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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보폭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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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崇烏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4회 작성일 24-10-01 21:00

본문

달의 보폭

=김선태

 

 

보름달은 제 보폭을 보여주지 않지만

달팽이보다 느리게 산을 기어올라가서

어느새 꼭대기에 둥근 얼굴을 올려놓는다

 

보름달은 제 날개를 보여주지 않지만

풍선보다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어느새 중천에 환한 거울을 걸어놓는다

 

그리하여 보름달은

제 빛의 살점을 잘게 뜯어 만물을 살린다

밤새 어둡고 적막한 것들의 친구가 된다

나무 이파리 한 잎에도 저를 내어준다

 

아무런 말없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움직이는

저 정중동의 은밀한 세계

 

느리고 둥근 것은 저토록 영원하다

 

 

   문학동네시인선 062 김선태 시집 그늘의 깊이 079p

 

 

   얼띤 드립 한 잔

    보름달처럼 사는 것 그 일에 대해서 시인은 명확한 답을 내리고 있다. 느리게, 원하든 원치 않든 혹은 그것이 족하든 족하지 않든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없고 혹여 누구에게 뽐낼 것도 없다.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며 걸어가는 것이다. 보름달은 늘 그렇게 부족할 때도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처지에서도 지구를 향해서 늘 돌고 돌았다. 그렇게 걸었다. 정중동의 은밀한 세계에서 사려가 깊고, 게을리하지 않으며 신중했다. 정중동靜中動이란 조용한 가운데 어떤 움직임을 말한다. 여기서 언뜻 노자의 사상이 지나간다.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게 만들어진다.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만물이 하나인데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으로 잘잘못을 운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인께서 사용한 시어를 본다. 보름달은 제 보폭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행에서 달팽이를 예시로 들었다. 보름달과 달팽이, 보름달이 둥글고 원만한 것에 비해 달팽이는 마치 달을 팽이처럼 다룬 어떤 묘한 감정이 흐른다. 보름달은 제 날개를 보여주지 않는다. 다음 예시에서 풍선을 들었다. 보름달이 인위적인 것이 아닌 꽉 채운 것이라면 풍선은 허풍처럼 절대 자연스럽지가 않다. 어데 찔리기라도 하면 금시 터질 듯한 위기감마저 느낀다. 언제나 달의 보폭이다. 절대 빠르지 않지만 가장 빠른 길이며 절대 느리지만 절대 느리지 않은 삶이다. 나무가 있고 한 나무에 잎이 나듯이 내 사는 동안은 하루를 한 잎씩 소중히 다루는 날, 한 나무가 되듯이 오늘도 저 험한 시간을 견디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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