파는 식당 소나무 오가던 까마귀가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우짖으며 비꼬는 듯하다.
결국 몇 년 만에 해보는 것이라 괭이 쇠스랑 내려놓고
오래전 친분을 터놓은 분에게 전화를 걸어
경운기나 트랙터로 로터리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요즘 농촌 사람들이 연로하여
로터리 할 사람이 없단다
그래도 한 번 알아보라고 했는데
골프장에 일 하러 나가던 친분 있는 그분이
퇴근 후 로터리 해주시던 중에
움퍽움퍽 한 밭 고른다고 객토한 곳 땅을 고른 사람이 왔단다.
사료용 옥수수 심기로 한 농장 하는 사람인데
트랙터 몰고 왔다며 경운기로 하기엔 잡초가 많이 자라
한계가 있다며 그분에게 트랙터로 다시 해달라고 했단다
여러 사연 끝에 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었다
친분 있는 분 집에서 감사하게도 들깨 씨 주셨고
잘 갈려진 이랑에 들깨 심고 갈퀴로 얕게 덮었다
들깨는 너무 깊이 심으면 나지 않는다는
어렸을 즉 농사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들게 심는 중에 마침 소나기가 내린다
한여름 소나기, 한창 더울 때 소나기는
온 대지와 파랗게 자란 나뭇잎과 마음마저 시원하게 적셔준다
하지만 여름 소나기라 했던가 잠시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치고 만다
이튿날 밭으로 향했다
전날 단감나무 소독을 하는 중에 소나기 내려 소독을 중단했는데
몇 그루 남은 감나무마저 소독하기 위해서다
들깨 심은 곳에 가까이 가니 갑자기 참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간다.
아뿔싸 마을 친분 있는 분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씨앗을 뿌리고 부직포로 덮어주지 않으면
새들이 씨앗을 쪼아 먹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그랬다
들깨 심은 이랑을 닭이 발로 파헤쳐 모이를 찾아 먹듯
온통 파헤친 자국이다
서둘러 지난해 감나무 가지치기했던 마른 나무를 주어
비닐과 장갑으로 허수아비 비슷하게 만들었다.
허수아비 세우고 멀리서 쳐다보니
참새가 한두 마리 들깨심은곳으로 향하다가
땡들 땡 글 한 매실 땄던 매실 밭으로 방향 바꾼다
하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순간이다
아무리 참새 대가리라고 하지만 한 시간만 되면
허수아비 모자 위에 앉아 동료들을 부르는 게 참새다
중부지방은 많은 양의 소나기가 내린다는데
들깨 심은 밭은 겉흙 먼지만 겨우 젓을 비가 내리고 말았다.
소나기 한줄기 내리면 들깨와 사료용 옥수수 촉이 튈 텐데
아무래도 올해도 묵정밭으로 도로 남거나
새들의 잔치만 열어준 꼴이 되겠다
마누라 잔소리 또 시작하겠다
농사짓는다고 말을 잘하면서 헛수고만 하러 다닌다고
잔소리 들어도 싼 것이 사실 농사짓는다고
약초며 마늘 양파 별별 것을 다 벌려 봤지만
솔직히 농사 지어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했다.
예로부터 논농사 밭농사는 가족이 먹기 위해 짓는다고 했지만
그 시절 땅뙈기 없는 사람의 한탄 같은 것
사실 농사지어서 포장하고 형제 이웃에 나눠주고 나면
겨우 한두 상자 고구마나 감자, 몇 접의 마늘을 얻었을 뿐이다
형제나 이웃 농장으로 아니 밭으로
수확하러 오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오지 않고
캐고 수확하고 포장해서 배달이나 택배로 보내야만
겨우 고맙다. 한마디 할 뿐이다
농사 글세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다.
씨앗이 촉을 틔워 가장 좋은 조건으로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어 결실을 얻기까지
숱한 환경과 싸워야 한다
알곡 한톨 얻는다는 것 각자 일터에서 열심히일하는 것처럼
인내해야 하고 그날 그날 날씨나 환경과도 싸워야 한다
그냥 얻어지는 결과물이란 없다
어떤 분야에서든 노력의 댓가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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