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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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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하늘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94회 작성일 22-05-2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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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기

​          하늘시

​몸매의 사이즈를 줄이는 사명을 잘

감당해 준 환자복의 표정이 헐렁해​졌네요

병실 침대 모서리를 둥글게 입고 서 있는

통 큰 바지를 입은 커튼의 허리를 꼭 껴 안고 핏기​없는

하늘을 만졌던 차가운 입김으로

지금  이 순간의 눈빛을 기록합니다​

하루가 천년이었으니

일만년을 주야로 오롯이

멍꽃 한 송이를 위해 온 정성 바쳤던 거룩한 사명들

7병동 충성안에서 나의 진이가 일상의 램프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퇴원 수속이 끝나면

홀로서기의 집사로 그 무엇이라도 부여잡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추억추억 접으며

영영 죽을 오늘이

사과 나무에 심어 놓을 새로운 내일의 깃발을 뽑기를 원합니다

천년지기로 동거동락했던 항생제는

먹고 사는 목숨과의 상생제로 수락하고요

일만년을 갈고 닦아 뼈들을 전시했던 물리치료는

당분간 골수를 열고 남은 통증을 마중하겠지만

일초 간격에 목을 매달고 사투했던

링거 수액의 목젖은 생수의 강물로 흘러들어

귀한 한 몸 적셔 주길 애원합니다

일상의 사이즈를 늘여야 할

평상복의 모습이 어색하게 쳐다보네요

둥글게 깎인 삶의 모서리들이 타이트한 표정으로

천년의 역사를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는 페이지가

얼마나 짧은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지

순간을 알아 차리는 일기장의 기억이 경이롭습니다

일만년의 구원을 남기려는

네온싸인이 병원 건물 이마에 십자가를 박고 있습니다

내일 죽어도 오늘 심어야 할 사과나무가

다시 부활하는 기적을 솎아 내고 있습니다

바람을 따라 나서는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사과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2-05-26 08:42:03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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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일랜드 사람들은 나무 속에서 살다 보니, 나무와 대화한다고 하던데, 속하신 직업과 대화하시며 명상을 뽑아내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런 게 시라는 생각을 다시금 가지게 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하늘시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늘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덜길님 오랫만입니다
겉은 대나무처럼 견고하며 속은 토마토 즙처럼 부드러운 분일거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귀하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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