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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부치러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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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608회 작성일 20-12-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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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부치러 가는 길에




밤새 몸을 허물어 마지막 제 빛깔을 찾은 고추장을
어깨에 이고 동네 우체국으로 가는 길
직방형 플라스틱통 모서리가 살갗을 누른다
파주에서 군 생활하는 동생가족에게 마음을 보내러 가는 길
지난 휴가 때 고열로 침대에 누운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이
한 뱃속에서 나와 바람처럼 흩어져 각자의 울타리를 이룬 지 오랜,
술 취해 흐릿했던 그 눈이 생각났다
산다는 건 제 주인을 찾아가는 편지 같아서
사연을 읽기 전의 봉함된 엽서 같아서
언제나 가는 길이 고프다
차가운 바람을 등에 인 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고추장을 이고 낑낑대며 간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지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추장은 먼 길 떠날 생각에 빨갛게 얼굴 붉히고
나는 심장이 따사롭게 뛴다
헐거운 입김을 내뱉으며 우체국 문을 여니 더운 공기가 확 감싼다
송장을 적어 붙이고 저울에 올린 저들의 무게,
무게 없는 마음의 무게보다 나를 가볍게 했다
형, 잘 먹을게, 고맙데이
짙푸른 편지처럼 우체국 문을 나서는 내게 동생의 문자가 왔다
문득 찬바람이 내 아픈 어깻죽지를 살짝 눌러주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12-18 16:24:10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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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미상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쓴 시입니다
고추장에 비벼먹듯
생채에 달걀 얹어 먹었습니다
고추장과 김치는 우리나라 음식 중에 최고지요
맛있는 시 잘  읽었습니다
입맛이 도네요
고맙습니다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얼마 전 조카 결혼식장에서 형님을 잠깐 뵈었는데, 핑계지만 살다 보니 친동기간이라도 자주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어릴 적 비 오는 날 동생들 주려고 뻥튀기에 물들라 품속에 소중히 안고 왔던 형님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좋은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좋은 댓글 주시는데 저는 그렇지 못해 미안한 마음입니다.
제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런 류의 시밖에 못 씁니다.
늘 따스하게 주시는 말씀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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