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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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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773회 작성일 20-08-17 00:01

본문



草葬의 풍경 




재클린의 병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노인을 만났다. 두개골 안에 꽃을 키운다는 노인은 살면서 꿈을 꾸어본 적 없다고 한다. 

노인은 심지어 그의 뇌 속으로 뻗어나간 미세한 실뿌리들을 내게 건드려보라고까지 말했다. 

내 손에 닿자마자 그의 뇌세포들은 사금 조각으로 흩어졌다. 

내 지문 안에 갇힌 재클린은 

가슴 안에 수정 기둥이 자라는 병을 갖고 있었다.

 

마치 종유석 기둥처럼 물과 어둠과 박쥐들의 질식만으로 기둥은 성큼성큼 자라난다. 

까슬까슬한 분변(糞便)의 사방 벽에 흰 칠을 하고 

그 위에 르느와르를 갖다 걸었다. 

재클린은 내 손이 유리질의 딱딱한 장갑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재클린은 내 입술이 투명한 수정 위를 꿈틀리며 지나간 섬세한 균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열리지 않는 균열을 열어야 할 황홀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손톱 뿌리를 강제로 열어 

그 안에서 고통의 축제를 끄집어낼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섬세한 신경 줄기를 거슬러 나는 

여린 빛조차 투과할만큼 투명한 노인을 조심스레 들어 등나무 넝쿨 난폭하게 뻗어오르는 청록빛 페르골라 아래 갖다 놓았다. 


누군가 내 망막을 예리한 메스로 갈랐다. 햇빛이 소금처럼 짜다. 

위를 올려다보니 재클린의 황홀 속으로 파란 하늘이 침투하고 있었다. 


허공에 미묘하게 겹치는 음영들 사이에서 재클린은 

여린 빛깔 색종이처럼 곱게 반으로 접혀 새하얀 천 위에 놓여있었다. 

노인의 두개골엔 수선화 몇송이가 꽂혀 재클린 병실 창가 양지바른 곳에 놓여있었다. 


질그릇은 내가 한번 바라볼 때마다 쨍 하고 맑은 울림을 내며 내 환상에 공명해온다. 

투명한 수정 한가운데 쩍 하고 금이 간다. 재클린의 폐 속으로 축축한 부엽토가 빨갛게 기어들어갔다.   

몸부림치는 음표들 사이를 활강하는 첼로의 

활 부르튼 입술 사이로

오그라들고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 재클린의 

주근깨만큼이나,   


나는 저 노인이 하는 말들 중 몇마디가 사실은 꽃이 하는 말이 아닐까 궁금해졌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08-20 09:35:01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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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직소퍼즐을 맞추듯 떠오르는 장면을 하나씩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영상이 뚝 끊어져 버립니다.  아무 생각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가슴속에 어떤 장면 하나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제가 자클린 뒤프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시를 읽어가는 내내 전율을 느낍니다. 환상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차라리 그 속에서 무기징역을 살고 싶을 정도입니다. 너무 행복하네요. 오늘 밤 꿈속에서 꽃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봅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것이 원래 재클린 뒤프레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너무 산문적이 되어서 시로 잘 표현할 수 없어서 후일을 기약하였다가 지금 올립니다. 읽고 행복하시다니 저도 보람을 느끼네요. 감사합니다.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창가에핀석류꽃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고싶은 말씀을 아름답게 표현 하시는군요.
바라보는 시선이 고와서 한참 젖었다 갑니다.
더위 잘 이기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것이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대위법적인 시입니다. 아름답게 느껴지신다니 다행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창가에핀석류꽃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건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화자가 두 상관물에 대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유를 풀어 가시는데, 이왕이면 더 나아가 화자로 등장시켜서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는 나가 관찰자 이상이라고 의도하였는데 아무래도 약했나 보네요. 사실 재클린도 노인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상상만으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연스럽게 사유를 풀어나가기 어렵네요. 제가 뮤즈가 사라져서 시 쓰기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붉은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붉은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다양한 느낌으로 표현한  언어의 섬세함이 참 좋습니다 시인님~~~

후덥지근한 날씨 그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방문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시어에 향기를 입히시는 붉은선님 시가 부럽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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