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프레임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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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프레임
=이동욱
그림을 거부한 다음부터
내 침묵은 빈 공간을 순례한다
이곳은 면도날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닮아간다 관자놀이를 눌러 생각을 키울 때 몰두한다는 것은 먹이를 향한 조용한 응시라는 것을 알았다 얼굴이 표정을 풀고 반죽처럼 차분해진다 상처가 닳아 소리가 되는 밤 누군가 눈 밑에 소금을 넣고 흔들어댄다
물감은 팔짱을 풀어 다른 색을 껴안는다
바닥에 닿는 물방울은 몸을 떨었다
시선이 닿았던 자리를 하나씩 모은다
각도와의 조용한 생활이 시작된다
문학동네시인선 164 이동욱 시집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가 있고 018p
얼띤 드립 한 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흐어, 팔레트에 있지도 않은 물감처럼 있다는 것은 애초 존재성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떤 색감을 어떤 농도로 얼마만큼의 양을 눌러 짠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와 놓인 상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인 이 세계에서 생각은 늘 우물거리고 각도는 삼분 오십 초다. 반죽을 쓰고 어디든 찍어 발라도 그림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십 대에도 삼십 대에도 더 나가 40대까지도 썩 좋은 그림은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모양으로 찍어 발랐다. 하늘을 알고 물방울을 알고 바탕은 다시 하얗고 원판에 다소 찍어 눌러놓은 어떤 색감 하나가 웅크리고 있듯이 다만 생각만 한다. 어디에도 미칠 각도는 없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프레임 하나만 보아도 더없이 좋은 깨끗한 그림인 것을 그간 너무 부끄럽게 살았다. 하지만 세상은 더욱 요구한다. 다 풀린 괄약근처럼 어디로 풀려나가 흐르는지 오늘도 조금씩 찍어 나간 물감, 한 덩이 두둥실 두둥실 살아 있다는 것이 구름 위 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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