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 최명운 > 영상시

메밀꽃 필 무렵

최명운

아버지께서 남의 땅을 빌려
수백 평 족히 될
언덕배기 밭에 메밀을 심었었습니다
메밀꽃이 필 때
눈 내린 것처럼 얼마나 곱던지
소먹이 꼴을 벨 때
날마다
메밀꽃이 아름다워 그쪽으로만 갔습니다

메밀꽃이 지고
푸른 청미래 붉게 익고
메밀이 까맣게 여물 즈음
아버지께서 병이 나셨는데
찬 서리 내릴 때까지 쾌차하시지 못해
그해 메밀을 다 버려
안타까워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간호하랴
자식 챙기랴
어쩔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어머니 한숨 소리
고사리손으로 메밀을 베어
질질 끌리는 지게에 등 짐을 져 옮겨
마당에다 말려
닷 되들이 말 됨직한 메밀
이웃집 절구에 빻아 메밀묵 해서 먹을 때
눈물 보이시던 아버지 어머니
가슴 뭉쿨한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메밀꽃 필적 개망초꽃도 참으로 예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