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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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85회 작성일 20-07-21 00:01본문
난설헌의 무덤에 물어 물어 찾아가 본 적 있다.
까마귀떼 앉았다가 날아올랐다가
검은 대나무 잎들이
스산한 파람 부는 곳이었다.
나 태어날 적에 난산으로 어머니와 나 모두 죽을 뻔 했다 한다.
태아였던 내 머리가 남들보다 두 배는 컸기 때문이라 한다.
흙 속에 누워 이 꽃뿌리를 매만지고 있겠지. 두더지의 배설물이 섞인 흙을 핥고 있겠지. 흙 알갱이 하나 하나 세계를 헤아리고 있겠지. 반쯤 썩은 하얀 치마 위에서 사과 한 알이랑 무화과 한 알이 꺄르륵 서로 쫓고 쫓니는 중이겠지.
사과 한 알이랑 무화과 한 알.
썩은 폐 한 쪽과
찢겨져 나간 심장 사분지 일.
내 유년시절 우리집 길 건너 공터에 퇴역군인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월남에 가서 베트콩들을 무수히 때려잡았다는.
하루 종일 아저씨는 넓은 터 한가득 꽃을 가꿨다.
어느날이었다.
누군가 그 터에다가 죽은 개를 내다버렸다.
눈구멍에 구더기들이 바글바륵 들끓고 있었다.
날 원망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이가 하나 하나 흔들리다가 빠졌다.
그런데 그 해 꽃잎대들은 더 싱싱해지고 더 높아졌다.
꽃숭어리들은 더 화사하고
쏟아지는 원색으로 타들어갔다.
그해 철조망을 꽉 붙들고 蘭順이는
청록빛 풍선으로 부풀다가
썩은 도라지꽃으로 터져 죽었다.
길 한 모롱이 돌 때마다 팔 하나 떼어주고
다른 모롱이 돌 때마다 다리 하나 떼어주고,
높은 데 매달린 대나무잎들이
위태로이 떠는 것을 너도 듣고 있겠지.
부드러운
팽팽하게
허공의 균열들인
빈 의자
바스락거리는,
먼 바다로 떠나갔던 익사체는
더 멀어지는 법은 있어도
돌아오는 법은 없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더 황홀한
널 찾아가는 길.
까마귀떼가
검은 대나무숲 사이 날아가는 길.
댓글목록
봄빛가득한님의 댓글
봄빛가득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난순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시인님께서 이토록 찾아 주시니 참 행복해할 것 같습니다. 스산한 바람 부는 검은 대나무 숲길 한 모롱이에서 빈 의자만 바라보며 서성이다 갑니다. 평온한 밤 되세요.